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찌르는 여성과 청소년의 함성은 혹 억눌린 그들의 꿈과 욕구가 터져나오는 비명소리가 아닐까? 이런 현상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여성과 청소년의 꿈과 욕구를 억누르고 있는지를 잘 드러낸다.
‘월드컵 폭풍’이 온 나라를 휩쓸고 지나갔다. 하지만 행여 그 바람의 끝자락에 묻어 있는 감동의 여운을 놓칠세라 우리는 앞으로도 얼마 동안 히딩크 감독, ‘우리 대표팀’과 ‘붉은 바다’의 스토리를 좇아 TV 채널을 바꾸고, 신문을 뒤적이며 축구얘기를 할 것이다. 월드컵에 관한 얘기가 아니면 도무지 사람들이 관심을 두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 지면에서도 월드컵 얘기를 비켜갈 수 없었다. 도대체 지난 한달간 우리에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여성과 청소년의 함성 예상치 못한 엄청난 현상의 의미를 규명하려는 시도는 이미 진행 중이며, 이를 더 세련되게 정리하느라 우리 사회는 앞으로 상당 기간 바쁠 것이다. 거리에 흘러넘치는 붉은 물결에서 혹자는 ‘국가주의적 광기’를 보고, 혹자는 ‘축구를 빙자한 신명나는 축제의 마당’을 본다. 몇십만명의 거대한 인파가 경찰의 저지선 안에서 질서를 유지하는 모습을 보고 혹자는 ‘우리 사회의 성숙한 시민의식’에 경배하고, 혹자는 ‘일탈의 욕구가 권력이 허용하는 선 안에서 길들여질 위험성’을 경계한다. 이번 월드컵을 통해 확인된 우리 사회의 잠재적 에너지를 사회 발전의 새로운 동력으로 전환할 방도를 찾자는 주장은 곧바로 신명나는 놀이판에서의 해방과 긍정의 경험을 그 자체의 아름다움으로 인정하자는 반론을 부른다. 월드컵 현상을 통해 드러나는 이러한 중층적 의미에 대해 앞으로 더 정치한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여기서는 다만 이번 월드컵 열기를 통해 모습을 드러낸 우리 사회의 빛과 그늘의 단면을 지적해본다.
이번 월드컵 내내 TV 카메라의 집중 조명을 받은 거리의 응원물결에서 한 가지 두드러지는 점이 있다. 다른 나라에선 남성 청·장년이 거리응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데 비해 우리는 여성과 청소년의 비율이 매우 높았다는 점이다. 거리응원에서 분출되는 열정과 환희가 억눌리고 곤고한 일상에서의 해방의 뜻이라면, 하늘을 찌르는 여성과 청소년의 함성은 혹 억눌린 그들의 꿈과 욕구가 터져나오는 비명소리가 아닐까? 이런 현상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여성과 청소년의 꿈과 욕구를 억누르고 있으며, 또 이를 분출할 수 있는 ‘합법적’ 공간을 제약하였는지를 잘 드러낸다. 그런 뜻에서 사실 차별적이고 억압적인 일상을 떨치고 날아올라 공동체적인 환희를 경험할 수 있는 계기라면, 여성과 청소년에게 그것은 축구나 월드컵이 아닌 무엇이라도 좋았다. 우리는 이미 함성의 바다에 몸을 던지는 ‘오빠부대’와 열광적으로 춤에 몰두하는 ‘관광버스 아줌마’들에게서 그 단초를 보았다. 축제의 뒤에 드리운 그늘, 즉 꿈에서 깨어보니 다시 삭막한 무한경쟁의 장에 외로이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해야 하는 수험생들이 월드컵 이후에 겪을 후유증도 우리 사회가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할 것이다. 타자를 보는 넉넉한 시선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 퍼지기 시작한 희망의 빛도 있다. 우리 사회에는 ‘내’가 주변적인 위치에 놓여 있어도 중심의 시각으로 ‘나’와 주변을 재단하는 경향성이 널리 퍼져있다. 그런 만큼 서구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변방국들은 우리에겐 대개 비하와 차별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이번 월드컵을 통해 세네갈 같은 아프리카 국가를 비롯해, 낯설고 대개 국가적 위상도 미미한 ‘축구 변방국’들에게 서포터스를 비롯한 우리 사회가 보여준 성원은 우리 사회에선 획기적인 일이었다. 세네갈과 터키, 한국 대표팀의 선전은 언론과 자본이 영웅으로 치켜세운 몇몇 축구스타들과 유럽의 축구강국들의 우월성을 포장하고 있던 거품을 모두 걷어냈다. 합리와 세련의 보루로 여겨지던 대다수 유럽 보수언론들이 제기한 유치한 음모론의 배후에 자리잡은 유럽중심주의의 오만함과 옹색함도 드러났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에 의연하고 넉넉한 시선으로 타자를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주어진 것이 참으로 반갑다.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승승장구하며 갑자기 축구강국의 대열에 들면서 우리 사회에 모처럼 마련된 ‘약자 간의 연대’의 심성이 오히려 사그라지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축구가 언더도그의 ‘순수와 열정’의 축구에 ‘개인기’마저 더해 급격히 세계 축구강국의 대열에 들지는 않았으면 한다. 우리 축구가 딱 우리 사회의 정치·사회·문화·교육 등의 성숙과 발맞춰 성장해가면 좋겠다. 국가 대항 스포츠에서 자국의 전반적인 사회적 성숙도를 크게 뛰어넘는 성취를 이루고, 쇠락의 길로 접어든 많은 나라들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라도.

