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급여 지급에서 취직 알선까지… 고용안정센터 상담원이 되어 실업자 속으로
잘못했다가는 실직자들한테 봉변이라도 당하는 게 아닐까. 그러잖아도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이 실직의 고통과 좌절감을 곱씹는 그들이 아닌가. 지난 7월10일 아침, 강남구 역삼동 르네상스호텔 근처에 있는 강남고용안정센터로 가는 전철 안에서 내 마음은 슬슬 불안해졌다.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된 그들에게 어떻게 말을 붙여야 하는 걸까. 비록 고용안정센터 상담원의 세계에 뛰어든 것이지만, 엄밀히 말해 나의 관심은 상담원보다는 상담원의 눈에 비친 실직자의 풍경에 가 있었다. ‘얼치기 상담원 노릇을 하다간 실직자들의 풍경도 제대로 볼 수 없을 텐데.’ 이런저런 생각이 혼란스럽게 뒤섞이는 가운데 어느 새 나는 테헤란로 큰길가에 자리잡은 고용안정센터의 문을 열고 있었다.
하루에 실직자 200여명 발길
오전 9시를 갓 넘긴 때라 그런지 150여평 남짓한 센터 안은 조용했다. 센터 한쪽에 마련된 구인공고판 앞에 실직자 몇명이 서성이며 구인 리스트를 훑어보고 있을 뿐이었다. 날마다 센터로 출근하다시피 하는 실직자들이었다. 전국 160여개 고용안정센터는 실직자들에게 실업급여를 지급하고 취업알선까지 해주는 기관이다. 자연히 센터를 찾아오는 손님은 대부분 실직자이고, 간혹 기업체에서 구인등록을 하러 오기도 한다.
본격적으로 상담원 체험에 들어가기에 앞서 나 역시 실직자 신세가 돼야 했다. 황선범 센터장은 “실직당해 처음 이곳을 찾은 실직자는 누구나 실업급여 안내교육부터 받아야 한다”며 나를 교육장으로 들이밀었다. 교육장에 앉은 실직자는 나까지 5명. 청년 실직자, 젊은 여성, 중년 남자가 골고루 섞여 있었다. 실업급여제도를 소개하는 비디오 화면이 계속되는 동안 그들의 얼굴에서 실업의 어두운 그늘은 찾아볼 수 없었다. “실직자 생활을 빨리 끝내려면 우리 센터의 취업알선창구를 자주 방문해 상담원하고 얼굴을 터놓는 게 좋아요.” 교육이 끝나갈 즈음 던진 교육담당자의 한마디가 모인 사람들에게 실직자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주었다. 10시를 넘어서면서 센터는 실직자들로 차츰 붐비기 시작했다. 하루에 이 센터를 찾는 실직자는 200여명. 센터에서 일하는 상담원은 40여명으로 대부분 여성이다. 한쪽은 실업급여 창구가 강남구 관내 3개동씩을 묶어 마련돼 있고, 맞은편에는 업종별 취업알선 창구가 칸막이로 나뉘어 있다. 교육을 받고 난 뒤 나는 곧바로 상담원들 사이에 뒤섞였다. 첫날이라 실업급여 창구 쪽의 상담원 보조노릇부터 시작했다. “외환위기 직후에는 실직자가 한꺼번에 몰려들었어요. 한손에 마이크를 든 채 의자 위에 올라가서 이쪽으로 줄서세요, 하면 실직자들이 우르르 몰려다니고, 그렇게 실업급여를 주던 때였죠. 왜 빨리 실업급여를 안 내주느냐고 시비를 거는 사람도 많았고, 그때는 정말 힘들었죠.” 98년 말 이 센터가 문을 열 때부터 일해온 상담원 남희정씨가 돌이키듯 말했다. “다들 경력 3∼4년차만 구해요”
그때 실직자 백아무개(33)씨가 우리 쪽 실업급여 창구로 다가왔다. 2주마다 지급되는 실업급여를 타러 온 길인데, 이날이 4번째였다. 그가 내민 실업인정신청서에는 몇 군데 건축회사의 이름과 주소지, 전화번호 등이 기록돼 있었다. 지난 2주 동안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본 구직활동 내역이었다. “실직한 지 두달이 다 돼가는데 새 일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네요?” 상담원 옆에서 쭈뼛쭈뼛 묻는 내가 이상한지 힐끔 쳐다보던 그가 한숨처럼 대답했다. “몇 군데 가보긴 했는데 다들 경력 3∼4년차만 구해요. 새 직장을 구할 수 있을지 차츰 불안해지기도 하고….” 쭈뼛쭈뼛 대꾸하기는 그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같이 그만둔 김 차장도 그렇고 저도 먹고살아야 하잖아요. 도장만 한번 찍어주면 되는데 그렇게 미루면 어떡해요. 빨리 좀 처리해주세요.” 창구 앞쪽에서 누군가 휴대폰에 대고 큰 소리로 따지고 있었다. 저쪽 상대편은 그만둔 회사인 듯했다. 회사 쪽이 피보험상실신고를 빨리 처리해주지 않은 탓에 실업급여를 못 받고 있다는 불만이었다.