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만 먹으면 가장 친근한 가족대화 도구… ‘계정 만들어주기’ 운동까지 벌어져
인터넷 세상이다. 이메일 주소 한두개쯤은 누구나 갖고 있다. 소통은 즉각적이다. 편지 부치고 1주일 동안 설레거나 불안해하던 일은 옛 추억담이다. 고민은 다만 넘치는 불청객들이다. 수십, 수백건씩 대량으로 쏟아지는 스팸메일. 이제 인터넷과 이메일을 통하면 소통하지 못할 대상은 없다.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곰살가운 대화
그러나 이렇게 열린 소통의 가능성은 여전히 반쪽짜리다. 대양과 산맥은 가로지르고 건너뛰었지만, 가장 가까운 가족 간의 소통은 오히려 꽉 막혀 있다는 지적이 많다. 새로운 소통기술의 발달에 익숙한 신세대 자녀와 그를 못 따르는 구세대 부모 사이에는 한층 넓은 골이 패어 있다. 자녀세대는 인터넷의 별천지에 빠져 고리타분한 부모세대와의 대화를 거부하기 일쑤다. 부모세대는 인터넷의 역기능을 우려해 감시의 눈초리를 더욱 치켜뜰 뿐이다. 인터넷 시대의 새로운 십계명을 쓴다면 첫째는 “서로 소통하라”가 될 테지만, 우리 가족문화에선 여전히 소통과 대화보다 불통과 소외가 지배적이다.
이런 현실에 반기를 든 사람들이 있다. 인터넷을 가족 소통의 충직한 도구로 활용하는 이들이다. 아직은 그 수가 적다. 하지만 소통의 시대에 더욱 깊어가는 침묵의 터널을 깨뜨리려는 노력에 동참하는 이들은 시간이 갈수록 느는 추세다. “온갖 꽃이 만발하고 깊어가는 봄을 맞으면서 바쁜 사회생활을 하는 중에 건강은 괜찮은지 궁금하다. 전주에 간다 하더니 지금도 전주에 있는지 진작 답 못 주어 미안하다. 우리는 너를 며느리로서보다는 귀여운 딸로 생각하는 편이다. 금번 울산 왔을 때 손주 안겨달라고 한 말이 너로 하여금 그런 생각을 갖게 한 듯한데 그것은 며느리와 딸을 구별해서 하는 말이 아니란 것으로 받아들였으면 한다. 그리고 모여서 먹는 거말고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많았으면 하던데… 나 역시 그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지금 생각하니 너하고는 그런 시간을 가진 적이 없었구나.…” 지난 4월1일 울산의 강희준(70)씨가 서울의 막내 며느리 장성연(33·영화제 기획자)씨에게 보낸 이메일의 한 대목이다. 전주영화제 기획을 맡은 막내 며느리의 안부를 묻고 지난번 손주 안겨달라고 한 말에 사랑스런 막내 며느리가 혹시 삐지지나 않았는지 걱정스런 마음을 글에 담아 보냈다. 막내 며느리는 같은 날 메일을 확인하자마자 답신을 보냈다. “아버님, 귀여운 딸 같은 며느리 ^^ 아직 서울에 있어요. 다음 주말 정도나 되어야 전주로 내려갈 것 같고요. 전주에서는 한 3주 정도 머무를 것 같아요.… 참, 아버님께서 제 저번 편지를 오해하신 것 같아서요. 아버님이 손주 운운하신 건 제겐 아무렇지도 않아요. 당연히 부모님께서 바라시는 일이고, 그것이 딸과 며느리를 달리 보아 말씀하신 것이 아닌 것도 잘 알아요. 그냥 전 아버님, 어머님이랑 좀더 가까워지고 싶은 맘에 그런 말씀을 썼던 것이고요. 특별히 서운하거나 해서 그런 것이 아니란 사실을 해명하고 싶어요. …제가 지난번 편지에서 너무 솔직했나봐요. 부디 맘 안 상하셨으면 하고요. 아무리 막내 철부지지만, 속 좁아터진 어린애는 아니니 예쁘게 봐주세요. 건강하시고요. 성연 올림.” 장씨는 지난해 추석 때 울산 시댁에 갔다 컴퓨터를 쓰는 시아버지를 보고 이메일 아이디를 하나 만들어드렸다. 그 뒤 시아버지와 며느리는 이메일을 통해 수시로 서로의 안부를 나누는 사이가 됐다. 아이를 갖지 않겠다는 며느리에게 손주 재롱 보고 싶다는 바람도 내비치고, 채팅으로 40대 중반의 여자친구를 사귀었다는 이야기도 스스럼없이 털어놓는 절친한 사이버 펜팔이 됐다. “말이 통한다는 시원한 느낌”
시어른과 며느리 사이의 껄끄러움이 모두 사라진 건 아니다. 장씨는 “아직도 시어른들에게 곰살갑게 굴지도 못하고, 시어른들의 이해할 수 없는 당당함을 완전히 받아들인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적어도 말이 통한다는 시원한 느낌만은 확연해졌다. 장씨는 “말로 못하는 내용을 글로 쓸 수 있어 속이 시원해졌다”고 말했다. 장씨의 남편은 “아내가 이제 고향 시댁에 가는 걸 전처럼 힘들어하지 않는다. 아직까지 아내가 바라듯 고향집이 민주적으로 바뀌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의 소통방식으로 답해주는 누군가가 고향집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숨을 쉴 수 있는 것 같아 보인다”고 말했다.
