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백인용병의 전통을 깨다
등록 : 2002-07-09 00:00 수정 :
로마 교황청의 성베드로 광장을 방문한 관광객들은
다니 바흐만(22·오른쪽)을 보고 당혹스러워한다. “당신 정말 스위스인 맞아요?” 그의 피부색 때문에 나오는 질문이다. 그러면 바흐만은 “100% 스위스인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답한다.
그는 약 500년 역사를 가진 교황의 경호부대인 ‘스위스 가드’에서 근무하는 최초의 비백인 병사다. 1506년 창설된 교황 경호부대는 지금까지 스위스 출신의 백인 용병들로만 채워졌으나 그가 지난달 부대원이 되면서 이런 전통이 깨졌다. 바흐만은 “스위스 가드에서 근무하다 퇴역한 마을 사람한테 얘기를 듣고 지원하기로 마음을 굳혔다”고 말했다. 자신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는 관광객들한테 더 친숙하게 다가가기 위해 그는 요즘 이탈리아어를 배우고 있다.
인도의 북부지방에서 태어나 고아원에 있던 바흐만은 5살 때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스위스의 바흐만 가족에 입양됐다. 그는 “인도에 관한 기억은 전혀 없지만 언젠가 태어난 곳에 한번 가보고 싶다”고 말한다. 지금은 멋진 제복을 입고 성베드로 광장에 서 있는 게 좋다. 바흐만이 입고 있는 제복은 르네상스 때의 위대한 예술가인 미켈란젤로가 도안한 것으로 알려진다. 스위스 가드는 세계에서 규모가 가장 작은 군대로 부대원이 100명 남짓이다.
교황 경호부대가 스위스 출신으로 이뤄진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중세와 르네상스 때 스위스인들은 유럽에서 가장 뛰어나고 믿을 수 있는 용병으로 꼽혔다. 전투를 잘했음은 물론 배신이 난무하던 시절에 충성스러움으로 이름났다. 지금도 스위스 가드의 용병들은 ‘필요하다면 교황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친다’고 선서한다. 그리고 1527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칼 5세의 군대가 로마를 공격해 교황 클레멘트 7세를 포로로 잡을 때 그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약 150명의 용병을 떠올리며 해마다 충성맹세를 한다. 그러나 스위스 가드도 요즘 낮은 임금 때문에 신병 채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황상철 기자/ 한겨레 국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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