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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내년엔 대규모 증언대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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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7-1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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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 증언대에서 처음으로 입을 연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의 낮은 목소리

사진/ “국군은 부농도 죽였고, 피난온 공무원도 죽였다.” 50년11월 남원 강석마을에서 발생한 민간인학살 사건에 관하여 증언하는 김덕호(65)씨. (오마이뉴스)
7월4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프란체스코 교육회관에서 ‘한국전쟁전후 피학살자 유족 증언대회’가 열렸다. ‘청산과 화해를 위한 만남’이라는 주제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범국민위원회(이하 범국민위원회)가 주관한 이날 행사에는 50년도 더 지난 아픈 과거사가 피해 당사자들의 입을 통해 처연하게, 그러나 차분히 회고되고 있었다. 그들의 회고대상은 분명 과거의 것이었다.

무고한 이들을 서슴없이, 떼로…

같은 날 오전, 같은 서울 하늘 아래에서는 지난 6월29일 발발한 서해교전의 북한 쪽 책임을 묻는 규탄대회가 열렸다. 대한민국재향군인회가 용산 전쟁기념관 앞에서 연 ‘북괴 서해도발 규탄대회’와 국가유공자 관련단체들이 여의도공원에서 연 ‘북한 서해침범 규탄 합동결의대회’였다. 이들 행사는 모두 죽음을 매개로 하고 있었다. 물론 양쪽의 죽음은 시점이 다르고, 한쪽이 인정받지 못한 죽음에 대한 것이었다면 다른 쪽은 인정받은 죽음에 대한 것이라는 점에서 대조적이었다.


범국민위원회의 증언대회는 애초 6월25일에 열기로 했으나 월드컵 열기에 밀려 일주일 남짓 늦춰졌다. 그 사이 서해교전이 발발하는 바람에 행사는 힘겹게 ‘강행’되었다. 학살 피해자 유족들의 목소리는 뜻한 만큼 크게 울려퍼지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의 증언은 생생했다. 넥타이를 매고 증언대에 앉은 유족들은 드물었으며, 더러 농약회사 이름이 찍힌 모자를 눌러쓰고 나온 유족들도 있었다. 50여년 전의 비극은 그들의 현재 삶 속에 그처럼 깊숙이 눌러앉은 것처럼 보였다. 이날 행사에서는 국군의 남원 대강면 학살사건, 미군 폭격에 의한 단양 괴개굴 학살사건 등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거나 전국적 관심을 끌지 못한 학살사건에 대한 유족들의 새로운 증언이 잇따랐다.

민간인들에게 가한 국군과 미군, 경찰의 만행은 이미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그들의 죽임의 형식은 표준교범처럼 일정했다(본지 364호 표지이야기 ‘대한민국 킬링필드’ 참조). 그들은 무고한 사람들을 서슴없이 죽였으며, 떼로 몰아 죽였다. 새로운 증언들도 그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반복되는 유족들의 증언은 진부하지 않았다. 죽이는 자에겐 진부한 죽음이 당하는 자에겐 진부할 수 없었다.

“뭐라도 감투가 있는 사람들은 모두 눈을 가리고 일본도로 목을 쳤다. 그렇게 많은 피는 난생 처음 봤다. 비온 것처럼 피가 홍건하게 마당 밖으로 흘러넘쳤다. 죽은 사람들의 얼굴은 피가 모두 빠져 백인 얼굴처럼 하얗게 변했다. 같은 마을 사람인데도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여자들은 곤봉으로 쳐서 죽였다. 인민군 학살은 말만 들었지 직접 보지 못했지만, 국군과 경찰의 학살은 직접 보았고, 많이 보았다.”

전북 남원 대강면 강석마을 학살사건을 증언하는 김덕호(65)씨는 침이 마르는지 자주 혀로 입술을 축였다. 이 사건은 1950년 11월17일 국군 공비토벌대에 의해 마을 주민 90여명이 떼죽음을 당한 사건이었다. 국군은 부농도 죽였고, 피난온 공무원도 죽였다. “아군한테 그런 일을 당했다는 사실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지만, 참지 않을 수도 없었다. 지금까지 어디 한 군데 하소연할 곳이 없었다.” 4개월 동안 빨치산 치하에 시달리던 이들은 학수고대하던 국군을 환영할 겨를도 없이 이유도 모르는 채 죽어갔다.