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 6월 실업률은 2.7%(실업자 61만명). 경제학 교과서는 실업률 2∼3%를 ‘완전고용’ 수준이라고 가르친다. 아무리 경제상황이 좋아도 실업률이 0% 수준으로 떨어지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이사를 간다든가 더 좋은 직장을 찾으려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는 등 피치 못할 사정으로 잠시 실업상태에 있는 사람은 늘 있게 마련이다. 지난 99년 초 실업률이 사상 최고치(8.6%·실업자 178만명)에 달해 온 나라가 실업대란에 휩싸인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완전고용 운운할 때가 됐다. 그렇다면 실업률 2%대의 실직자들은 어떤 불안과 희망 속에 살고 있을까? 고용안정센터 상담원 체험은 이런 의문 속에서 시작됐다.
취업알선 창구로 옮겨앉자 서아무개(33)씨가 구직표를 작성해 들이밀었다. 아까 실업급여 교육장에서 본 얼굴이었다. 그한테서 실직자의 우울한 표정을 엿볼 수 있었지만 아직 절망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실업급여 타면서 천천히 일자리를 찾아보려 했는데, 놀고 먹게 놔두지 않는군요. 실업급여 받으려면 뛰어다니면서 구직활동을 해야 하잖아요.” 그가 희미하게 웃어보였다. 실업급여가 제대로 홍보되기 전에는 “내 월급에서 꼬박꼬박 뗀 보험료를 실직자가 돼서 되받겠다는 건데 빨리 돈 내주지 않고 왜 귀찮게 오라가라 하고 구직활동을 따지냐”며 소리부터 지르는 실직자도 많았다고 한다.
정처없이 강남 골목길을 떠돌다
서씨는 “비참한 신세라는 생각은 아직 들지 않는다”고 했다. 장기 실업자가 될지 모른다는 불안은 떨쳐버릴 수 없지만, 실직자가 곧 패배자를 뜻하는 건 아니라는 뜻일까. 어쩌면 대량실업사태를 겪으면서 실업에 대한 통념이 바뀐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싶었다. 실업을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자연스런’ 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상담원 체험 동안 고용안정센터를 찾은 자신의 처지가 부끄럽다거나 대놓고 짜증부터 내는 실직자는 없었다.
실직자들은 끊어질 듯 이어지고 있었다. 다만, 오전에 중장년층 실직자들이 많은 반면 오후 들면서 청년과 여성 실직자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상담창구를 찾은 여성 실직자들은 나이 서른만 넘어도 새 직장을 구할 수 있을지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취업알선 창구를 찾은 명아무개(31·여)씨는 시들시들하던 중소 회사가 끝내 문닫고 마는 바람에 실직자 신세가 됐다. “어쩌다 실직자 대열에 끼고 말았는데 나이가 걸려 취업이 잘 될지 걱정이에요.” 번번이 재취업에 실패하고 두달째 실업급여로 살고 있는 김아무개(39·여)씨도 마찬가지였다. “의류분야 12년 경력으로 갈 만한 일자리는 많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입사원서를 낸 곳마다 면접조차 안 불러요. 이렇게 나이가 걸릴 줄은 미처 몰랐어요. 실업급여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애초 상담원 체험을 올 때 나의 걱정은 또 있었다. 부자들이 사는 강남구라서 ‘배부른’(?) 실직자들만 보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우려였다. 그러나 강남 사람이긴 하지만 수서·일원동 등 ‘부유층’이 아닌 실직자도 많았다. 수서·일원동 담당자인 상담원 남희정씨는 “도곡동·대치동 지역 실업급여 창구에는 해외여행 갔다온 실직자들이 화장품이나 스카프를 선물로 주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맡은 창구에서는 실업급여 최저 지급액(21만원)을 타 가는 사람이 숱하다”고 했다. 이전 직장의 임금이 최저임금에 달할 정도로 낮았기 때문이다. 실업급여는 새 직장을 구할 때까지 생계안정을 도모해주는 최후 보루다. 하지만 아무리 억대 부자라도 실업급여를 받으러 오면 지급액의 10원 단위까지 철저히 따지고, 퇴직금 1억원이 넘는 사람도 한명 빠짐없이 실업급여는 꼭 받으러 온다.
