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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월드컵이 미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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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7-0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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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강신화’ 뒤에서 눈물 삼키는 노동계… ‘월드컵 특수’를 함께 누릴 수 없나

사진/ “노동자팀도 뛰고 싶다.” 지난 6월27일 ‘국제 공동의 날’ 서울행사에 참가한 노동자들이 구속 노동자 석방 등을 요구하며 감옥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용호 기자)
한국 축구대표팀이 유럽축구의 높은 벽을 체력과 정신력으로 극복해가는 한달 동안, 이 사회의 다른 곳에서 노동자들은 수배와 구속, 손해배상으로 이어지는 노동탄압과 사회적 무관심의 벽을 넘어서기 위해 몸을 내던지고 있었다. 그러나 월드컵 4강 진출이라는 한국축구의 성공과 달리 이들은 장기파업에 따른 수배와 손해배상 청구소송, 그리고 월드컵 이후 예상되는 공권력 투입에 다시 긴장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두산중공업·대형병원 등 파업 장기화

5월 중순에 시작된 노동계의 임단협 시기 집중 파업은 월드컵이 개막되기 전 끝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대형 사업장을 중심으로 한달 이상 계속되고 있다. 금속노조 소속 최대 사업장인 창원의 두산중공업이 사업장을 굳게 걸어잠근 채 파업을 계속하고 있고, 콜트악기, 갑을플라스틱 등 중소 제조업 사업장의 파업도 교섭이 원활히 이뤄지지 못하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또한 경희의료원과 성모병원(강남·여의도·의정부) 등 보건의료노조 소속 대형병원들의 파업이 장기화하고 있고, 민주택시노조도 완전월급제 실시를 요구하며 인천지역을 중심으로 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사업장을 점거하고 이른바 ‘옥쇄 파업’을 벌이고 있는 두산중공업과 필수 공익사업장으로 분류돼 불법파업을 전개할 수밖에 없는 병원사업장 등은 월드컵 기간에 국제적 시선을 우려해 연기됐던 공권력 투입이 현실화될 것으로 예상돼 노동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이와 함께 한국시그네틱스, 포항제철 고용승계 특별위원회(삼미특수강노조) 등 장기투쟁 사업장들이 월드컵 기간에 극단적인 투쟁을 했음에도 여론의 주목을 받지 못한 채 투쟁을 정리하고 월드컵 이후를 기약하고 있다.

애초 민주노총은 해마다 5월 말부터 6월 초에 집중하던 임단협을 월드컵 기간을 배려해 5월 말과 7월로 나누어 실시하기로 했다. 특히 5월 중순으로 임단협 시기를 맞춘 금속노조·보건의료노조·택시노조 등은 월드컵을 앞두고 사회통합에 대한 정부와 사용자 쪽의 노력으로 임단협을 월드컵 이전에 마무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노동계도 ‘월드컵 특수’를 기대했던 셈이다.

그러나 결과를 놓고 볼 때 월드컵 특수는 정부와 사용자에게만 이용된 것으로 분석된다. 월드컵을 앞둔 정부의 노사평화선언 움직임 등이 오히려 사용자들의 교섭회피를 불러왔다는 것이다. “월드컵을 앞두고 설마 파업을 전개하겠느냐”는 사용자들의 태도는 월드컵 개막과 더불어 “얼마나 더 지속할 수 있겠느냐”는 분위기로 이어지더니, 이제 월드컵이 끝나자 장기파업의 책임을 노조 쪽에만 물으려 하고 있다. 인천지역의 택시노조 파업을 해결하기 위해 시민사회단체들까지 나서서 완전월급제 실시를 요구하고 있으나 사용자들은 역시 묵묵부답이다.

보건의료노조 이주호 정책국장은 “예년과 다르게 민주노총에서는 월드컵을 비켜가는 투쟁을 통해 임단협을 원만히 마무리지으려고 했으나 오히려 정부나 사용자들이 이를 역이용해 노정관계가 어려워지고 있다”며 “월드컵 분위기 속에 노사관계가 협력적으로 전개되기보다는 대립적인 갈등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정부의 안일한 대응과 사용자들의 교섭회피로 파업이 장기화하고 있는데도 정부가 월드컵 이후 공권력에만 의존해 파업문제를 해결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사용자는 교섭회피, 정부는 공권력 위협

사진/ 월드컵 성공에도 노동자들은 일터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거리시위를 벌이는 금속산업연맹 상격 노숙 투쟁단.
월드컵 4강 경기를 하루 앞둔 6월24일 아침에는 파업 중인 경희의료원과 강남성모병원에 수십명의 사복경찰과 수백명의 전투경찰이 체포영장이 발부된 조은숙 경희의료원 지부장 등 노조간부들을 체포하기 위해 들어갔다가 노조원들의 저항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같은날 오후에는 보건의료노조 염기용 울산경남지역본부장이 사무실에서 연행됐으며 다음날 새벽에는 명동성당에서 농성 중인 이호동 위원장이 경찰에 연행돼 구속됐다.