신세대 자녀들과의 소통에서 특히 이메일은 아주 유효한 수단이다. 대화의 말문이 닫혀 서로 갑갑함을 느낄 때 이메일을 통한 소통은 효과가 크다. 김종혁(42·경기도 부천시 원미구)씨는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딸 이영(18·방송통신대 1년)씨에게 그다지 말이 통하는 상대가 아니었다. “어쩌다 대화하자고 해도, 대개 내가 혼자 일방적으로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말았다”고 김씨는 돌이켰다. 김씨의 부인은 “애아빠가 정보가 많고 세계관이 확고한 편이라 훈계를 듣는 딸로선 아빠에게 거부감을 많이 가진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런 부녀관계가 바뀌기 시작한 것은 지난 3월께 김씨가 딸에게 이메일로 대화를 청하면서부터였다. 김씨는 딸에 대한 아빠의 사랑의 감정과 원하는 바를 이메일을 통해 솔직히 토로했다. 자신들만의 영역이라고 생각한 이메일로 온 아버지의 대화신청에 딸도 마음이 움직였다. 처음 아버지의 권위주의에 대해 기탄없는 반론이 메일로 날아들었다. 차츰 아버지의 친절한 ‘노하우’에 고맙다는 인사가 늘어났다.
“최근엔 이영이의 공부에 필요한 사항들을 내가 많이 일러준다. 도서관 이용법과 서점 가서 보고 싶은 책을 공짜로 보는 법 따위를 이메일로 알려줬다.” 이메일 소통이 활발해지면서 김씨는 인터넷에 가족 홈페이지도 만들어 소통의 공간을 더욱 넓혔다. 딸은 물론 부인까지 참여해 가족 게시판에선 열띤 삼각논쟁을 펼치기도 한다. 김씨는 “이제 딸과 오프라인에서도 서로 얼굴이 굳어지지 않고 꽤 오래 이야기를 나눌 정도가 됐다”며 환하게 웃었다.
80대 할아버지와 50대 아버지, 20대 자녀, 3대가 서로 이메일로 통하는 가족도 있다. 백동수(54·사업)씨의 아들 우종씨는 최전방 공동경비구역에서 근무한다. 우종씨는 틈날 때마다 아버지·어머니는 물론 올해 여든살의 할아버지와도 이메일을 주고받는다. 대학원을 마치고 유학을 준비하느라 얼굴 마주칠 시간조차 없는 딸 지영씨도 이메일이 가장 친근한 대화의 도구다.
“산타할아버지밖에 없었는데…”
얼마 전 백동수씨는 마음에 품은 학원사업 구상을 놓고 딸 지영씨와 이메일로 진지하게 상의한 적이 있다. 지영씨는 “논문 끝날 때까지 미루었다가 아빠와 토론을 할까 하다가 계속 제 생각을 궁금해하실까봐, 그리고 사업구상하시는 데 걸림이 될까봐 힘들게 이메일을 쓰게 됐다”며 장문의 메일을 보내왔다. 백씨는 ‘요즘 바쁜 너에게’라는 제목을 달아 답신을 보냈다. “너에게 짐이 되는 것을 상의한 것 같구나. 이렇게 긴 편지를 쓰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네가 자랑스럽고 늘 고마움을 느낀다. 그 점을 알아주기 바란다. 아빠가.”
가족 사이에 이메일을 통한 소통의 기회를 늘리자는 사회적 움직임도 확산되고 있다. 서초강남교육시민모임은 지난해부터 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센터(하자센터)와 함께 ‘5월의 이메일’(www.haja.net/with/) 행사를 벌여오고 있다. 생활 깊숙이 자리잡은 인터넷을 가족 구성원 간 대화와 소통의 장으로 자리매김하자는 취지에서 벌이는 운동이다. 이메일이 없는 가족에게 계정을 만들어주고 사연을 함께 띄워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올 행사에선 323명의 네티즌들이 새로이 가족들과 이메일로 접속했다.
