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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나는 H공장 기술직 위한 ‘20만원짜리’ 자기소개서입니다

‘자소서 창작 공장’에서 보낸 한철…이렇게 창작하면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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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23-09-08 13:35 수정 : 2023-09-12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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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전부 아르바이트 경력뿐입니다. …대략적으로 설명은 하겠지만 제가 써놓은 건 그냥 보기만 하시고 필요한 부분은 최대한 지어내주시면 좋겠네요. 채울 만한 내용이 많이 부족해서… 좋은 창작 부탁드립니다.”

탄생하기도 전에 ‘부족할’ 예정이었다. 그렇지만, 아니, 그래서 나는 더 비싼 몸이다. 2천 자를 기준으로 5만원을 치는 다른 자기소개서(자소서)들과는 다르다. 오직 ‘킹산직’으로도 불리는 ‘H사 기술직 신입 공개채용 지원자’만을 위해 특별히 준비됐다. 나는 웃돈을 얹은 네 배 비싼 자소서다.

의뢰인은 “최대한 지어내달라”고 했다

나를 생산하는 공장의 이력은 아주 화려하다. 공장장은 ‘ㄱ은행·ㄴ공기업·ㄷ재단 평가위원’ 출신으로 ‘ㄹ대학교’에서 자소서 컨설팅 강사를 하는 ‘ㅁ대기업’ 인사팀 출신으로 소개된다. 자랑스럽게 전시된 ‘합격자 후기’와 5점짜리 별점은 상점을 꾸미는 장식으로 더할 나위 없다. 의뢰자는 그 이름들을 굳게 믿는다. 채팅창 너머의 누군가가 그 사람이라 믿고 ‘전문가님’ ‘선생님’이라고 깍듯하게 부른다. 다른 선택지 같은 건 없는 초읽기의 상황, 그 이름은 마지막 동아줄이다.

그러나 사실 채팅창 너머에 앉은 사람은 공장장이 아니다. 그냥 무작위로 배정된 다섯 명의 직공 중 하나다. 공장장은 그의 이름으로 만들어 파는 ‘자소서’에 단 한 글자도 보태지 않는다. 고객에게 견적을 내주고, 대금을 결제받고, 작업이 완료된 뒤에는 중개 플랫폼의 ‘별점 다섯 개’와 ‘후기’를 요청하는 게 전부다.

그를 대신해 벌써 여드레째 H사 기술직 자소서만을 뽑아내는 직공이 채팅창에 입력한다. 대기업 ‘전문 컨설턴트’ 출신인 그의 고용주가 직접 작업하는 것처럼 말투를 흉내 낸다. “최대한 창작해보겠습니다만 자료가 많을수록 더 좋은 글이 나오니 가능한 한 세세하게 작성 부탁드리겠습니다^^”

의뢰자가 전송하는 자료는 정해진 양식대로 자기 인생을 분해하고 파헤친 결과물이다. 그는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전문대학에서 웹디자인을 전공했고, 전공과 상관없는 무수한 아르바이트를 경험했다. 사무직, 콜센터, 커피숍, 식당, 피시(PC)방, 장례식장, 호텔, 방문판매로 모은 돈으로 식당을 창업했다. 2년째 식당을 운영하는 ‘사장님’이다. 그의 빼곡한 인생사는, 그러나 자소서 앞에서 허무한 한마디로 요약된다. ‘경력과 경험 전혀 없음.’

그 흔한 공모전도, 학생회도, 동아리 경험도 없다. 자랑할 만한 것은 오직 고등학교 때 받았다는 개근상 하나란다. 그의 인생에 창작과 가공을 더해 나를 만들기에 앞서, 직공은 산산이 분해된 의뢰자의 인생에 대해 정직해서 잔인한 질문을 던진다. ‘자신이 모빌리티 인재로서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없다. 싸늘할 정도로 비어 있다.