충북 단양군 영춘면 괴개굴 미군폭격 사건은 그 그림자가 길고도 깊었다. 1951년 1·4후퇴 당시 미군은 단양군 가곡면에서 피난민들을 가로막았다. 길이 막힌 피난민들은 미군의 폭격이 계속되자 이를 피해 부근 자연동굴인 괴개굴로 모여들었다. 1월20일 미군 폭격기 4대가 4시간 동안 동굴 입구에 집중적인 폭격과 기총사격을 가했다. 동굴 입구에 있던 이불과 가재도구에 불이 붙었다. 동굴 안에 있던 사람들은 불에 타거나 연기에 질식해 숨졌고, 동굴 밖으로 나온 사람들은 폭탄 파편이나 기관총에 맞아 숨졌다.

“보복 대신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사진/ 증언을 경청하는 학살 피해자 유가족들. 통합특별법 제정운동은 모래알처럼 흩어진 유족들의 힘을 하나로 묶는 벼리 구실을 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당시 구사일생으로 동굴에서 살아나온 조봉원(67)씨가 이날 증언대에 앉았다. “‘하나님, 신선한 공기 한 모금만 주세요’라고 기도를 하다 정신을 잃었다. 이틀 만에 깨어났는데 굴 속과 굴 앞에 주검이 수북했다. 300명이 넘어 보였다. 며칠 동안 주검을 꺼냈지만 다 수습하지 못했다. 봄엔 동굴에 물이 차는데, 여러해에 걸쳐 물과 함께 주검이 떠내려왔다.” 조씨는 “주검이 떠내려오면 개들이 주검의 머리를 물고 다녔다. 그 머리를 보고 자기 어머니라며 수습해 장사지낸 사람도 있었다”고 증언했다.

그들은 한을 풀려는 듯 얘기했지만, 주어진 시간은 너무 짧았다. 그들은 한번 잡은 마이크를 놓지 않으려 했고, 다음 사람의 증언을 위해 사회자는 증언자를 재촉해야 했다. 그들은 50여년 전의 일을 얘기했지만 과거에 집착하지 않았다. 복수나 처벌 대신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얘기했다.

행사는 증언에서 통합특별법 논의로,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졌다. 특별법 제정이나 위령비 설립 등 개별적인 성과들이 소개되었다. 그러나 소개된 내용들은 초기의 성과에 견줘 진행이 더디고 힘겨워 보였다. 강창일 제주4·3연구소장(배재대 교수)은 “1999년 12월16일 ‘4·3 특별법’이 제정되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작업이 국가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지만 가해자 쪽이 자료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으면서 집요하게 훼방을 놓고 있다. 많은 한계와 어려움에 봉착해 있다”고 밝혔다.

장성 출신 모임인 성우회가 ‘4·3특별법 위헌 소송’을 내는가 하면 지난해 말부터 명예회복 심사기준을 둘러싸고 “4·3사건 수형자나 방화범 등은 명예회복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3월14일 중앙위원회에서 통과된 ‘희생자 심의·결정기준’에서 남로당 제주도당 핵심간부나 군·경 진압에 주도적이고 적극적으로 대항한 무장대 수괴급 등은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명백한 증거자료가 있을 때 명예회복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했다.

강 소장은 “중앙위의 기준은 여전히 4·3사건을 공산무장폭동으로 규정하려는 뉘앙스가 풍긴다. 아직 4·3사건이 발발한 원인과 성격이 명확히 규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불법 감금과 구속에 따라 처형된 사람들에 대해 이런 예단을 하고서야 어떻게 제대로 진상을 규명할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또 “그나마 4·3특별법 제정은 일부 가해자를 제외한 모든 도민들이 연대해 싸웠기 때문에 가능했다. 다른 학살사건의 유족들도 지역을 불문하고 연대해서 싸우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50년도 참아왔는데…"

사진/ 학살현장을 증언하는 사진.
통합특별법 제정운동은 모래알처럼 흩어진 유족들의 힘을 하나로 묶는 벼리 구실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지난 4월, 국회 행자위에 제출됐으나 의원들이 각당 대선후보 경선에 매달리는 바람에 정족수 미달로 통과되지 못했다. 범국민위원회는 올해 안에 이 법이 통과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뇌사상태에 빠진 국회가 이 법안 통과를 위해 의식을 되찾을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정치권은 서해교전에 기민하게 대응하고 있지만, 100만명 이상이 학살당한 역사적 비극은 뒷전으로 밀어두고 있다.

이날 사회를 본 이영일 범국민위원회 정책기획실장(여수지역사회연구소 소장)은 “통합특별법 제정이 될 듯 될 듯 되지 않고 있지만 50년을 참아온 만큼 조급하게 실망하지 말자”고 제안했다. 김동춘 범국민위원회 사무처장(성공회대 교수)은 “지역사회에서부터 착실하게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노력을 기울이다 보면 내년에는 수백, 수천명이 모이는 증언대회를 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족들의 낮은 목소리는 현재진행형이며 미래지향적이다.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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