반부패는 꿈인가
등록 : 2000-09-26 00:00 수정 :
우리 사회에서 부정부패는 하나의 문화요 역사입니다. 아니 일종의 생활양식이기도 합니다. 부패의 광맥은 그 뿌리가 워낙 깊고도 넓게 퍼져 있어 캐도 캐도 끝이 없고, 오염된 공기는 ‘성역’이 없이 사회의 구석구석을 휘돌아갑니다.
역대 정권치고 부정부패 일소를 외치지 않은 정권은 없었습니다. 서정쇄신, 사회정화, 새질서 새생활, 윗물맑기 운동 등 거창한 구호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부패의 종양을 도려내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말로만 사정’ ‘성역있는 사정’ ‘용두사미식 사정’의 연속이었습니다. 오히려 부정부패를 일소하겠다는 정권이 부정부패의 주역이고 화신이었습니다. 구악을 일소하겠다는 신악이 오히려 구악을 뺨치고 찜쪄먹는 식이었습니다.
현 정권도 역대 정부와 마찬가지로 출범 초부터 부패척결에 강력한 의지를 표명해 왔습니다. 하지만 검은돈은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 규모는 더욱 커지고 수법도 훨씬 교묘해졌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입니다(표지이야기 20쪽). 정부가 부패사범을 척결한다고는 하지만 신을 신고 발바닥을 긁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제2건국범국민추진위원회가 한국행정연구원과 현대리서치에 의뢰해 기업체 직원과 자영업자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결과에서도 응답자의 24.8%가 최근 1년간 업무처리 과정에서 공무원에게 금품이나 접대 등을 제공한 경험이 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부정부패 문제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온 윤태범 교수(부경대·행정학)에 따르면, 반부패에 대한 우리나라나 외국의 경험을 고려할 때 지속적인 개혁을 위해서는 ‘신뢰성’과 ‘실행가능성’ 두 요소가 전제돼야 한다고 합니다. 신뢰성이란 정책의 체계성과 정부의 높은 도덕적 성실성을 말하며, 실행가능성은 실제적인 집행가능성을 말합니다. 그러나 윤 교수가 매긴 점수는 그리 후하지 못합니다. ‘말’에 그친 문제의식과 지나친 계획의 변동, 그리고 미진한 정책화는 신뢰성을 근본적으로 약화시키고 있다는 것이 윤 교수의 진단입니다. 또한 관련 법체계의 구축이나 부패방지를 위한 운영기구의 실효성 확보, 정치자금 문제와 관련한 정치부문의 개혁과 규제체계의 재정비 등에서도 한계를 보이고 있다고 진단합니다.
반부패에 대한 현 정부의 작업은 애초부터 불안한 시작을 보였습니다. 치밀한 ‘정화(淨化) 전략’이 부재하다는 느낌을 떨쳐버리기 어려웠습니다. 사정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행가능한 ‘기획’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시작한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사정작업은 소리만 요란했지 별다른 소득도 없이 유야무야되면서 ‘깃털들의 잔치’ 정도로 끝났습니다. 읍참마속과 자기정화를 우선순위에 놓지도 않았습니다. 한마디로 감동이 없는 사정이었습니다. 신뢰성의 상실은 국민들의 냉소로 연결되고, 그러는 사이 정권의 내출혈 상태는 악화되고 있습니다.
정부가 최근 준비하고 있는 자금세탁방지법도 그 한계를 보여줍니다. 음성자금의 흐름을 막고 금융거래를 투명하게 하기 위한 이 법에서 정치자금 부문은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것이지요. 정치자금을 포함시키면 정치인들이 이 법을 통과시키지 않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라는 게 그 이유라고 합니다. 시쳇말로 앙꼬 빠진 찐빵인 셈이지요.
검은돈이 활개치는 세상은 내일에 대한 희망이 없는 사회입니다. 국민들의 불신과 냉소를 씻어버리고 희망이 용솟음칠 수 있도록 하는 정부의 분발을 기대합니다.
한겨레21 편집장 김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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