절박한 자소서 의뢰인과 자소서 공장 직공의 온라인 대화 일부. 김온새봄 제공

빼곡한 인생사가 ‘경력 없음’으로 요약돼

이럴 때 필요한 건 ‘착즙’이다. 쥐어짜고 양념을 친다. 의뢰자는 대학을 졸업한 뒤 5년 이상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바로 ‘다양한 경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항상 새로움을 추구하는 도전 정신’이다. 덧붙여 ‘다년간의 조직생활 경험’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게 H사 기술직 업무 수행에 필요한 금형, 조립, 도장, 용접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괜찮다. 그건 자소서에 쓸 필요가 없는 말이니까. 유일한 자랑인 개근상은 살려둬야 한다. 성실함은 어디에 어떻게 적든 ‘중박’은 되는 소재니까. 물론 평범한 재능이니만큼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기술 혁신, 산업 트렌드 변화, 차량 전동화, 이동 경험, 자율주행, 친환경, 전기차’와 같은 거창한 말을 적재적소에 섞어 평범한 재능을 그럴듯하게 빛나는 문장으로 포장해낸다.

“귀사의 모빌리티 인재로서 가장 필요한 자질은 다름 아닌 성실함과 도전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성실함과 꼼꼼함, 도전 정신을 두루 갖추고 있어 이러한 점에서 귀사에 꼭 필요한 인재라 자부할 수 있습니다. 저는 새롭거나 생소한 일을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해 다양한 경험을 쌓았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저는 매사에 성실하게 임하는 사람입니다. 고등학생 시절 개근상을 한 번도 놓치지 않을 정도로 최선을 다했으며, 이런 성실함을 발휘해 다년간의 조직생활에서도 원활하게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귀사에 입사하게 된다면 이와 같은 경험을 살려, 조직이 기술 혁신에 적응하고 변화를 주도할 수 있도록 활력을 불어넣겠습니다. 산업 트렌드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고, 친환경 전기차 기술 혁신을 주도하는 성실한 인재가 되기 위해 겸허한 태도로 배우겠습니다.”

절박한 자소서 의뢰인과 자소서 공장 직공의 온라인 대화 일부. 김온새봄 제공

나는 자소서다. 무슨 기사니 기능사니 하는 자격증, 자동차와 관련된 경력, 기능대회에서 상을 탄 경험이 ‘있는’ 자소서와는 다르다. 20만원짜리 ‘있어 보이는’ 자소서다.

의뢰자는 시시때때로 채팅창에 묻는다. “식당을 창업했다는 내용을 협업과 관련된 문항에 넣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내용이 너무 없는 것 같은데 혹시 ‘창작’을 더 해주실 수는 없나요?” 질문의 말미에는 꼭 ‘ㅠㅠ’ 이모티콘이 붙는다. 울고 싶은 다급함과 초조함, 절박함을 화면 너머로 전하기 위해서다.

직공은 전혀 당황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회다. ‘스펙’이 없어 절박할수록 충성스럽게 나를 원한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킹산직’ 자소서이니 더 그렇다. 수많은 사람이 나를 샀다. 서비스직 아르바이트만 수십 차례 전전한 사람, 학창 시절 내내 야구를 하다 그만둔 사람, 현직 마케터, 쇼핑몰을 창업했다가 망한 사람까지. 블라인드 채용이라 성별을 적을 수 없다는데도, 군대에서 운전병 보직을 맡았다는 사실을 강조해달라고 부득불 우기던 사람도 있었다. 기꺼이 설득해냈다. 중요한 건 합격의 가능성도 내용의 적합성도 아니다. 나는 다만 시간 내에 ‘있어 보이게’ 조립되는 2천 자짜리 자소서일 뿐이다.

