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운동권과 어울린 이야기
등록 : 2002-07-09 00:00 수정 :
“하루도 빠짐없이 우편을 통해 10여장씩의 소액 수표가 도착하더군요. 적게는 20달러에서 많게는 200달러까지 정기적으로 답지하는 이런 자발적 기부금이 미국 풀뿌리 시민운동의 힘이라고 느꼈습니다.”
미국 플로리다주에 있는 평화운동단체 ‘글로벌네트워크’(사무총장 브루스 가그넌)에서 인턴생활을 마치고 최근 귀국한 대학원생
박지호(26)씨가 들려주는 ‘미국 운동권 얘기’는 재미있다. 이를테면 평화운동가들 가운데 50대는 막내급에 속하고, 왕성하게 활동하는 90대 평화운동가의 활약상이 그렇다. 걸프전에 참전했다 전향(?)한 ‘아줌마’ 활동가가 있는가 하면, 가톨릭 사제직을 포기하고 평화운동에 뛰어들었다 감옥 신세까지 진 인물도 있다고 한다.
5개월 남짓 미국에 머무는 동안 박씨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지난 4월 콜로라도 스프링스에서 열린 군수산업박람회 때 일이다. 도시 경제활동 인구의 약 3분의 2가 방산업체 종사자인 그곳에서도 평화·군축 운동을 벌이는 이들이 있다고 한다. 50인조 오케스트라의 장엄한 연주 속에 3천여명의 참가자들이 비장한 표정으로 국가를 부르는 모습을 보며 박씨는 9·11 테러 뒤 달라진 미국사회의 모습을 느꼈다고 했다.
“박람회 기간 동안 한반도 상공에서 미사일방어망 시뮬레이션을 벌이는 모습을 담은 동영상이 상영된 적이 있어요. 지켜보던 관중들이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이 모의 요격실험에 성공하자 함성과 함께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내더군요. 남의 나라 땅을 대상으로 태연히 ‘전쟁연습’을 벌이는 모습에 섬뜩하기까지 했습니다.”
박씨가 전하는 미국 평화운동가들의 논리는 간단했다. 압도적 군사력을 가진 미국은 미사일방어용 예산을 사회복지비로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을 설득시키지 못하는 운동은 설자리가 없다”고 믿기 때문에 복잡한 수사는 동원되지 않는다. 그런 그들이 주한미군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네가 살고 있는 도시 한복판에 남의 나라 군대 수만명이 주둔하고 있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느냐”고 되묻는 그들에게 박씨는 답을 하지 못했단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