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대 오르는 ‘더러운 전쟁’
등록 : 2002-07-03 00:00 수정 :
“나는 책임 없다!”
루이스 에체베리아(80) 전 멕시코 대통령은 퉁명스러운 말투로 아주 짧게 대답한다. 대통령으로 재직하던 때(1970∼76년) 멕시코 비밀경찰이 저지른 만행과 자신은 아무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멕시코 역사상 처음으로 특별검사한테 불려가 증언해야 하는 전직 대통령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비센테 폭스 현 대통령은 “이제는 누구나 법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며 사실상 에체베리아의 소환을 보증한 상태다. 비밀경찰에게 가족을 잃은 시민들의 관심은 수백명을 고문하고 살해한 혐의가 있으나 공개되지 않은 74명의 전직 정부관리들 명단에 에체베리아가 포함되었는지에 모이고 있다.
멕시코 정부가 196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초반까지 반정부인사를 상대로 벌인 ‘더러운 전쟁’ 때 불법감금돼 살해된 사람은 최소 275명에서 많게는 그 두배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1929년부터 2000년까지 정권을 잡은 제도혁명당은 대외적으로 쿠바에 우호적인 입장을 취하고, 라틴아메리카의 정부들로부터 탄압받는 좌파 인사들에 은신처를 제공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딴판이었다. 반정부인사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해 고문을 일삼았고, 비사법적인 처형까지 자행했다. 특히 에체베리아가 내무장관직에 오른 68년부터 대통령으로 재직할 당시 더러운 전쟁은 정점에 달했다. 72년 게레로주의 한 마을에서 비밀경찰에게 붙잡혀간 95명의 남자들은 모두 실종되기도 했다.
특별검사는 에체베리아한테 71년 6월10일 멕시코시티에서 일어난 사건에 관해 물을 예정이다. 8천여명의 학생들이 이날 시내의 광장에서 반정부구호를 외치며 행진을 하자 ‘매’라고 불리는 비밀경찰이 이들을 공격했다. 이날과 이후 비밀경찰이 체포해 고문하고 살해한 이들은 29명이나 됐다. 에체베리아는 당시 “아무도 살해되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과거청산 작업을 벌이고 있는 멕시코 정부는 의회에서 다수 의석을 차지한 제도혁명당의 압력에 눌려 진실위원회를 설치하는 대신 검찰이 당시 사건들을 조사하도록 했다.
황상철 기자/ 한겨레 국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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