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심한 것은 클린턴의 방북에 반대하고 부시 정부의 대북정책에 지지를 보낸 국내의 수구냉전세력들, 미국의 패권주의에 순응하는 이 땅 지식인들의 무지함이다.
서해의 낙조가 불길하다. 남과 북은 1999년의 불상사로부터 전혀 교훈을 얻지 못했고, 다시 교전이 일어났다. 무고한 장병들이 허무하게 전사하였음은 물론, 미국의 대북 특사파견 철회와 미 국무부 온건파의 입지 축소, 그리고 교전수칙의 개정으로 한반도에서의 전쟁위험은 더욱 커졌다. 현재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려고 한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강경파들 사이에서는 북한에 대하여도 모종의 준비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북한은 부시가 거듭 지목한 이른바 ‘최악의 지도자가 가장 위험한 무기를 지니고 있는’ 국가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전쟁을 먹고산다?
북한의 야만적인 함포공격에 대한 분노와 규탄은 당연하며 북한 군부 강경파의 위험성에 대한 각성도 절실하나, 서해상에 상존하는 위험성에 대한 지적을 ‘이적행위’로 몰고 햇볕정책과 북한에 대한 증오와 대결을 선동하며 심지어 전쟁불사를 외치는 국내의 수구냉전세력 또한 무지하고도 위험천만이다.
우리는 한국전쟁과 그 뒤 이번 서해교전까지 여러 차례 북한의 군사적 도발을 기억한다. 그리고 북한 체제의 실패와 그로 인한 주민의 참상도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북한체제를 무력, 그것도 미군의 군사력으로 쓰러뜨리는 것이 과연 온당한가? 미군은 그동안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우리 민주공화국을 지켜왔으며, 주권의 일부 양도는 그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한미 동맹관계가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를 수호하는 것을 넘어서, 오히려 전쟁을 부추기는 쪽으로 작용한다면 과연 우리의 민주헌정질서란 무엇이란 말인가?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얘기를 ‘이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적이란 무엇인가? 적은 전쟁을 전제하는 것이고, 따라서 적의 개념에 앞서 전쟁과 평화에 대하여 냉정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정전협정과 이후의 군사적 상황전개에서 볼 때, 한반도에서의 전쟁위험의 구도는 역시 북미 간의 대립이라고 할 것이다. 누구의 책임이 더 큰지는 몰라도 북한과 미국 사이의 군사적 긴장은 오히려 냉전이 해체된 후에 더욱 팽팽하다. 이미 94년에 미국은 북한 폭격 일보 직전까지 갔다. 당시 위기를 아슬아슬하게 넘겼으나 아직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우리 국방부가 북한을 굳이 주적으로 명시하기 시작한 것이 95년부터인데, 이는 북미 간의 전쟁위기가 고조되는 시기와 맞물려 있고, 또 월포이츠 국방부 부장관과 같은 강경파들이 북한을 미국의 주적으로 공언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면 이는 불순한 편견일 따름인가? 또한 북한의 침략위협에 대한 ‘선제공격’은 물론이고, 북한 체제를 붕괴하고 북한의 전 지역을 점령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한미연합사의 기본 작전계획인 ‘5027-98’은 과연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현재 미국 정부는 호전적 애국주의를 조장하고 있다. 지난해 9·11테러에서 그 진상을 규명하기도 전에 아프가니스탄을 초토화하였으며, 그것도 모자라 올해를 ‘전쟁의 해’로 선포하여 테러전을 전 세계로 확대하고, 급기야는 ‘악의 축’이라고 하여 ‘세계 최악의 체제들’을 응징하여야 한다는 성전의 깃발을 올렸다. 미국의 체제는 아마도 전쟁을 먹고사는 지경에 이른 모양이며, 21세기는 어쩌면 다시 전쟁의 세기가 될지 모르겠다. 끔찍한 것은 그 과녁에 우리 한반도가 올라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 강경파들에 대한 대처 한반도에서의 전쟁, 이는 우리 민족에게는 죽음 자체이나 미국에게는 일부 미군의 피해만 감수하면 되는 어렵지 않은 선택일 수 있다. 나아가 전시에 우리 군은 결국 미군 태평양 사령부의 지휘에 따라 움직이는 일종의 예하부대로 떨어지는 것이다. 한반도에서의 전쟁이 결코 미국의 손에 의해 이루어지면 안 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사람들은 햇볕정책이 북한을 변화시키는 데 실패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보다는 미국의 강경파들에 대한 대처가 부족한 데서 더 큰 문제를 찾아야 할지 모른다. 물론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북미 간에도 화해의 훈풍이 분 적이 있었다. 그해 가을 북한의 조명록 특사와 미국 올브라이트 국무장관 사이의 합의, 즉 양국이 적대관계를 청산하며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하겠다는 ‘북-미 공동성명’은 햇볕정책에 대한 보증이자, 한반도평화를 위한 축복이었다. 하지만 그 다짐이 부시 정부가 들어 선 뒤 하루아침에 휴짓조각으로 변할 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더욱 한심한 것은 당시 클린턴의 방북에 반대하고 부시 정부의 대북정책에 지지를 보낸 국내의 수구냉전세력들, 그리고 힘의 논리에 몸을 맡기고 미국의 패권주의에 순응하는 이 땅 지식인들의 무지함과 무책임성이다. 햇볕정책은 북한의 호전성을 완화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오히려 저 횡포한 미국의 호전세력에 전쟁의 구실을 주지 않기 위한 것임을 아는가 모르는가?

