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신념으로 양심적 병역 거부 선언… ‘다른 양심’ 껴안는 대체복무제 추진 박차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에 새로운 지평이 열리고 있다. 지난해 12월17일 평화주의자 오태양씨가 ‘불살생’의 종교적 신념에 따라 병역을 거부한 지 6개월여 만에, 또 다른 젊은이가 정치적 신념을 이유로 병역 거부를 선언했다. 비종교인이 신념에 따라 총 들기를 거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7월9일 민주노동당 서울 동작지구당 사무차장 유호근(26)씨는 서울 중구 국가위원회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전쟁 반대와 평화 실현이라는 신념에 따라 병역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유씨는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한 청년들을 해마다 수백명씩 무조건 감옥으로 보내는 것은 국가의 이익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개인과 국가 모두를 위해 총 대신 다른 방법으로 국방의 의무를 이행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건 불가능한가”라고 물었다.
“전쟁 반대하며 총 들 수 없다”
오씨와 유씨의 선언 사이에는 6개월 남짓 시간 차가 있다. 그 사이 우리 사회에는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를 둘러싼 많은 논란과 함께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 지난 1월29일에는 서울지법 남부지원은 “현행 병역법은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자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을 침해할 가능성 있다”며 위헌심판을 제청했다. 오씨 등 일부 병역 거부자에 대한 구속영장이 법원에 의해 기각되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유씨의 병역 거부 선언이 나왔다. 유씨의 병역 거부는 이 같은 사회적 맥락 안에 있다. 그의 선언은 돌발적이지 않았다. “사상과 신념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는 것은 국가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도 아니고, 국가의 안보를 해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다른 방식으로 국가를 위해 기여하겠다는 거죠.” 유씨는 오래전부터 평화주의자였다. 1995년 숭실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한 그는 통일문제 연구동아리 ‘흥사단 아카데미’에서 활동하면서 자연스럽게 평화와 인권에 관심을 기울이며 대학생활을 보냈다. 북한이 식량난으로 고통받던 96∼97년에는 교내에서 북한동포돕기 모금운동을 주도하기도 했다. 99년 학교를 마친 뒤에는 줄곧 진보정당에 몸담으면서 평화운동을 벌여왔다다. 그렇다고 유씨가 처음부터 병역 거부를 결심한 건 아니다. 지난해 초부터 인터넷을 통해 징병제 반대운동과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 문제를 접했지만, 스스로 중심에 서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지난해 말 오태양씨의 ‘도발적 문제제기’가 나온 뒤에도 그의 고민은 계속됐다. 병역특례업체 취업을 위해 지난 6월 초 정보처리기사 자격증을 손에 넣은 것도 ‘집총 거부’라는 가시밭길을 가능하면 피하고 싶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러나 선택의 순간이 왔을 때 그는 다시 흔들렸다. 병역 특례 대상자가 되더라도 어차피 4주 동안은 총을 든 채 군사훈련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는 “평화와 통일에 대한 소신에 비춰 4주간의 군사훈련이나 26개월의 군 복무나 별단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유씨가 바라는 것은 ‘다름’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적 ‘관용’이다. 그는 “소수자를 배려하고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기본정신이며, 이런 성숙한 사회가 될 때 비로소 더 많은 이들의 더 많은 행복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오태양씨의 전례에 비춰 유씨도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기다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월 검찰은 두 차례나 오씨의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진행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리고 지난 6월19일 열린 첫 공판에서 재판부는 “헌법재판소에 계류 중인 병역법의 위헌 여부 판단을 기다려보자”라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오씨에 대한 실질적 재판은 헌재의 판결 이후에나 가능하게 됐다. 병역법 개정 입법활동 벌이는 연대회의
유씨의 선언이 일정한 사회적 맥락 안에 있듯이, 그의 선언은 다시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와 관련한 또 다른 사회적 흐름을 이끌어낼 것으로 보인다. 유씨의 병역 거부 선언에 맞춰 인권운동사랑방·평화인권연대 등 3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지난 2월 결성한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이하 연대회의)의 발걸음도 빨라졌다. 연대회의는 지난 7월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공청회를 여는 등 병역법 개정을 위한 입법활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연대회의가 마련한 병역법 개정안에는 △대체복무판정을 받은 자는 병력동원 ‘소집대상’에서 제외시키고 △현역복무 중 대체복무위원회로부터 대체복무 판정을 받을 수 있으며 △대체복무요원의 복무기간은 3년 이내, 소관부서는 보건복지부로 하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또 대체복무 신청사유로 종교뿐만 아니라 윤리적·정치적·평화주의적·인도적 사유까지 포괄하는 ‘양심적 이유’를 들었으며, 국내·해외 전쟁 등 전쟁의 구별 없이 모든 전쟁을 거부하는 사람만을 병역 거부자로 인정하기로 했다.