이미 이번 월드컵 기간에만 병원파업과 관련해 보건의료노조 18명, 두산중공업 파업과 관련해 22명 등 모두 40여명의 노조간부들에게 체포영장이 발부됐으며, 노조에 100억여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과 가압류가 제기됐다. 이 수치는 이들 사업장에 공권력이 투입될 경우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사진/ 파업이 장기화되는 경희의료원 노조원들.
길게는 수년에서 짧게는 수개월째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와 사회적 무관심 속에 싸워온 장기투쟁 노동자들의 목소리도 월드컵 열기에 묻히기는 마찬가지다. 13개 장기투쟁 사업장들은 지난 5월22일 서울 주요 도심에서 무기한 노숙농성에 들어가며 ‘월드컵 특수’를 기대했다. 그러나 월드컵을 앞둔 사회통합 분위기와 노동부의 노력으로 사태를 해결하고 작업장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이들의 기대도 사회적 무관심과 사용자들의 변치 않는 태도로 다시 물거품이 됐다.

복직투쟁 6년째를 맞고 있는 포항제철 고용특별위원회(삼미특수강)의 나이든 노동자들은 마지막 투쟁이라는 각오로 포항제철 유상부 회장 자택 앞 등에서 20여일간의 노숙농성을 전개했으나,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한 채 뒷날을 기약하며 6월 초 지역으로 내려가야 했다. 대우차의 제너럴모터스(GM) 인수로 차량판매체계를 직영점 중심에서 대리점 중심으로 전환하려는 구조조정에 맞서 싸우던 대우자동차판매노조도 월드컵이 개막되면서 외국인들이 왕래가 많은 호텔 주변과 시내 도심에서 1인시위를 전개했으나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다. 6월10일 조합원들을 현장에 복귀시킨 뒤 체포영장이 발부된 노조간부들만 인천 답동성당에 남아 농성을 전개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다. 6월12일부터 300일 넘게 파업을 전개하던 한국시그네틱스노조도 남은 조합원 50여명 전원이 마지막 투쟁이라는 각오로 노사정위원회를 점거한 채 10여일 동안 집단 단식농성을 전개하며 회사와의 교섭재개를 요구했다. 그러나 노조의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는 회사의 완강한 입장은 대화의 여지를 남기지 않았으며, 결국 노조는 단식으로 상한 몸만 얻은 채 21일 농성을 풀고 해산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일보의 광주전남지역 신문을 인쇄하던 조선일보 자회사 조광출판노조 조합원들도 월드컵 열기가 무르익어가던 5월28일 광화문 조선일보 사옥 인근에서 노숙농성에 돌입했다. 그러나 광화문 한복판에 불어닥친 월드컵 열기는 이들의 투쟁열기를 삼켜버렸다. 정영환 지부장은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월드컵 거리응원 때) 차량홍보를 시도했지만 응원단의 열기 속에 우리의 주장은 금방 묻혀버렸다”고 안타까워했다.

국민통합 분위기 걸맞은 해결책을…

온 나라가 한국 축구대표팀의 월드컵 4강 진출 열기에 휩싸인 6월27일에는 전 세계 노동자들까지 나섰다. 26개국의 한국대사관 앞에는 수천명의 각국 노동자들이 모였다. 이 집회는 한국축구의 성공을 축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속, 수배,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시달리는 한국 노동자들과 연대해 한국 정부의 노동탄압에 항의하기 위한 것이었다.이미 한국 노동계에는 45명의 구속 노동자와 62명의 수배 노동자들이 있으며 사용자들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따른 가압류액만 1250억원에 이른다. 이번 파업을 통해 이례적으로 대형병원 사업장들도 손해배상 청구소송으로 노조의 목을 죄고 있다.

정부는 한국축구의 성공을 국가적 성공으로 이어가기 위해 사회 전 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에 이르기 위한 대책을 마련한다고 분주하다. 노동계는 그 흐름 속에 한국의 노사관계도 선진국 수준에 이를 수 있기를 희망한다. 민주노총은 7월 첫쨋주까지 파업 사업장에 대한 노동부의 수습책 마련을 촉구한 상태이며, 수습책이 미흡할 경우 7월 둘쨋주부터 다시 강도높은 투쟁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공권력에 의존한 사태해결이 아니라 월드컵으로 이룩된 국민통합 분위기에 걸맞은 사태해결책을 내놓을지 노동계의 이목이 집중된다.

김재홍/ 매일노동뉴스 기자 jaehong@labo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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