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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시가 샘솟는 국회 화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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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7-2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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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정용 기자)
7월로 4년을 꽉 채웠다. 국회 시사랑회가 지난 98년 7월 첫발을 내디딘 이후 지금껏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관과 의원회관 화장실에 내건 시는 모두 192편. 다달이 4편씩 한 차례도 거르지 않았다. 시를 바꿀 때마다 430장을 복사한 뒤, 국회 화장실과 게시판 12곳에 내걸고 있다. 국회에서 ‘나 홀로 일을 볼 수 있는’ 남녀 화장실 칸수는 418칸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한달에 4편을 고르는 이유는 대개 화장실 1곳이 4칸이기 때문이다.

시사랑회 회원은 양경화(인사계), 이용관(국회출입기자), 최경희(행정자치위), 유정분(시설관리과)씨(위 왼쪽부터 시계방향) 등 모두 9명. 이씨 등 회원 4명은 시집을 낸 어엿한 시인들이다. 양씨는 “화장실 가기가 즐겁다는 말을 들을 때 보람을 느낀다”며 “좋아서 시작한 일인데 이젠 안 해선 안 될 것 같은 사명감을 느낀다”고 모임에 대한 애정을 나타냈다.

회원들의 추천을 받아 품평회를 열어 내거는 시를 결정하지만 외부 추천시를 내걸기도 한다. 8월부터 1달에 1편씩은 국회 관련 인사들에게 추천시를 부탁하기로 했다. 8월에 내걸 추천시는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고른 김지하 시인의 ‘타는 목마름으로’다.

그동안 쌓인 얘깃거리도 많다. 누군가 화장실에 붙여놓은 시를 떼어가기도 하지만 그럴 때마다 시사랑회에서 기꺼이 다시 붙여놓는다. 시가 맘에 들어서 떼어갔을 것이라고 추정하면서. 국회 의원회관에 들렀던 어느 수녀는 시사랑회에 부탁해 다달이 전자우편을 통해 시를 배달받고 있다. 새로운 시를 읽기 위해 화장실에 갈 때마다 칸을 옮긴다는 직원들도 늘었다. 여자 회원이 남자 화장실을 들락거리거나 남자 회원이 여자 화장실을 오가야 하는 쑥스러움때문에 시를 붙이는 작업은 주로 이른 아침이나 늦은 밤시간을 이용했다.

모임을 처음 제안한 유정분씨는 “국회는 메마르고 딱딱한 곳이라는 인식이 많아 서정성 짙은 시를 많이 고르고 있지만 참여시를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고 나름의 선정원칙을 설명했다. 앞으로 동인지를 내서 낭송회를 여는 게 이들의 작은 꿈이다.

임석규 기자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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