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기간 중에 범죄가 많이 줄었다고 합니다. 축제가 가져다준 또 하나의 선물입니다. 신문 사회면도 사건·사고 기사가 자취를 감추고 온통 붉은악마 얘기입니다.
그러나 지난 6월13일, 경기도 양주에서 여중생 두명이 미군 차량에 치어 숨진 일은 그냥 묻힐 수 없는 비극입니다. 그날이 마침 지방선거일이라 사건은 너무도 간략히 보도됐습니다.
조양중학교 2학년 신효순, 심미선 두 학생은 오전 10시45분께 길을 가다가 미군 공병대 소속 궤도차량에 치어 숨졌습니다. 사고가 난 길은 너비 340cm의 편도 1차선 지방도로, 궤도차량의 너비는 그보다 넓은 367cm였습니다.
경찰은 당시 10여대의 미군 차량이 훈련을 위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진행 중이었으며, 그 중 세 번째 차량이 맞은편에서 오던 장갑차와 교행하기 위해 도로 옆쪽으로 붙여 진행하다가 갓길을 걷고 있던 신양 등을 덮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미군 쪽은 궤도차량이 통상적으로 진행하고 있었으며, 운전사는 앞서 가던 학생들을 보지 못했고, 조수석의 관제장교가 보고 정지명령을 내렸으나 운전사가 이를 듣지 못해 사고가 났다고 밝혔습니다. 유족들은 사고차량이 마주오던 장갑차를 피하기 위해 급히 방향을 틀어 일어난 살인행위라고 주장하였지만, 미군 쪽은 공무 중에 일어난 사고라며 일방적으로 자체 조사를 벌여 진실을 가려내기가 쉽지 않은 현실입니다.
두 소녀는 6월15일 학교에서 장례를 치르고 한줌의 재가 되었습니다. 친구인 조유림 양은 낭독한 편지에서 “아직은 죽음이라는 단어는 15살인 우리들에게는 어울리지 않고 무섭고 두려운 말일 뿐”이라며 “대체 그 무언가가 미선이 효순이가 우리 곁을 떠나게 만들었는지, 오늘 이 자리를 만들었는지 원망스럽기만 하다”고 말했습니다.
미군이 없었다면 이들은 떠나지 않았을 것이요, 미군이 안전에 주의했다면 그 자리는 없었을 것입니다. 사고에 대한 처벌만 엄정히 했더라도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비록 과실이라고 해도 멀쩡한 낮에 갓길을 걷던 보행자를 친 사고를 우리 당국이 소극적으로 대응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미군에 의한 교통사고는 연간 400건이 넘어 ‘일일행사’가 되었지만, 우리 법원의 재판권 행사는 10건에도 못 미친다고 합니다.
하늘 아래 눈뜨고 못 볼 일이 젊은이의 죽음이라고 합니다. 더구나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처참했다고 합니다.
두 소녀의 어처구니없는 죽음을 월드컵 16강 진출과 바꿔 되돌릴 수 있다면 기꺼이 바꾸겠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되어 16강 진출에 기뻐한 이상으로, 하나되어 두 영혼을 애도해야 할 사건입니다.
잘못이 없는 죽음, 경위를 정확히 모르는 죽음. 이런 일이 한켠에서 지속된다면 ‘아∼ 대한민국’ 외쳐봐야 헛일입니다.
한겨레21 편집장 정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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