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순천 주암면 사람들의 13년 염원… 논밭 파헤치고 마을 공동체 파괴 조짐
마을 진입로에서부터 파헤쳐진 산등성이가 훤히 내다보였다. 전남 순천시 주암면 문길리에 사는 조동영(58)씨는 그 산만 보면 속이 끓는다. 13년 동안 기를 쓰고 막았던 골프장 공사가 지난해 가을부터 시작된 탓이다. 주암면에서 송광사 가는 길, 등학산 줄기 가재골 일대 47만여평의 산은 허옇게 벗겨진 몸을 무방비로 굴삭기에 내주고 있었다. 버석거리는 흙바람이 마을의 논밭을 휘감고 지나갔다.
골프장 건설로 전국이 몸살을 앓고 있다. 이곳에 들어서는 주암컨트리클럽 공사도 예외가 아니다. 13년간 밀고 당기며 질긴 싸움을 한 곳이지만, 지난해 가을부터 산은 벗겨지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극심한 충격과 무력감에 빠져들었다. 이 마을에서 13년 동안 벌어진 일은 전국의 논과 산을 갈아엎은 골프장의 뒷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한다.
골프장 건설에 신음하는 금수강산
이곳은 조씨와 한씨 등의 집성촌이다. 높지 않은 산자락이 굽이굽이 마을을 끌어안은 모양새가 용트림을 닮았다고 하여 끝마을 이름은 용천리다. 개발업체(현 보성레저산업)는 처음(90년)에는 사슴목장을 한다고 소문을 내며 대부분 문중 소유인 땅을 사들였다. 그러나 노태우 정권 말기 선심쓰듯 내준 골프장 사업허가권을 따놓은 상태였다. 골프장이 들어선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된 마을 사람들이 들고일어나자 94년께 업체는 관광타운을 짓는다며 일부 마을 대표들과 약정 합의서를 쓰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 역시 거짓말로 드러났다. 97년 가을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안 된다”고 나서는 마을 노인들을 어디선가 온 건장한 청년들이 밀어붙이며 골프장 착공에 들어갔다. 주민들이 몇날며칠 날밤을 새며 반대하자 공사는 중단됐다. 주민 반대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실상은 구제금융기 자금압박이라는 내부 사정 때문이었다. 그러던 차에 지난해 6월 주민들 몰래 공사재개 신청을 하고 9월부터 산을 파헤치기 시작한 것이다. 조씨는 “보성레저산업은 계속 거짓말을 하며 주민들을 우롱했다”고 주장한다. 13년째 싸워오는 동안 청년은 장년이 됐고 장년은 노년이 됐다. 도로에 드러눕고 시청을 점거하고 나무에 몸을 묶던 사람들이 하나둘 기력을 잃어가자 행정기관에서도 더 이상 주민 눈치를 보지 않았다. 민선 1기에 이어 2기 시장이 수뢰혐의로 잡혀간 사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각종 인·허가 문제도 풀렸다. 허위계약서를 첨부해 벌목허가를 받아도, 국토이용계획변경 승인이 나지 않은 상태에서 산을 깔아뭉개도 제대로 단속하지 않았다. 최종 결재권자가 공석이라는 이유로 누구 하나 책임을 지지 않은 것이다.
편법과 탈법이 판을 치는 사이 주민들은 무력했다. 환경영향평가가 강화되기 전인 92년에 사업승인을 받은 땅에는 구법을 적용했고, 새로 사들인 땅의 형질변경이나 임시사용 문제는 완화된 신법을 따랐다. 관리감독기관에서는 이에 대해 뾰족한 설명이 없었다. 뒤늦게 주민들은 골프장 사업부지에 속한 토성칠교와 백자도요지가 문화유적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지만 이것 역시 소용이 없었다(상자기사 참조).
조동영씨는 3개마을 반대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조성익(42·복다리)씨와 함께 각계에 민원을 냈다. 대통령, 국회의장,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환경부 장관, 검찰청장, 문화재청장, 감사원장을 비롯해 조계종 총무원장과 주부클럽연합회장에게까지. 하지만 어디든 감감 무소식이었고 그나마 반응을 한 기관의 답변도 “시·도기관 해당부서에 이첩했다”는 내용이 전부였다고 한다. 순천시 관계자는 “공사는 36% 진행된 것으로 알고 있다. 업체가 폐기물 처리나 가건물 건축 등 소소한 개별법을 어긴 일은 있지만 처리 중이다”라고 말했다. 추가로 사업부지에 속하게 된 땅(5만m2)에서 국토이용계획변경 승인이 나기 전에 나무를 베고 흙을 파낸 문제에 대해서는 “추가 부지가 별일 없는 한 허가가 날 것이기 때문에 업체에서 서두른 것 같다”며 “시와 도의 일이 나뉘어 있어 일일이 찾아다니며 (관리감독) 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업체인 보성레저산업 쪽은 “일부 주민들이 보상비를 너무 많이 바라고 있어 어려움이 많다. 절차상 오해가 발생한 부분은 있지만 합법적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길마을 조씨와 주민들이 걱정하는 것은 골프장으로 인한 환경오염과 마을공동체의 파괴다. 그 조짐이 이미 드러나고 있다. 애초 반대위원회를 함께 꾸렸던 마을은 문길리·복다리·월평리·용천리 4곳이다. 그 가운데 용천리 이장과 마을 대표 몇명이 업체 쪽에 ‘골프장 건설 주민 합의서’를 써줬다. 대신 집집마다 100만원이 든 봉투가 돌아갔다. “땅 도적질에 이름 얹기 싫다”고 돈을 안 받은 이들에게는 이미 돈을 받은 이들이 “우리만 나쁜놈 만들지 마소”라고 읍소하며 돈을 안겼다. “조상 대대로 이곳에 태를 묻었다”는 주민 조양훈(78)씨는 “봉투를 집어던지면 다음날 가져다놓고, 또 집어던지면 또 가져다놓고 그래서 그냥 받아두었다”며 “속상해 집 밖에 나가기도 싫다”고 손사래를 쳤다.
