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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낮은 곳에서 빛나는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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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6-2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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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피복노조투쟁 산 증인 신순애씨, 모든 어려움 이기고 성교육 강사로 당당한 행진

사진/ 갑자기 몸을 다친 남편 병구완을 하느라 최근에는 활동을 잠시 쉬고 있는 신순애씨. 그는 자신보다 부족한 사람들에겐 뭔가 베풀려고 노력하며 살아왔다. (이용호 기자)
소년원을 나온 뒤 마땅히 갈 곳이 없는 청소년들이 6개월 동안 머물면서 공부도 하고 기술도 배우는, 종교단체의 교육시설에서 주관한 교육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었다. 선생님들이 나름대로 고심해서 프로그램을 열심히 준비했지만 혈기왕성한 아이들을 몇 시간이나 마룻바닥에 앉혀놓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였다.

덩치가 남산만한 아이들이 눈을 반짝거린 이유

첫쨋날은 아이들이 “씨발씨발” 욕을 해대면서도 잘 참았다. 그러나 둘쨋날부터는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뒤에 모여 앉은 덩치가 남산만한 아이들로부터 “야, 깨버리자”는 말이 나오기 시작하더니 도저히 교육을 더 이상 진행할 수 없는 분위기가 되고 말았다. 선생님들이 아무리 좋은 얘기를 해도 아이들의 얼굴에는 “그래. 당신은 부모 잘 만나 공부 많이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고, 나는 재수 없어서 이런 곳에 와 있는데, 어디 한번 실컷 떠들어보슈” 그런 표정들이 역력했다.


결국 30분 휴식 뒤 다시 모여서 해결방안을 찾아보기로 했는데, 선생님들 중의 한분이 “내일 하기로 돼 있는 신순애 선생님의 강의를 오늘 먼저 앞당겨서 해보자. 신순애 선생님이 살아온 얘기를 주로 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했다. 신순애씨는 강의 준비도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 갑자기 아이들 앞에 섰다.

“대단히 미안하지만 여러분들 중에 혹시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사람 있으면 손들어보세요.” 48명의 청소년들 중에서 3명이 손을 들었고, 신순애씨도 손을 들었다.

“그럼 나까지 모두 4명이군요. 나는 졸업장이란 걸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문교부 혜택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23살 되기 전까지 동화책 한권을 제대로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덩치가 남산만한 아이들의 눈이 동그래지면서 반짝거리기 시작했고 신순애씨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나는 여러분들보다 잘나지 않아서 여러분들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압니다. 나는 여러분들보다 영어를 못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헤아릴 수는 있습니다. 홧김에 사람을 한대 쳐서 이곳에 온 사람들도 있을 텐데, 나는 그 사람을 오히려 존경합니다. 나는 용기가 없어서… 죽이고 싶었지만 내 형부를 차마 죽이지 못했고, 오빠를 때리고 싶었지만… 윗사람이라 차마 때리지 못했습니다. 내 얼굴빛이 노랗게 죽은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에요. 그걸 다 참고 지금까지 살아야 했으니까…. 배가 고파서 배를 움켜쥔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두 시간 동안 이어진 신순애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이들도 울고 선생님도 울었다. 그렇게 울음바다가 된 뒤부터 분위기가 잡혀서 일주일 동안의 프로그램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그날부터 청소년들은 신순애씨를 ‘떴다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청계피복노동조합의 역사에 관한 자료들을 뒤지다 보면 유난히 자주 보이는 이름들이 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신순애(49)씨다. 청계피복노조의 ‘노동교실 사수투쟁’과 ‘시간단축투쟁’의 산 증인이다. 그러나 내가 그이를 만나기로 한 것은 과거의 투쟁 때문만은 아니었다. 신순애씨의 ‘현재의 삶’이 ‘과거의 삶’ 못지않게 남달랐기 때문이다. 몸이 불편한 남편이 입원해 있는 고려대학교 부속병원의 등나무 벤치에서 정신없이 바쁜 신순애씨의 시간을 잠시 뺏었다.

청계피복노조와의 긴 인연

“12살인가, 13살인가 되었을 때 처음에 찾아간 회사에서는 ‘너무 어리다. 젖 더 먹고 오라’면서 받아주지 않았어. 아는 사람이 평화시장에 일자리가 있다고 데리고 갔지. ‘시다’를 한 사람 쓰겠다는데 두명이 온 거야. 나말고 다른 여자애는 체격이 꽤 컸어. 지금 생각해도 어린 것이 어떻게 그런 머리를 썼는지… 미싱사가 ‘미싱해봤냐?’ 물어보니까 큰 아이는 안 해봤다고 했는데 나는 ‘해봤어요’ 그렇게 답했어. 3일쯤 지나니까 미싱사가 ‘너 왜 거짓말했니?’ 그러더라고. ‘나는 돈 벌어야 돼요’ 그렇게 답했지.”

