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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월드컵 과잉친절, 이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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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6-2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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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디제이에서 월드컵 자원봉사자로 탈바꿈한 이선영(27)씨의 요즘 심기가 편치만은 않다. 한국축구가 기적 같은 신화를 이뤄가는 게 너무나 기쁘지만 그에 걸맞은 관광사업의 알찬 성과를 올리기엔 어딘가 부족한 현실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1년 동안 대구문화방송 FM의 <정오의 희망가요>를 진행하던 이씨는 유학를 준비하면서 방송일을 그만뒀고, 중간의 빈틈을 허송세월하기가 아까워 대구시청에서 모집한 월드컵 임시 관광안내통역원에 자원했다. 2년 전 부산국제영화제의 부산프로모션플랜(PPP·기획 중인 아시아 각국의 영화를 세계 각국의 제작자·투자자와 연결해주는 행사)에서 일한 경험도 주요한 동기였다.

“드디어 대구도 국제대회를 치르면서 부산처럼 꿈 많은 학생들과 시민들의 경험이 쌓여서 국제도시로 커나갈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겠구나 생각하니 흐뭇했어요. 부산국제영화제를 하면서 그곳의 젊은 인력들이 전 세계를 상대로 보고 듣고 배우는 게 부러웠거든요.”

6월20일 8개국 언어를 소화하는 30여명의 자원 통역원들과 함께 가슴벅찬 ‘첫 출근’을 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한가함만 더해갔다. “정말 다양한 인력이 모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다들 지치고 심적으로 포기하는 상태까지 가더라고요. 눈에 띄면 반가울 정도로 찾아오는 외국인들이 없는 거예요. 24시간 교대근무를 하고 있지만 밤에는 그냥 야간경비 선다는 기분으로 버티게 될 정도로….”

그나마 외국인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서는 씁쓸함을 느꼈다. “시티투어버스에 동승해 통역을 하기도 하는데 막상 돈쓰러 온 외국인은 공짜고, 세금 꼬박꼬박 내는 시민은 요금을 내야 하더군요. 거꾸로 된 거 아닌가요? 한·미전 때 만난 미국인들이 한결같이 친절을 이야기하던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하루 30달러 정도를 받고 홈스테이(가정집에 머물며 숙식을 제공받는 방식)를 하는데 자가용으로 경주 불국사는 물론이고 근교 여행을 다 시켜주고 아예 30달러를 받지 않는 경우도 많았으니….”

친절도 좋지만 좀 과잉이 아니냐는 말이다. “하나에게 열까지 다 챙겨주느라 관광객들에게 돈쓸 틈을 주지 않는다”는 ‘애국심’의 발로다.

이성욱 기자 lewoo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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