이튿날 오전, 나는 임아무개(38)씨와 함께 도곡동으로 향했다. 막노동을 하다가 일자리를 잃은 임씨는 넉달째 고용안정센터에 날마다 출근하고 있다. 센터에 구인등록한 회사를 찾아가 채용조건을 더 자세히 알아오고 새로운 구인업체를 발굴해오는 게 그의 일이다. 그 대가로 센터로부터 일당을 받는다. 찾아간 벤처기업은 20대 초반의 대졸자를 구하고 있었다. 면접보러 오는 줄로 알고 있던 회사 인사담당자는 벤처기업과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임씨의 행색을 보고 무척 당황스러워했다. 10여분쯤 지났을까. 임씨는 구인표를 새로 작성받고, 나는 고용보험 홍보전단을 돌린 뒤 곧 회사를 나왔다. 임씨는 “마땅히 정해두고 가는 곳은 없다”며 고용보험 홍보전단을 옆구리에 낀 채 다른 구인업체를 발굴하러 떠났다. 늘 그래왔듯이 오늘도 그는 정처없이 강남 골목길을 떠돌다 저녁이 되면 센터로 되돌아올 것이다.
“실업급여 주지 말라”는 회사 쪽
센터로 복귀한 나는 다시 상담원으로 돌아갔다. 취업알선 창구에는 중년 실직자가 유난히 많았다. 실업급여를 타러 온 박아무개(40)씨는 “여러 곳을 알아봐도 나이 마흔을 넘어서 그런지 받아주는 데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가서 비벼보기라도 할 텐데…”라며 꺼져가듯 한숨을 내쉬었다. 사장이 몰래 회사를 딴 데로 팔아버리는 바람에 졸지에 실직자 신세가 된 박아무개(41)씨는 실직 6개월째인 아직까지 실직 사실을 집에 알리지 않은 채 날마다 넥타이 차림으로 집을 나선다. “한창 일할 나이인데 몇 군데 알아보면 나이가 부담된다고 그래요. 집에 누워 있는 것도 눈치 보이고….”
중장년층은 가는 곳마다 나이 제한에 걸리고 눈높이를 낮추면 단순노무직밖에 없다. 이상연 취업알선팀장은 “40∼50대 실직자 몇몇은 이틀 사흘 간격으로 자꾸 알선창구를 찾아오지만 기업체마다 3∼4년 정도의 경력을 원하기 때문에 재취업이 어렵다”고 했다.
회사와 불화를 빚으면서 실직한 경우에는 이직사유를 둘러싸고 회사 쪽과 실직자가 다툼을 벌이는 일이 생긴다. 스스로 직장을 그만뒀거나 실직자의 중대한 귀책사유로 해고된 경우에는 실업급여를 탈 수 없기 때문이다. 이직사유가 엇갈릴 때는 상담원이 사실확인 조사를 거쳐 실업급여 지급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이날 실업급여 창구를 찾은 김아무개(54)씨는 징계해고를 당하긴 했지만 사소한 말다툼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나는 회사 쪽에 전화를 했다. 인사 담당자는 “김씨한테 귀책사유가 있기 때문에 실업급여를 안 주는 게 맞지 않느냐”고 단호하게 잘랐다. 회사 쪽의 설명을 들려주자 그는 “실직 처지에 내몰린 나한테 회사가 악감정을 갖고 대응하다니 이해할 수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강성희 실업급여팀장은 “개인사정으로 그만뒀더라도 구조조정에 의한 권고사직이라고 회사와 실직자가 짜고 실업급여를 받게 해주는 사례도 있다. 하지만 회사를 그만둔 직후에 느닷없이 인사 담당자가 바뀌면서 들통나는 일도 있다”고 귀띔했다.
