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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백령도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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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7-2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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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겨레 최성민 기자)
인천에서 백령도로 가는 뱃길, 교전의 흔적은 없고 고기잡이배와 갈매기만 간간이 눈에 잡힙니다. 바다엔 어장과 항로 표지가 더러 보일 뿐 북방한계선도 3·8선도 없습니다.

남북한의 군함이 멀리서 마주 보며 대치하고 있을 것이란 통념도 빗나갔습니다. 백령도와 북한 장산곶 사이, 심청이 몸을 던졌다는 인당수에도 어선과 어업지도선뿐 군함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군부대에서 설명을 들으니 전함은 조업단속 등 필요에 의해 잠시 출몰하고, 남북한 모두 보이지 않는 뒤쪽에 진을 치고 있다고 합니다.

서해바다는 뱃길이 조금 둘러가느라 늘어난 것 외에는 별다른 긴장감을 주지 않습니다. 서해 최북단의 섬(이 아니라 한반도 품 한가운데 진주라고 해야 할) 백령도의 어촌과, 장산곶을 마주 보는 천혜의 관광지 두무진도 평화롭기 그지없습니다.

하지만 군의 설명을 들으면 백령도는 섬 일대가 군사기지, 요새화돼 있습니다. 북한에서 전투기가 뜨면 3분 만에 닿고, 10여km 떨어진 장산곶과 포문을 마주한 곳입니다. 산을 뚫어 곳곳에 만든 요새에는 30일치 식량이 있다고 합니다.

북한도 마찬가지로 장산곶 일대가 요새화되어 있고 그곳에 화력이 집중돼 있다고 합니다. 양쪽이 발톱을 세우고 있는 정황입니다.

긴장과 평화 가운데 하나의 선택을 강요받아온 외지인에게 익숙하지 않은 긴장 속의 평화, 평화 속의 긴장입니다. 긴장과 평화의 공존이 일상적 삶의 양식으로 정착된 듯합니다. 동시에 어마어마한 화력 앞에 국지적인 승전과 패전의 경계를 흐리게 합니다.

서해교전은 북한에 상당한 책임이 있으며 재발방지책이 마련돼야 합니다. 북한의 도발은 햇볕정책에 타격을 주었으며, 쌀 30만t이 북으로 가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햇볕정책이 없을 때도 북한의 도발은 있었습니다. 서해상에서의 충돌은 햇볕정책 때문이 아니라, 햇볕정책에도 불구하고 비극적으로 일어난 사건입니다. 햇볕정책으로 그러한 비극의 가능성과 충격의 여파는 분명 줄었습니다.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은 여전히 서해교전이 패전이라며 교전의 발발과 패전의 원인을 햇볕정책에서 찾고 있습니다. 햇볕정책이 없었다면 서해의 평화가 복원됐을까? 조금 돌아가지만 서해의 뱃길이 바로 열리고, 경수로 지원을 위한 동해의 항공 직항노선이 개설될 수 있었을까 되물어봅니다.

만일 그들이 교전 당시 지척에서 포문을 겨누고 있는 백령도에 있었다면, 또는 백령도 주민이라면, ‘적절한 대응’이 아니라 ‘확전불사 단호응징’을 외칠 수 있었을까?

실제상황을 겪어보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서울과는 체감지수가 분명 달랐을 것입니다. 문제는 어찌 보면 한반도 전체가 백령도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한겨레21 편집장 정영무 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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