사진/ 정진웅 l 성공회대 강사·문화인류학 (김재훈 기자)
여성과 청소년의 함성 예상치 못한 엄청난 현상의 의미를 규명하려는 시도는 이미 진행 중이며, 이를 더 세련되게 정리하느라 우리 사회는 앞으로 상당 기간 바쁠 것이다. 거리에 흘러넘치는 붉은 물결에서 혹자는 ‘국가주의적 광기’를 보고, 혹자는 ‘축구를 빙자한 신명나는 축제의 마당’을 본다. 몇십만명의 거대한 인파가 경찰의 저지선 안에서 질서를 유지하는 모습을 보고 혹자는 ‘우리 사회의 성숙한 시민의식’에 경배하고, 혹자는 ‘일탈의 욕구가 권력이 허용하는 선 안에서 길들여질 위험성’을 경계한다. 이번 월드컵을 통해 확인된 우리 사회의 잠재적 에너지를 사회 발전의 새로운 동력으로 전환할 방도를 찾자는 주장은 곧바로 신명나는 놀이판에서의 해방과 긍정의 경험을 그 자체의 아름다움으로 인정하자는 반론을 부른다. 월드컵 현상을 통해 드러나는 이러한 중층적 의미에 대해 앞으로 더 정치한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여기서는 다만 이번 월드컵 열기를 통해 모습을 드러낸 우리 사회의 빛과 그늘의 단면을 지적해본다.
이번 월드컵 내내 TV 카메라의 집중 조명을 받은 거리의 응원물결에서 한 가지 두드러지는 점이 있다. 다른 나라에선 남성 청·장년이 거리응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데 비해 우리는 여성과 청소년의 비율이 매우 높았다는 점이다. 거리응원에서 분출되는 열정과 환희가 억눌리고 곤고한 일상에서의 해방의 뜻이라면, 하늘을 찌르는 여성과 청소년의 함성은 혹 억눌린 그들의 꿈과 욕구가 터져나오는 비명소리가 아닐까? 이런 현상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여성과 청소년의 꿈과 욕구를 억누르고 있으며, 또 이를 분출할 수 있는 ‘합법적’ 공간을 제약하였는지를 잘 드러낸다. 그런 뜻에서 사실 차별적이고 억압적인 일상을 떨치고 날아올라 공동체적인 환희를 경험할 수 있는 계기라면, 여성과 청소년에게 그것은 축구나 월드컵이 아닌 무엇이라도 좋았다. 우리는 이미 함성의 바다에 몸을 던지는 ‘오빠부대’와 열광적으로 춤에 몰두하는 ‘관광버스 아줌마’들에게서 그 단초를 보았다. 축제의 뒤에 드리운 그늘, 즉 꿈에서 깨어보니 다시 삭막한 무한경쟁의 장에 외로이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해야 하는 수험생들이 월드컵 이후에 겪을 후유증도 우리 사회가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할 것이다. 타자를 보는 넉넉한 시선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 퍼지기 시작한 희망의 빛도 있다. 우리 사회에는 ‘내’가 주변적인 위치에 놓여 있어도 중심의 시각으로 ‘나’와 주변을 재단하는 경향성이 널리 퍼져있다. 그런 만큼 서구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변방국들은 우리에겐 대개 비하와 차별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이번 월드컵을 통해 세네갈 같은 아프리카 국가를 비롯해, 낯설고 대개 국가적 위상도 미미한 ‘축구 변방국’들에게 서포터스를 비롯한 우리 사회가 보여준 성원은 우리 사회에선 획기적인 일이었다. 세네갈과 터키, 한국 대표팀의 선전은 언론과 자본이 영웅으로 치켜세운 몇몇 축구스타들과 유럽의 축구강국들의 우월성을 포장하고 있던 거품을 모두 걷어냈다. 합리와 세련의 보루로 여겨지던 대다수 유럽 보수언론들이 제기한 유치한 음모론의 배후에 자리잡은 유럽중심주의의 오만함과 옹색함도 드러났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에 의연하고 넉넉한 시선으로 타자를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주어진 것이 참으로 반갑다.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승승장구하며 갑자기 축구강국의 대열에 들면서 우리 사회에 모처럼 마련된 ‘약자 간의 연대’의 심성이 오히려 사그라지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축구가 언더도그의 ‘순수와 열정’의 축구에 ‘개인기’마저 더해 급격히 세계 축구강국의 대열에 들지는 않았으면 한다. 우리 축구가 딱 우리 사회의 정치·사회·문화·교육 등의 성숙과 발맞춰 성장해가면 좋겠다. 국가 대항 스포츠에서 자국의 전반적인 사회적 성숙도를 크게 뛰어넘는 성취를 이루고, 쇠락의 길로 접어든 많은 나라들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라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