전태일 열사를 생전에 뵌 적은 없었다. “전태일 열사 사건 났을 때 사람들이 구름다리 있는 곳에 가지 말라고 하더라고. 깡패가 하나 죽어서 사람들이 가마때기로 덮어놨다고…. 무서워서 갈 생각도 못했어. 사실은 사건 나자마자 전태일 열사가 병원으로 실려가서 시신이 거기 있을 턱이 없었지만 그때 소문은 그랬어.”

“돈 안 받고 공부시켜주겠다”는 말을 듣고 신순애씨가 ‘노동교실’로 찾아간 것으로부터 청계피복노조와의 긴 인연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교실에 사람들이 꽉 들어찼어. 200명 정도 되었을 거야. 함석헌 할아버지를 초청한 것이 문제가 되어 시작도 하지 못한 채 농성이 시작됐는데, 사람들이 하나둘씩 빠져나가더니 나중에는 50명 정도만 남았어. 어머니(전태일씨 어머니 이소선 여사)가 ‘가지 말라’고 붙잡아도 ‘다른 사람 더 데리고 올게요’ 그러면서 사람들이 가는 거야. 나는 그때까지 한번도 외박을 해본 적이 없어서 ‘집에 가서 말하고 와야 한다’고 새벽 4시에 그곳을 나왔어. 집에 가서 말하고 나서는 ‘공장에 갈 것이냐, 농성장으로 갈 것이냐’ 갈등이 생겼지. 그래도 ‘어머니와 꼭 다시 오겠다고 약속했는데’ 하는 생각도 들고 ‘우리는 사람만 있으면 다 해결되는데 왜들 가는지 모르겠다. 돈만 있다면 돈을 주고서라도 사람들을 사오고 싶다’고 하시던 어머니 얼굴이 생각나 다시 노동교실로 돌아왔어. 골목을 걸어오던 작은 키의 나를 어머니가 물끄러미 보고 계셨는데, 그때 내 모습이 그렇게 이뻐 보이더래.”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며 살던 어느 날, 딸아이로부터 ‘성’에 관해 난데없는 질문을 하나 받았는데 정말로 등줄기에 식은땀이 쭉 흐르더란다. <내일신문>에서 구성애씨의 성교육 강사 훈련 안내를 보고 전화를 했다.

구성애씨와의 만남

“직업이 뭐냐고 물어서 ‘주부’라고 했더니 안 된다는 거야.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느냐고 물어보니까 무조건 ‘주부는 안 된다’는 거야. 일단 그 말에 나는 약이 올랐지. ‘말이 안 되지 않느냐?’ 그러면서 30분 동안 붙들고 늘어졌더니 결국 ‘입금하라’고 했어. 입금하고도 불안해서 전화했더니 ‘그러면 오십시오’ 그러더라고.”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일주일 동안 진행되는 강행군이었는데, 다른 수강생들은 명찰부터 화려했다. “교육청의 뭔 부장, 서울법대 졸업하고 대학원에 재학 중인 사람도 있었고, 모두들 대학 졸업은 기본인데, 내 명찰에는 ‘주부’ 그렇게 써 있었지. 자기 소개를 할 때 ‘거짓말을 할까’ 사실 고민했어. 창피했으니까…. 청계피복 노동교실이 고등학교 졸업 수준은 충분히 된다고 어머니(이소선 여사)도 그러셨으니까 고등학교는 졸업했다고 할까… 그러다가 에라 인정하려면 하고, 말려면 말아라 하는 생각으로 ‘나는 평화시장에서 일했던 미싱사다. 이 교육과정에도 처음에는 안 받아준다고 해서 화가 났었다. 그런데 이 자리에 와서 보니까, 내가 설 자리가 아닌 것 같아서 여러분들에게 미안하다’ 말해버렸지. 내 말 들으면서 사람들이 한바탕 웃다가 울다가 그랬어.”

이 과정이 끝나고 ‘아우성’ 쪽으로부터 함께 일을 해보자는 제의를 받았다. 구성애씨도 구로공단에서 노동운동을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니 신순애씨의 능력을 아마 짐작하고 있었을 것이다. 어려운 형편의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신순애씨의 능력은 빛난다.

“소년원에 있는 아이들을 만나면 가슴이 미어져. 내 아픔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 나보다 더 있는 사람에겐 고개 빳빳이 들고 따져도 나보다 부족한 사람들에겐 뭔가 베풀려고 노력하며 산다고 생각해왔는데, 과연 그랬는지… 반성이 되는 거야.”

두 시간쯤 지났을 때 병실에 누워 있는 남편으로부터 호출이 왔다. “이이가 오줌이 마려운가 봐요”라고 말하면서 급히 걸어가는 신순애씨의 뒷모습에서 느껴지는 인상은 한마디로 ‘당당함’이었다. 오척단구의 몸에서 어떻게 그런 당당함이 나올 수 있을까…. 세상의 어려움들을 직접 겪고 이겨본 사람만이 그 당당함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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