앞으로는 좀더 자주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 선언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노동당 인권위원회 공태윤씨는 “연대회의를 통해 이미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한다는 뜻을 밝인 이들이 여럿 있다. 오태양씨의 거부 선언 뒤 두 번째 선언이 나오기까지는 6개월이 걸렸지만, 세 번째 병역 거부 선언은 그보다 짧은 기간 안에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학생회협의회(전학협)를 중심으로 병역 거부권 인정과 대체복무제 도입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에 참여한 학생 수가 이미 1만명을 넘어섰다. 전학협이 해마다 진행하는 전국 순회행사 ‘대학생 실천단·희망’의 올해 주제도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로 정해졌다. 오는 7월24일부터 8월1일까지 50여개 학생회 12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릴 예정인 이번 행사 기간에 모두 5만명의 서명을 받을 계획이다.
전학협 이준하 정책국장은 “대학생은 재학 중에는 군입대를 미룰 수 있지만, 오태양씨와 유호근씨가 잇달아 병역거부를 선언하면서 병역 거부권과 대체복무제도에 대한 관심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오는 9월께까지 재학생 5∼10명 정도가 선언으로나마 병역 거부자 대열에 합류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변화의 싹이 트기는 했으나, 서로의 ‘다름’을 받아들이려는 우리 사회의 노력은 아직 부분적이다. 성우 양지운씨는 “종교 때문에 감옥에 갇혀 있는 ‘여호와의 증인’ 청년들은 여전히 종교행사조차 가로막힌 상황”이라고 전한다. 법원의 판단도 혼란스럽다. 대전지법 한동수 판사는 지난 4월12일 신앙에 의한 양심적인 병역 거부문제는 재판과정에서 유·무죄를 가려야 할 사안이라는 등의 이유로 여호와의 증인 신자 홍아무개(20)씨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그러나 보름 뒤 경찰은 홍씨의 구속영장을 다시 신청했고, 재판부는 결국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병역 거부 선언 봇물 이루기 전에…
4700만명이 살고 있는 나라에는 4700만개의 ‘양심’이 있고, 양심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삶의 형태가 있다고 한다. 양심에 따라 ‘국방의 의무’를 다하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총 들기를 거부하고 ‘대체복무’를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유씨가 병역 거부를 선언하던 날, 그의 어머니는 맏아들을 새벽부터 흔들어 깨웠다고 한다. “이러지 마라. 신세 망친다. 어서 가거라.” 그러나 어머니의 간절한 마음도 아들의 신념을 바꾸지는 못했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일들도 몇해 뒤에는 전혀 다르게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그때 우리가 왜 그랬을까’라고 말하며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권과 대체복무제를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날이 곧 올 거라고 생각해요.” 그가 말하는 ‘좋은 날’이 오기까지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 선언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사진/ "다른 방법으로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고 싶다." 정치적 신념을 이유로 병역 거부를 선언한 유호근씨. (이용호 기자)
오씨와 유씨의 선언 사이에는 6개월 남짓 시간 차가 있다. 그 사이 우리 사회에는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를 둘러싼 많은 논란과 함께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 지난 1월29일에는 서울지법 남부지원은 “현행 병역법은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자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을 침해할 가능성 있다”며 위헌심판을 제청했다. 오씨 등 일부 병역 거부자에 대한 구속영장이 법원에 의해 기각되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유씨의 병역 거부 선언이 나왔다. 유씨의 병역 거부는 이 같은 사회적 맥락 안에 있다. 그의 선언은 돌발적이지 않았다. “사상과 신념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는 것은 국가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도 아니고, 국가의 안보를 해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다른 방식으로 국가를 위해 기여하겠다는 거죠.” 