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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개혁 총장의 ‘서울대 구출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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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6-2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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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임총장 선거에 정운찬 교수 최다 득표…개혁성·도덕성 겸비하고 민주적 리더십 내세워

사진/ 개혁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정운찬 교수. 그는 집권 후반기 정부의 재벌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한겨레 서경신 기자)
서울대를 보면 마치 중세시대의 한 나라를 보는 듯하다. 거대한 성문처럼 보이는 정문을 들어서면 관악산에 둘러싸인, 서울 여의도의 1.4배(118만평)나 되는 터에 100여동이 넘는 건물들이 여기저기 들어서 있는 외양도 그렇지만, 그 안의 구조를 들여다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단과대학 등 20개에 이르는 교육기구는 각기 학장이라는 영주가 지키는 성과 같고, 총장으로 대표되는 대학본부는 각 영주를 조정하며 다스리는 왕을 연상시킨다.

점점 확산되는 위기의식

물론 왕이 영주를 다스리듯 내부 지배구조가 그렇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총장이나 학장이 중세시대의 왕이나 영주처럼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지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다만 각 단과대학의 이해와 견해가 각기 다르고 이들을 대학본부가 적절히 조정해나가면서 학교 전체를 운영해야 하는 점이 흡사하다는 뜻이다.


또한 서울대는 저 광활한 우주의 온갖 물체들을 빨아들이는 거대한 ‘블랙홀’이기도 하다. 매년 대학입시 때마다 수능성적 1등부터 5천등까지의 학생들을 거의 싹쓸이하다시피 한꺼번에 빨아들인다. 학생들은 마치 불나방처럼 서울대라는 ‘블랙홀’로 다가가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한다.

그러나 이처럼 거대한 외형적 위용과 우수학생의 독점적 유치라는 화려한 겉모습의 이면에는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현실이 숨어 있다. 교수들의 안일한 학문풍토, 열악한 연구환경, 부실한 교육 등 ‘서울대 위기론’이라는 말로 대표되는 ‘외화내빈의 서울대’가 바로 그것이다.

이런 현실은 누구보다 교수들이 더 잘 알고 있다. 지난해 3월 서울대 교수협의회의 설문조사 결과 서울대 교수의 84.1%가 ‘서울대가 심각한 위기상황에 처해 있다’고 대답했으며, 이 중 37.1%는 ‘위기의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고 진단했다. 이런 위기의식 때문에 서울대 교수사회 내부에서 서울대 위기 극복을 위한 다양한 대안이 나왔다. 장회익 물리학부 교수는 “서울대 학부를 한시적으로 폐지하고 연구와 대학원 중심으로 탈바꿈해야 한다”는 충격적 제안까지 내놓았다.

이처럼 위기의식이 팽배한 가운데 서울대에서 지난 6월20일 총장 최종후보 선거가 벌어졌다. 사외이사 겸직과 판공비 과다사용 등으로 물의를 빚은 이기준 전 총장이 지난 5월2일, 오는 11월까지인 임기를 채우기 전에 스스로 물러나면서 공석이 된 총장자리의 후임자를 선택하는 자리였다. 이날 선거에 후보로 나온 김유성(62·법학과), 송상현(61·법학과), 이장무(57·기계항공공학부), 장호완(59·지구환경과학부), 정운찬(56·경제학과) 교수 등 5명은 하나같이 ‘서울대 위기론’을 극복하겠다는 약속을 내걸었다.

전임강사급 이상 교수 1210명이 참여(투표율 87%)해 지지하는 2명의 후보에게 표를 던지는 연기명식 투표방식으로 치러진 이날 선거 개표결과, 정운찬 교수가 667표(55%), 송상현 교수가 574표(47%)를 얻어 각각 1위와 2위를 차지했다. 서울대는 이들 2명을 교육인적자원부에 총장 최종후보로 추천했고, 대통령은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이 가운데 1명을 서울대 총장에 임명하게 된다. 지난 1991년 서울대가 총장직선제를 도입한 이후 실시된 네번의 선거에서 모두 최다득표자가 총장에 임명된 것으로 미뤄 특별한 결격사유가 없는 한 정 교수가 총장에 임명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정부에 쓴소리 하는 개혁적 경제학자

애초 지난 1998년 총장 선거에 나온 경험이 있는 송상현 교수의 우세를 점치는 가운데 혼전이 예상됐으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5명 중 최연소이자 개혁적 성향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 정운찬 교수가 100표 가까운 격차를 벌리며 낙승한 것이다.

