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을 시험하는 두 가지 사건
등록 : 2002-07-03 00:00 수정 :
월드컵의 열매는 무척 많지만 첫 번째를 꼽으라면 성숙을 들고 싶습니다. 우리 사회가 한 단계 성숙한 것은 4강 쾌거나 경제적 효과와 비교할 수 없는 무형의 성과입니다.
성숙하다는 것은 일희일비하지 않고 중심이 잡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엄숙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기뻐할 때 기뻐하고 슬퍼할 때 슬퍼하는 것입니다. 화를 낼 때와 칭찬할 때를 구분할 줄 아는 것입니다.
그 바탕은 원칙과 신뢰입니다. 성숙은 또한 자존심과 균형감각입니다. 성숙된 사회는 합리적이고 예측가능해 쓸데없는 오해와 갈등 같은 사회적 비용을 크게 줄입니다.
히딩크는 성숙의 맛을 보여주었습니다. 분명한 목표 설정, 과학적 진단과 합리적 처방, 언행일치로 신뢰를 주었습니다. 그의 어록을 보면 허튼소리가 없습니다. 그는 지난 2월 상황이 좋지 않을 때 “장기적인 계획이 있다. 순간의 결과만 보지 말아 달라”고 말했습니다. 월드컵을 50일 앞둔 기자회견에서는 “현재 대표팀의 16강 진출 가능성은 50%다. 앞으로 하루에 1%씩 향상시켜 월드컵 개막과 함께 100%를 만들겠다”고 족집게 예언을 했습니다.
붉은악마와 시민들은 마음껏 열광하면서도 지킬 것은 지켰습니다. 축제와 일상을 구분하고, 승부를 겨루는 상대 국가를 배려하는 여유도 보였습니다.
정부는 월드컵 성과를 사회 각계에 파급시키기 위해 대책을 마련한다고 합니다. 성숙은 자발성과 자율성을 전제로 합니다. 정부가 주도한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합리적인 일처리를 할 때 다져질 것입니다.
우리의 성숙도를 시험하는 두 가지 사건이 월드컵 기간에 발생했습니다. 지난 6월13일의 주한미군의 여중생 치사사건과 29일 일어난 서해교전입니다.
두 사건은 각각 훈련상황과 전투상황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도 가슴아프게 우리의 아들·딸을 잃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분단과 외세개입이라는 군사적 긴장상황에서 비롯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두 사건엔 또 우리가 분노하고 흥분할 요소가 너무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응하는가 하는, 우리 사회의 성숙도가 시험받고 있습니다.
이런 민감한 사안일수록 중심을 지켜야 할 것입니다. 현상에 일희일비하는 것보다 철저히 원인을 규명하고 냉정하게 처방을 내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비슷한 사태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또 사건이 궁극적으로 역사 발전에 디딤돌이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히딩크는 월드컵 개막 직전에 “제대로 하기 위해 어려운 길을 돌아왔다. 비난도 많이 받았지만 결국 틀리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려운 길을 돌고 있습니다. 하지만 남북간의 화해 협력, 한-미간의 불평등 해소를 목표로 진득하게 나아간다면 결국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또 한 단계의 성숙을 의미합니다.
한겨레21 편집장 정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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