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전쟁
등록 : 2002-07-09 00:00 수정 :
일요일 아침에 가끔 <전원일기>를 봅니다. 양촌리 일용이네와 회장님댁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소박한 얘기지만 채널에 손이 가는 것은 편안함 때문입니다.
정겨운 사투리에 들녘 풍경은 도회지의 사랑싸움에 비할 수 없는 넉넉함을 줍니다. 템포가 빠르지 않아 신문을 보거나 뭘 먹으면서 뉘엿뉘엿 볼 수 있는 점도 좋습니다. 최근에는 시시하다고 보지 않던 아이들이 더러 인심쓰듯 곁에서 봐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시골 농촌의 진실은 드라마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얼마 전부터 연재를 시작한 ‘영광댁 사는 이야기’는 가물가물한 실상을 솔솔 전해주고 있습니다.
“가진 땅뙈기도 적고 남편이 일을 놓아버리니 다른 일을 찾을 수밖에 없었는지 요즘 그녀는 식당에 나간단다. 네 아이와 알코올 중독자 남편, 그리고 간간이 벌어지는 남편과의 혈투를 감당해야 하는 몸짓 작은 그녀의 세상살이가 요 며칠 내 마음을 내리누른다.”
영광 여성의전화 이태옥 사무국장이 이번에 전해온, 알코올 중독자 남편과 네 아이를 데리고 사는 고단한 농촌 아낙의 이야기입니다. 이씨는 월드컵 기간 중에도 일과 휴식이 구분된 도회지와 달리 텔레비전 중계를 잠깐 보고는 김매러 나가는 시아버지 이야기를 전하면서 들녘엔 주름선 굵은 노인들의 힘겨운 노동이 있을 뿐이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전원일기>의 값어치가 떨어지는 건 아닙니다. 드라마는 드라마이고, 그 정도의 넉넉함을 선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값어치가 있다고 봅니다.
다만 젊은이들이 떠난 농촌은 농가빚 같은 통계수치로 실감할 수 없을 만큼 팍팍합니다. 여유로운 전원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살아남으려는 힘겨운 투쟁의 장입니다.
연평의 어민들에게도 그림 같은 섬과 바다는 힘겨운 생존의 장입니다. 분단, 조업경계선 이전에 어떻게든 먹고살아야 하는 생활터전입니다. 어민들은 이중의 굴레와 싸워왔습니다.
연평 어민들은 결코 북한 경비정을 자극하려고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의도하지 않았지만 생존을 위한 어로가 때로는 이 지역의 긴장과 신경전의 수위를 높였을 것입니다. 곧 어민들 때문에 남북한 사이에 교전이 일어났다고 하는 것은 맞지 않지만, 꽃게잡이가 교전의 한 빌미가 됐다고는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지역도 아닌 3년 전 교전이 일어난 곳에서 다시 분쟁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꽃게잡이는 어민들에겐 사활이 걸린 ‘일상의 전쟁’이며, 그것은 앞으로도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총성만 없지 교전보다 더 치열한 전쟁입니다.
교전수칙을 바꾸고 해군력을 강화하는 것보다, 어민들의 생존을 위한 일상의 전쟁에 평화를 만들어주는 것이 근본적 방책이 될 것입니다.
한겨레21 편집장 정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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