현재 사회대 학장을 맡고 있는 정 교수는 김대중 정권 후반기 들어 정부의 재벌 및 경제정책에 끊임없이 비판의 날을 세워온 개혁적인 경제학자로 알려져 있다.

올해 3월 경제연구소 연구원, 국회의원, 언론인 등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한국은행 총재감 1위로 뽑힌 바 있는 정 교수는 ‘화폐금융’과 ‘거시경제’에 정통하다. 이 같은 강점을 이유로 현 정권 출범 직후인 98년 김대중 대통령은 한국은행 총재직을 맡아달라고 요청했지만 정 교수는 “학자의 길을 가겠다”며 고사했다. 또 개각 때마다 금융감독위원장, 대통령 경제수석으로 이름이 오르내리는 등 현 정권으로부터 끊임없는 ‘러브콜’을 받았지만 “정년을 학교에서 맞겠다”며 한사코 거절했다. 특히 정 교수는 현 정권 출범 직후 재벌 및 구조조정 정책을 일정부분 지지했으나 집권 후반기 들어서 정부가 재벌규제정책을 완화하자 “이는 정부가 재벌에 굴복한 것”이라며 “현 관료집단으로서는 재벌개혁이 힘들다”고 쓴소리를 하기도 했다.

이처럼 고위공직자 자리를 한사코 거절하는 도덕성과 정부의 재벌과의 타협에 대해 끊임없이 비판을 가하는 개혁성을 높이 평가한 서울대 교수들은 위기를 타파할 인물로 정 교수를 선택한 것이다.

사실 이번 총장 선거가 치러진 시점에서 ‘서울대 위기론’은 그 어느때보다도 한층 더 심각했다. 지난 98년 8월 자녀 고액과외 문제로 학내외의 사퇴 압박을 받던 선우중호 전 총장이 물러난 이후 이기준 전 총장마저 사외이사 겸직 등 도덕성 시비로 서울대 민주화교수협의회(회장 이애주)와 교수협의회(회장 신용하)로 대변되는 교수들의 사퇴 압박을 받고 물러난 터다. 특히 이 전 총장의 취임 이후 추진된 각종 개혁정책에 대해 교수들은 불만과 불신을 크게 나타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이 전 총장은 지난 98년 11월 총장에 선출된 뒤 ‘지성’을 상징하던 기존의 서울대 총장 이미지를 벗고 최고경영자(CEO)적 총장의 이미지를 강조하며 대학원 지원 강화, 교수평가 엄격화, 연구업적 강화 등 각종 개혁정책을 주도적으로 이끌어왔으나 추진과정에서 충분한 의견수렴 절차 부족, CEO적 사고로 인한 학교의 기업화 등으로 학내 구성원들의 반발에 부딪혔다.

앞서 2000년 11월 서울대 개교 이래 처음으로 교수협의회 주관으로 총장 중간평가가 이뤄진 데 이어 교수들의 모집단위 광역화 반대, 인문·사회·자연대 등 기초학문 단과대의 성명발표, 사범대의 신임교수 임용절차에 대한 집단반발이 잇따르는 등 이 전 총장의 ‘독단적’ 학사운영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또 기초학문 분야의 위기에 이어 서울대생의 대학원 기피현상, 이공계 위기까지 잇단 악재로 작용하면서 ‘서울대 위기론’과 함께 이 전 총장의 지도력에 대한 불신이 교수들 사이에서 극에 달했다.

전 총장들의 개운치 못한 사퇴

사진/ 사외이사 겸직 등의 문제로 물러난 이기준 전 총장. 최고경영자적 총장의 이미지를 강조한 그는 독단적 학사운영으로 반발을 샀다.
이 같은 상황에서 참신성과 도덕성, 개혁성을 겸비하고 “학교 발전을 위해 총장의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역할을 유지하면서도 주어진 권한을 독선적으로 행사하지 않고 학내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는 민주적 리더십을 구축하겠다”는 정 교수가 지지를 받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또 1인2표제인 연기명식 투표방식이 정 교수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다. 단과대학별로 이해에 따라 지지하는 후보가 뚜렷이 구별되는 상황에서 한표는 자신이 속한 단과대학이 지지하는 후보에게, 나머지 한표는 진정 서울대 발전을 위해 일할 후보에게 던질 수 있는 이 제도로 인해 상대적으로 세가 없는 정 교수가 많은 표를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정 교수에게 요구되는 것은 자신만의 장점을 십분 활용해 때로는 강력하게, 때로는 유연하게 중세시대 성으로 상징되는 각 단과대학의 이해를 적절히 조정하며 서울대의 위기 극복과 학교 전체의 발전을 꾀하는 능력이다.

서정민 기자/한겨레 사회2부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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