사진/ 정태욱 ㅣ 영남대 교수·법학
우리는 한국전쟁과 그 뒤 이번 서해교전까지 여러 차례 북한의 군사적 도발을 기억한다. 그리고 북한 체제의 실패와 그로 인한 주민의 참상도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북한체제를 무력, 그것도 미군의 군사력으로 쓰러뜨리는 것이 과연 온당한가? 미군은 그동안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우리 민주공화국을 지켜왔으며, 주권의 일부 양도는 그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한미 동맹관계가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를 수호하는 것을 넘어서, 오히려 전쟁을 부추기는 쪽으로 작용한다면 과연 우리의 민주헌정질서란 무엇이란 말인가?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얘기를 ‘이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적이란 무엇인가? 적은 전쟁을 전제하는 것이고, 따라서 적의 개념에 앞서 전쟁과 평화에 대하여 냉정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정전협정과 이후의 군사적 상황전개에서 볼 때, 한반도에서의 전쟁위험의 구도는 역시 북미 간의 대립이라고 할 것이다. 누구의 책임이 더 큰지는 몰라도 북한과 미국 사이의 군사적 긴장은 오히려 냉전이 해체된 후에 더욱 팽팽하다. 이미 94년에 미국은 북한 폭격 일보 직전까지 갔다. 당시 위기를 아슬아슬하게 넘겼으나 아직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우리 국방부가 북한을 굳이 주적으로 명시하기 시작한 것이 95년부터인데, 이는 북미 간의 전쟁위기가 고조되는 시기와 맞물려 있고, 또 월포이츠 국방부 부장관과 같은 강경파들이 북한을 미국의 주적으로 공언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면 이는 불순한 편견일 따름인가? 또한 북한의 침략위협에 대한 ‘선제공격’은 물론이고, 북한 체제를 붕괴하고 북한의 전 지역을 점령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한미연합사의 기본 작전계획인 ‘5027-98’은 과연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현재 미국 정부는 호전적 애국주의를 조장하고 있다. 지난해 9·11테러에서 그 진상을 규명하기도 전에 아프가니스탄을 초토화하였으며, 그것도 모자라 올해를 ‘전쟁의 해’로 선포하여 테러전을 전 세계로 확대하고, 급기야는 ‘악의 축’이라고 하여 ‘세계 최악의 체제들’을 응징하여야 한다는 성전의 깃발을 올렸다. 미국의 체제는 아마도 전쟁을 먹고사는 지경에 이른 모양이며, 21세기는 어쩌면 다시 전쟁의 세기가 될지 모르겠다. 끔찍한 것은 그 과녁에 우리 한반도가 올라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 강경파들에 대한 대처 한반도에서의 전쟁, 이는 우리 민족에게는 죽음 자체이나 미국에게는 일부 미군의 피해만 감수하면 되는 어렵지 않은 선택일 수 있다. 나아가 전시에 우리 군은 결국 미군 태평양 사령부의 지휘에 따라 움직이는 일종의 예하부대로 떨어지는 것이다. 한반도에서의 전쟁이 결코 미국의 손에 의해 이루어지면 안 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사람들은 햇볕정책이 북한을 변화시키는 데 실패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보다는 미국의 강경파들에 대한 대처가 부족한 데서 더 큰 문제를 찾아야 할지 모른다. 물론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북미 간에도 화해의 훈풍이 분 적이 있었다. 그해 가을 북한의 조명록 특사와 미국 올브라이트 국무장관 사이의 합의, 즉 양국이 적대관계를 청산하며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하겠다는 ‘북-미 공동성명’은 햇볕정책에 대한 보증이자, 한반도평화를 위한 축복이었다. 하지만 그 다짐이 부시 정부가 들어 선 뒤 하루아침에 휴짓조각으로 변할 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더욱 한심한 것은 당시 클린턴의 방북에 반대하고 부시 정부의 대북정책에 지지를 보낸 국내의 수구냉전세력들, 그리고 힘의 논리에 몸을 맡기고 미국의 패권주의에 순응하는 이 땅 지식인들의 무지함과 무책임성이다. 햇볕정책은 북한의 호전성을 완화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오히려 저 횡포한 미국의 호전세력에 전쟁의 구실을 주지 않기 위한 것임을 아는가 모르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