“돈 몇푼이 아니라 농민의 생존이다”
조동영씨는 “13년간 싸워오는 동안 최소한 ‘돈 몇푼 더 받으려고 그런다’는 말은 안 들어왔다”며 “우리의 중론은 ‘질 때 지더라도 돈은 한푼도 받지 말자’는 것이었는데 업체 쪽의 교묘한 흔들기로 이웃 사이에 척이 저버렸다”고 허망해했다. 조씨의 조상 묘가 들어선 곳은 골프장 들머리다. 조씨는 이장을 하지 않고 버텼다. 먼 발치에서 바라보니 보란 듯이 봉분 두개 자리만 남겨놓고 빙 돌아가며 땅을 파헤쳤다.
지난해 말 현재 문을 열고 있는 골프장은 전국 158개소. 공사가 진행 중인 곳은 60개소이고 허가만 받고 아직 착공에 들어가지 않은 곳은 23개소다. 골프장이 들어섰거나 들어서려고 하는 곳이면 어디든 민원시비가 끊이지 않는다. 보상액에 따른 논란으로 드러나지만, 이것 역시 투명하지 않은 행정절차와 법의 허점을 이용한 업체의 밀어붙이기식 관행의 결과다. 조씨는 “왜 골프장이 대세라는 말 한마디로 주민의 권리를 침해하느냐”며 “돈 몇푼으로 농심을 사려 하지 말라, 돈의 논리로 농심을 짓밟지 말아 달라”고 하소연한다.
순천=글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사진 이용호 기자 yhlee@hani.co.kr

사진/ 농촌 마을이 골프장 건설로 붕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산등성이를 파헤친 주암골프장 건설 현장.
이곳은 조씨와 한씨 등의 집성촌이다. 높지 않은 산자락이 굽이굽이 마을을 끌어안은 모양새가 용트림을 닮았다고 하여 끝마을 이름은 용천리다. 개발업체(현 보성레저산업)는 처음(90년)에는 사슴목장을 한다고 소문을 내며 대부분 문중 소유인 땅을 사들였다. 그러나 노태우 정권 말기 선심쓰듯 내준 골프장 사업허가권을 따놓은 상태였다. 골프장이 들어선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된 마을 사람들이 들고일어나자 94년께 업체는 관광타운을 짓는다며 일부 마을 대표들과 약정 합의서를 쓰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 역시 거짓말로 드러났다. 97년 가을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안 된다”고 나서는 마을 노인들을 어디선가 온 건장한 청년들이 밀어붙이며 골프장 착공에 들어갔다. 주민들이 몇날며칠 날밤을 새며 반대하자 공사는 중단됐다. 주민 반대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실상은 구제금융기 자금압박이라는 내부 사정 때문이었다. 그러던 차에 지난해 6월 주민들 몰래 공사재개 신청을 하고 9월부터 산을 파헤치기 시작한 것이다. 조씨는 “보성레저산업은 계속 거짓말을 하며 주민들을 우롱했다”고 주장한다. 13년째 싸워오는 동안 청년은 장년이 됐고 장년은 노년이 됐다. 도로에 드러눕고 시청을 점거하고 나무에 몸을 묶던 사람들이 하나둘 기력을 잃어가자 행정기관에서도 더 이상 주민 눈치를 보지 않았다. 민선 1기에 이어 2기 시장이 수뢰혐의로 잡혀간 사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각종 인·허가 문제도 풀렸다. 허위계약서를 첨부해 벌목허가를 받아도, 국토이용계획변경 승인이 나지 않은 상태에서 산을 깔아뭉개도 제대로 단속하지 않았다. 최종 결재권자가 공석이라는 이유로 누구 하나 책임을 지지 않은 것이다.

사진/ 골프장이 문화유적을 갉아먹고 있다. 주암골프장 건설반대대책위에서 활동하는 조성익(오른쪽)씨와 조동영씨.
사진 이용호 기자 yhlee@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