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엘 크리닉을 아십니까
등록 : 2002-07-23 00:00 수정 :
“라파엘 크리닉의 정신은 고통받고 소외감을 느끼는 이주노동자들과 함께해 그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며 위안이 되고자 하는 데 있습니다.”
돈도, 거처도 없으나 각종 질병으로 사경을 헤매는 이주노동자들이 가장 즐겨찾는 곳이 있다. 서울 종로구 혜화동 동성고등학교 4층 강당에 보금자리를 틀고 있는 ‘라파엘 크리닉’이다. 이곳의
김전 소장(서울대 의과대학 생리학 교수)은 이주노동자들의 참담한 의료실태를 더는 지켜보다 못해 97년 처음 크리닉 문을 연 이후 6년째 이들을 돌보고 있다.
이 크리닉의 뿌리는 1958년부터 진행되어온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카톨릭학생회의 빈민대상 무료진료소다. 국내에서는 이제 모든 국민이 의료보험혜택을 받아 빈민진료의 의미가 크게 퇴색했다. 그래서 김 소장이 눈을 돌린 대상이 이주노동자들이다. 처음에는 하루 30여명 정도의 이주노동자가 이곳을 찾았으나 지금은 진료 때마다 400명이 훌쩍 넘는다. 2001년에는 9032명이 이곳에서 각종 치료혜택을 받았다.
이제는 진료소 안이 지나치게 붐비고, 갈수록 늘어지는 치료시간 탓에 불편함을 호소하는 이주노동자들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 예약제까지 도입했다. 환자는 중국의 조선족뿐 아니라 인도네시아·네팔·필리핀인 등 다양하다. “한번은 러시아에서 온 여성 이주노동자가 미끄러져 넘어지는 바람에 대퇴골 골절상을 당했습니다. 시급히 수술은 해야겠는데 보험에 들지 않아 3천만원에 이르는 수술비를 마련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습니다. 멀리서 목돈 한번 만져보기 위해 한국에 왔는데, 이만한 돈이 주머니에 있을 리가 없죠. 그래서 저희 진료소가 협력병원과 함께 전액 무료로 입원, 수술, 간병, 퇴원까지 지원을 해줬습니다. 지금 그 노동자는 새로운 일자리를 구해 건강한 모습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김 소장을 비롯해 25명의 다른 의사, 봉사자들이 이렇게 이주노동자에게 훈훈한 인정을 베푼 사례는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김 소장에게는 보람을 느낄 짧은 틈도 없어 보였다. 이주노동자에게 더 나은 의료서비스를 베풀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이 널려 있기 때문이다. “1년에 2억원 정도의 크리닉 운영비를 마련하는 것이 갈수록 버거운 상황입니다. 의약분업에 따라 환자 수가 늘고 약값이 덩달아 뛰는 바람에 비용 가운데 가장 큰 몫을 차지하는 약품비를 마련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크리닉의 진료공간을 넓히고, 지방에 거주하는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현지 후원병원을 찾는 것도 시급한 과제입니다.”
임을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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