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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불심으로 막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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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6-2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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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주암골프장 사업부지 들머리의 토성칠교 자리(왼쪽)와 파혜쳐지기 전 이곳에서 벌인 송광사 신도들의 반대 행진(오른쪽)
전남 순천시 주암면 등학산 줄기 가재골은 송광사로 가는 길이다. 옛 사람들은 주암면 복다마을의 일곱 산봉우리 사이를 흙으로 메워 다리 모양의 토성을 지었다. 이 흙다리를 토성칠교라고 부른다. 이 고장 할머니들이 젖먹이를 어를 때 부르는 노랫말에도 “송광사 구갱가고 토성칠교 구갱가고 명갱다리 건너 애미산 절 구갱가세”라는 대목이 나온다.

토성칠교는 조계종의 개조인 고려의 명승 보조국사 지눌(1158∼1210)의 전설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 보조국사가 송광사를 중창하려 와보니 도적떼가 들어차 있었다. 도력으로 도적떼를 굴복시킨 보조국사가 이들을 다른 곳으로 끌고 가는 도중 칡넝쿨이 우거진 험한 길을 만났다. 보조국사는 도술로 칡넝쿨을 걷어내고 도포자락에 흙을 담아 앞장서서 흩뿌리고 갔다. 그 자리가 지금의 토성칠교다. 일대는 풍암지역이지만 토성칠교만큼은 차진 진흙으로 되어 있다. 전설대로 이곳에서는 양쪽 골짜기에 가득 찬 칡넝쿨의 자취를 찾을 수 없었다. 보조국사 전설과 함께 일곱개 다리 길이만큼 실을 뽑아 수의를 지어 입으면 극락왕생한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마을 사람들이 나무하러 가거나 나물 캐러 갈 때마다 고마운 마음으로 건넌 이 다리는 골프장 착공과 함께 흔적을 감췄다.

지난해 마을 사람들은 송광사 주지스님을 찾아가 골프장 건설을 막아 달라고 요청했다. 송광사 스님들은 신도들과 함께 무명실을 목에 감고 토성칠교를 지나며 이 다리의 의미를 되새기기도 했지만(사진) 개발 광풍 앞에서는 무력했다. 주민들은 문화재청의 문도 여러 번 두드렸다. 문화재청에서는 공사가 시작된 지 한참 뒤에야 몸을 움직였다. 지표조사 결과 문화유적 보존가능 지역이라고 판명되자, 그때서야 업체한테 토성칠교와 도요지터에 대한 시굴·발굴 조사결과가 나온 다음 사업을 진행하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이미 백자 도요지터에는 가건물이 들어섰고 토성칠교 자리도 작업로 개설을 이유로 벌목된 상태였다. 설상가상으로 지난 3월 업체가 수주한 민간연구원에서는 유적보존 가치가 없는 곳으로 판명을 내렸다. 주민들이 이의를 제기하고 <순천 시민의 신문> 등이 유적 가치를 주장했으나, 문화재청은 민간연구원의 조사결과만 앵무새처럼 반복할 뿐이다.

현재 골프장 부지에 속하지 않은 한 토성 들머리에는 생뚱맞은 돌비석이 하나 서 있다. 업체가 세운 이 돌비석에는 ‘옛길’이라는 제목 아래 제대로 고증되지 않은 안내문이 적혀 있다. 이 길은 흙으로 쌓은 성이 아니라 단순한 통행로라는 것이다. 진실을 가릴 수 있는 현장이 없어졌으니 후세는 이곳을 토성칠교가 아닌 옛길로 여길 것이다.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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