유씨는 오래전부터 평화주의자였다. 1995년 숭실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한 그는 통일문제 연구동아리 ‘흥사단 아카데미’에서 활동하면서 자연스럽게 평화와 인권에 관심을 기울이며 대학생활을 보냈다. 북한이 식량난으로 고통받던 96∼97년에는 교내에서 북한동포돕기 모금운동을 주도하기도 했다. 99년 학교를 마친 뒤에는 줄곧 진보정당에 몸담으면서 평화운동을 벌여왔다다. 그렇다고 유씨가 처음부터 병역 거부를 결심한 건 아니다. 지난해 초부터 인터넷을 통해 징병제 반대운동과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 문제를 접했지만, 스스로 중심에 서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지난해 말 오태양씨의 ‘도발적 문제제기’가 나온 뒤에도 그의 고민은 계속됐다. 병역특례업체 취업을 위해 지난 6월 초 정보처리기사 자격증을 손에 넣은 것도 ‘집총 거부’라는 가시밭길을 가능하면 피하고 싶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러나 선택의 순간이 왔을 때 그는 다시 흔들렸다. 병역 특례 대상자가 되더라도 어차피 4주 동안은 총을 든 채 군사훈련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는 “평화와 통일에 대한 소신에 비춰 4주간의 군사훈련이나 26개월의 군 복무나 별단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유씨가 바라는 것은 ‘다름’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적 ‘관용’이다. 그는 “소수자를 배려하고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기본정신이며, 이런 성숙한 사회가 될 때 비로소 더 많은 이들의 더 많은 행복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오태양씨의 전례에 비춰 유씨도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기다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월 검찰은 두 차례나 오씨의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진행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리고 지난 6월19일 열린 첫 공판에서 재판부는 “헌법재판소에 계류 중인 병역법의 위헌 여부 판단을 기다려보자”라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오씨에 대한 실질적 재판은 헌재의 판결 이후에나 가능하게 됐다. 병역법 개정 입법활동 벌이는 연대회의

사진/ 제2, 제3의 오태양이 양심적 병역 거부 대열에 합류할 전망이다. 유호근씨가 지난 7월9일 국가인권위에 진정서를 내고 있다. (이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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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1월26일 성우 양지운씨, ‘여호와의 증인’ 집총 거부자 가석방 기준 차별에 대해 국가인권위에 진정 접수. -12월17일 오태양씨, ‘불살생’의 신념에 따라 국가인권위에 진정서 내고 병역거부 선언. <2002년> -1월29일 서울지법 남부지원, 현행 병역법은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자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며 위헌심판 제청. -2월2일 평화인권연대 등 시민·사회단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 발족. -2월8일 서울지법 동부지원, 오태양씨 구속영장 기각. -2월18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종교·양심적 병역거부와 대체복무’ 토론회 개최. -2월28일 서울지법 동부지원, ‘여호와의 증인’ 최아무개(21)·윤아무개(22)씨 보석 결정. -3월22일 전주지법, ‘여호와의 증인’ 신자 강아무개(21)씨 1년6월로 감형. -3월25일 대한변협 ‘양심적 병역거부와 인권’ 토론회 개최. -3월29일 천주교 김수환 추기경, “신앙에 의한 양심적 병역거부 존중” 발언. -4월12일 대전지법, ‘여호와의 증인’ 신자 홍아무개(20)씨 구속영장 기각. -4월20일 대전지법, ‘여호와의 증인’ 신자 김아무개(20)씨 구속영장 발부. -4월23일 제58차 유엔인권위원회,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인정 촉구 결의안 채택. -4월27일 대전지법, 영장 기각된 ‘여호와의 증인’ 신자 홍아무개(20)씨 구속영장 발부. -5월24일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 <양심적 병역거부> 발간. -7월4일 연대회의, 국회 ‘나라와 문화를 생각하는 모임’과 공동으로 대체복무제 입법관련 공청회 개최. -7월9일 유호근씨, 전쟁반대·평화실현이라는 신념에 따라 국가인권위에 진정서 내고 병역거부 선언.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