행사에 참여한 이슬기(15·구로고 1년)양은 최근 감사의 뜻을 담은 이메일을 보내왔다. “뭐가 감사하냐면요∼ 저의 아빠에게 편지를 쓰는 게 처음은 아니지만, 오랜만에 써서 기분도 좋았고, 우리 아빠도 너무나 좋아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빠에게 편지받는 게 너무나도 오랜만이라 기분 또한 새롭고 기뻤습니다. 오랜만이라고 해도 내가 아주 어릴 적에 산타할아버지라고 받은 적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받은 편지는 더 특별하고 기뻤습니다.” 하자센터 기획부의 강원재씨는 “이번 행사를 통해 대화가 단절된 우리 사회 가족문화의 단면을 볼 수 있었다. 더 많은 가족이 참여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꾸준히 다양한 노력을 펼쳐나가겠다”고 말했다.
정보와 의미가 빛의 속도로 서로 교류하는 시대. 그러나 여전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소통의 의지다. 소통은 쌍방향적이며, 무관심이나 일방적인 지시·훈계와는 거리가 멀다. 서초강남교육시민모임 김정명신 대표는 “가족 구성원 사이에 소통하겠다는 의지가 있으면 요즘 이메일만한 좋은 도구도 드물다. 대화의 단절을 푸념하기 전에 부모들이 먼저 나서 자녀들과 평등하게 관계를 맺어나가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일러스트레이션/ 장광석
이런 현실에 반기를 든 사람들이 있다. 인터넷을 가족 소통의 충직한 도구로 활용하는 이들이다. 아직은 그 수가 적다. 하지만 소통의 시대에 더욱 깊어가는 침묵의 터널을 깨뜨리려는 노력에 동참하는 이들은 시간이 갈수록 느는 추세다. “온갖 꽃이 만발하고 깊어가는 봄을 맞으면서 바쁜 사회생활을 하는 중에 건강은 괜찮은지 궁금하다. 전주에 간다 하더니 지금도 전주에 있는지 진작 답 못 주어 미안하다. 우리는 너를 며느리로서보다는 귀여운 딸로 생각하는 편이다. 금번 울산 왔을 때 손주 안겨달라고 한 말이 너로 하여금 그런 생각을 갖게 한 듯한데 그것은 며느리와 딸을 구별해서 하는 말이 아니란 것으로 받아들였으면 한다. 그리고 모여서 먹는 거말고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많았으면 하던데… 나 역시 그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지금 생각하니 너하고는 그런 시간을 가진 적이 없었구나.…” 지난 4월1일 울산의 강희준(70)씨가 서울의 막내 며느리 장성연(33·영화제 기획자)씨에게 보낸 이메일의 한 대목이다. 전주영화제 기획을 맡은 막내 며느리의 안부를 묻고 지난번 손주 안겨달라고 한 말에 사랑스런 막내 며느리가 혹시 삐지지나 않았는지 걱정스런 마음을 글에 담아 보냈다. 막내 며느리는 같은 날 메일을 확인하자마자 답신을 보냈다. “아버님, 귀여운 딸 같은 며느리 ^^ 아직 서울에 있어요. 다음 주말 정도나 되어야 전주로 내려갈 것 같고요. 전주에서는 한 3주 정도 머무를 것 같아요.… 참, 아버님께서 제 저번 편지를 오해하신 것 같아서요. 아버님이 손주 운운하신 건 제겐 아무렇지도 않아요. 당연히 부모님께서 바라시는 일이고, 그것이 딸과 며느리를 달리 보아 말씀하신 것이 아닌 것도 잘 알아요. 그냥 전 아버님, 어머님이랑 좀더 가까워지고 싶은 맘에 그런 말씀을 썼던 것이고요. 특별히 서운하거나 해서 그런 것이 아니란 사실을 해명하고 싶어요. …제가 지난번 편지에서 너무 솔직했나봐요. 부디 맘 안 상하셨으면 하고요. 아무리 막내 철부지지만, 속 좁아터진 어린애는 아니니 예쁘게 봐주세요. 건강하시고요. 성연 올림.” 장씨는 지난해 추석 때 울산 시댁에 갔다 컴퓨터를 쓰는 시아버지를 보고 이메일 아이디를 하나 만들어드렸다. 그 뒤 시아버지와 며느리는 이메일을 통해 수시로 서로의 안부를 나누는 사이가 됐다. 아이를 갖지 않겠다는 며느리에게 손주 재롱 보고 싶다는 바람도 내비치고, 채팅으로 40대 중반의 여자친구를 사귀었다는 이야기도 스스럼없이 털어놓는 절친한 사이버 펜팔이 됐다. “말이 통한다는 시원한 느낌”

사진/ 이메일을 가족소통의 도구로 활용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이메일로 자녀와 대화하기' 캠페인을 벌여온 하자센터 인터넷 웹집 'with'의 학부모 회원들. (김종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