'경기회복'은 먼 나라 이야기
경기가 회복되고 있다지만 센터에 온 실직자들에게는 남의 나라 얘기였다. “경기회복을 떠들지만 말뿐이에요. 일자리가 있는 데는 흘러넘칠지 몰라도 다른 분야는 더 나빠지고 있어요.” 취업알선 창구를 찾은 김아무개(33)씨가 한탄조로 말했다. 말로만 듣던 실직자 신세라는 게 이런 것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낀 것일까. 한 군데 면접을 보고 왔다는 그는 “이달 안에는 새 직장을 구해야 할 텐테…”라고 혼잣말처럼 내뱉었다. 경기회복과 실업률 2%대의 뒤편에서 실직자는 김씨처럼 소리없이 무너지고 있었다. 나오려는데 한 40대 실직자가 센터 한 귀퉁이에 마련된 책상에 벼룩시장을 펼쳐놓고 구인광고를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저∼어, 여기 상담원인데요.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미처 못 들은 듯싶어 재차 물으려 하자 그가 말허리를 잘랐다. 대답 대신 그는 귀찮다는 듯이 손을 내저었다. 잠깐 스친 그의 구릿빛 얼굴에 실직의 피로가 잔뜩 묻어났다.
글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사진 김종수 기자jongsoo@hani.co.kr

강남구 역삼동에 자리잡은 강남고용안정센터. 하루종일 실직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본격적으로 상담원 체험에 들어가기에 앞서 나 역시 실직자 신세가 돼야 했다. 황선범 센터장은 “실직당해 처음 이곳을 찾은 실직자는 누구나 실업급여 안내교육부터 받아야 한다”며 나를 교육장으로 들이밀었다. 교육장에 앉은 실직자는 나까지 5명. 청년 실직자, 젊은 여성, 중년 남자가 골고루 섞여 있었다. 실업급여제도를 소개하는 비디오 화면이 계속되는 동안 그들의 얼굴에서 실업의 어두운 그늘은 찾아볼 수 없었다. “실직자 생활을 빨리 끝내려면 우리 센터의 취업알선창구를 자주 방문해 상담원하고 얼굴을 터놓는 게 좋아요.” 교육이 끝나갈 즈음 던진 교육담당자의 한마디가 모인 사람들에게 실직자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주었다. 10시를 넘어서면서 센터는 실직자들로 차츰 붐비기 시작했다. 하루에 이 센터를 찾는 실직자는 200여명. 센터에서 일하는 상담원은 40여명으로 대부분 여성이다. 한쪽은 실업급여 창구가 강남구 관내 3개동씩을 묶어 마련돼 있고, 맞은편에는 업종별 취업알선 창구가 칸막이로 나뉘어 있다. 교육을 받고 난 뒤 나는 곧바로 상담원들 사이에 뒤섞였다. 첫날이라 실업급여 창구 쪽의 상담원 보조노릇부터 시작했다. “외환위기 직후에는 실직자가 한꺼번에 몰려들었어요. 한손에 마이크를 든 채 의자 위에 올라가서 이쪽으로 줄서세요, 하면 실직자들이 우르르 몰려다니고, 그렇게 실업급여를 주던 때였죠. 왜 빨리 실업급여를 안 내주느냐고 시비를 거는 사람도 많았고, 그때는 정말 힘들었죠.” 98년 말 이 센터가 문을 열 때부터 일해온 상담원 남희정씨가 돌이키듯 말했다. “다들 경력 3∼4년차만 구해요”

실업급여 창구에서 한 여성실직자와 상담하고 있다. 중장년층 못지않게 여성 실직자도 나이제한을 걱정한다.

부자동네 강남이라도 실직자들의 처지는 제각각이다. 아파트 청소용역 일을 하다 실직한 노동자와 상담하고 있다.
사진 김종수 기자jongsoo@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