스펙 없고 절박할수록 나를 원한다

의뢰자는 식당을 운영하면서 느낀 고충과 애환을 한 페이지 가득 채워넣었다. 인건비가 부족해 혼자서 하루에 열두 시간씩 일했다는 사연은 애틋하고 눈물겹다. 하지만 전부 건너뛴다. 직공은 누군가의 인생을 읽는 독자가 아니다. 시간당 기본급 1만2천원, ‘H사 기술직 대목’에만 성과급 3천원을 받는 프로 정신을 갖춘 ‘알바생’이다. 고객의 요청 사항을 충실하게 반영하고 최대한 기술적으로 ‘창작’한다. 이 업의 ‘워크에식’(직업윤리)은 글을 한 줄도 쓰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있어 보이는’ 자소서를 가질 수 있다는 믿음이다. 이 믿음 속에 주인공의 업적을 강조하기 위해 있지도 않았던 ‘식당 직원’이 창조되고, ‘소심하다’는 성격적 특질은 ‘자잘한 일에 신경을 많이 쓰는 완벽주의 성향’으로 재탄생한다.

“저는 식당을 인수해 운영하며 경영자적 마인드를 갖추고 업무 전체를 개괄하는 안목을 길렀습니다. 이 과정에서 함께 일하는 직원들과 힘을 합쳐 완벽주의가 과하다는 단점을 극복하고 업장의 매출을 크게 올렸습니다. 먼저, 직원들에게 솔직하게 어려운 상황을 공유하고 힘을 합쳐주기를 부탁했습니다. 제가 먼저 솔선수범해 새벽부터 저녁까지 열두 시간을 근무했고, 직원들에게 경영난의 영향이 미치지 않도록 배려하며 업장을 성장시키기 위한 전략을 수립했습니다. 이를 통해 관리자로서의 역량을 기르며 시야를 크게 넓힐 수 있었습니다.”

‘H사 기술직’ 광풍이 부는 동안, 이 공장에서는 나처럼 네 배 비싼 자소서가 150편 이상 생산됐다. 가장 급박했던 건 마감이 24시간도 채 남지 않았을 때 의뢰돼 만들어진 ‘최우선 마감’ 3편이다. 의뢰자는 어김없이 불안을 담아 물었다. “혹시라도 서류 전형에 합격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요?” 회피하고 싶어도 언젠가 마주하는 질문. 그러나 걱정할 건 없다. 매뉴얼이 있다. ‘전문 컨설턴트’인 공장장의 말투로, 되도록 두루뭉술하게, 결과를 장담해 시비가 걸리지 않도록 하면서도 고객의 기분은 상하지 않게. “총 지원자 수에 따라 다르기도 하고, 다른 경력이나 이력 등이 변수가 되기도 해서 섣불리 답변드리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마지막에는 웃는 이모티콘을 꼭 붙여야 한다.

의뢰자는 ㅠㅠ 직공은 ^^

나를 사는 의뢰자들은 긴 글을 한 번도 써본 적이 없다. 자소서라는 걸 당최 어떻게 써야 할지 전혀 몰라서 자소서를 사러 온 사람들이다. 그들이 웹디자이너, 야구선수, 식당 자영업자였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자소서를 중개하는 플랫폼에서는 작업자 2만1604명이 생계를 유지하고, 132개 업체가 다닥다닥 경쟁한다. 그러므로 하한선은 점점 더 초라해진다. ‘자소서가 처음이어도’ 상관없고, ‘글쓰기 없이 합격’할 수 있다고 큰소리를 치며, ‘제로(0)부터 완성까지 24시간’이면 충분하다고 광고한다. 단 400명을 뽑는 시험에 무려 18만 명(온라인 커뮤니티 집계)이 몰렸던 일대 사건은, 그래서 이 시장의 단기 호황을 불러왔다. 자, 자소서를 아십니까? 간절한 수요와 과포화된 공급이 ‘H사 기술직’을 마주했을 때, 어느 자소서 ‘첨삭’ 공장은 대목을 맞아 하루에 수백만원씩을 쉼 없이 벌어들였다.

김온새봄 한겨레교육 기획기사 워크숍 수강생

한겨레교육에서 진행된 ‘김완 기자의 실전 100% 기획기사 워크숍’ 수강생들이 8주에 걸쳐 직접 취재·작성한 기사 가운데 몇 편을 <한겨레21> 독자들에게 선보입니다.―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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