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프로리그 지역구장의 관중석을 비추면서 팬들의 국가대표 편애를 질타하는 보도도 많았다. 역설적인 것은 그렇게 지적하는 언론들 스스로가 지역언론의 활성화를 막고 있는 장본인이라는 것이다.
한·미전이 열린 6월10일 회사가 대형 호프집을 전세내는 호의를 베푸는 바람에 다른 직원들과 함께 이른바 집단시청 장외응원이라는 걸 해보게 되었다. 부근의 다른 회사 직원들까지 합쳐 200명이 넘는 자발적 ‘붉은악마’들이 질러대는 굉음에 차범근씨의 족집게 해설은 들리지 않았지만, 굳이 화면을 보지 않아도 순간적으로 터져나오는 함성과 탄식소리가 선수들과 공의 향방을 정확하게 중계해주었다. 축구 하나만 잘해도 우리가 이렇게 행복해질 수 있구나, 놀란 새로운 경험이었다.
지역언론 구독운동의 필요성
이번 월드컵 기간을 통해 한국 축구엔 국가대표만 있다는 비판과 반성의 목소리를 수없이 들었다. 텅 빈 프로리그 지역구장의 관중석을 비추면서 팬들의 국가대표 편애를 질타하는 보도도 많았다. 역설적인 것은 그렇게 지적하는 언론들 스스로가 ‘지역 없는 국가대표들’로서 중앙집권적 문화를 확대재생산함으로써 지역언론의 활성화를 막고 있는 장본인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사는 하남시의 시민들은 거의가 중앙일간지를 구독하고 있는데, 실은 그런 ‘국가대표 언론들’을 읽기 이전에 먼저 지역언론을 살려야 언론의 체질이 강화되는 게 당연한 이치다. 당장 지방자치 선거를 앞두고 있는데, 월드컵으로 도배를 한 중앙언론의 지면에서는 필요한 정보를 도대체 발견할 수가 없다.
사실 지역축구와 지역언론의 촌수는 그렇게 멀지 않다. 중앙집권적인 문화가 지역의 발전을 방해한다고 할 때, 거기엔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제반 영역이 두루 포함되는 것이다. 스포츠라고 예외이겠는가. 지역문제를 집중 보도하는 언론이 있어야 지역의 행정감시가 이루어지고, 지역의 현안들이 쟁점으로 떠오르고, 지역의 문화가 부각되고, 지역의 스타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 중앙집권적 언론들은 기득권을 이용한 배타적 영업전략과 물량공세로 도무지 지역언론이 뿌리내릴 틈을 주지 않고, 그러다 보면 살아남기 위한 안간힘 속에서 지역언론의 저널리즘적 윤리문제가 불거지게 된다. 그러면 중앙지들은 그것을 빌미로 다시 이들 지역언론의 ‘사이비 이미지’를 강화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섬으로써, 지역언론 약화 또는 고사에 미필적(또는 고의적)으로 가담하는 것이다. 이번 월드컵을 통해서 증명됐지만, 우리가 아는 세상은 실상 언론에 의해 재구성된 ‘가상현실’이라고 말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영화에서 카메라의 시선은 강력한 이데올로기적 틀로 작용한다. 언론이 현실을 재구성하는 원리도 영화의 그것과 크게 다르다고는 할 수 없다. 문제는 영화는 한편으로 끝나지만 언론은 실제로 현실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6월 한달 모든 중앙일간지가 스포츠 신문화하고 모든 방송이 스포츠 채널이 되어버렸다. 경제신문까지 월드컵 전적을 1면 머릿기사로 뽑는 데야 프랑스가 세네갈에 1대 0으로 진 것이 마우쩌둥 사망이나 고베 지진과 맞먹는 뉴스라고 믿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역의 현안에 일단 기사 정도의 관심밖에 기울이지 않는 중앙언론에 ‘중앙시민’들과 똑같은 구독료를 내기는 억울하지 않은가. 좀 엉뚱한 비약 같지만, 축구 발전을 위해서라도, 지역민들에겐 ‘조선일보 절독운동’ 못지않게 지역언론 구독운동이 필요하다. 언론 월드컵이 있다면 한국은? 지역의 토대 없는, 기초 체력이 부실한 ‘국가대표 언론’은 축구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발전도 내다볼 수 없다. 폴란드전 이틀 뒤인 6월6일 현충일 <맨 인 블랙2>의 주연인 윌 스미스와 토미 리 존스가 영화 홍보차 한국을 방문해 기자회견을 했는데, 회견장에 다녀온 한 기자가 혀를 찼다. 일간지나 스포츠지 기자들로부터 미국의 경기를 봤느냐, 다른 경기를 관전할 계획이 있느냐 등등 월드컵과 관련한 질문들이 주로 쏟아졌다는 것이다. 당황한 사회자가 제발 월드컵 얘기는 그만 질문하라고 당부했는데도, 곧바로 월드컵에 대한 질문이 또 나오더라고 했다. 사회자가 질문한 기자에게 “스포츠 신문 기자라는 사실을 밝혀달라”는 농담을 던져 난처함을 무마했다는 것이다. 언론 월드컵이 있으면 아시아 지역예선에서 탈락할 수준이다.

사진/ 최보은 ㅣ 영화월간지 <프리미어> 편집장 (이정용 기자)
사실 지역축구와 지역언론의 촌수는 그렇게 멀지 않다. 중앙집권적인 문화가 지역의 발전을 방해한다고 할 때, 거기엔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제반 영역이 두루 포함되는 것이다. 스포츠라고 예외이겠는가. 지역문제를 집중 보도하는 언론이 있어야 지역의 행정감시가 이루어지고, 지역의 현안들이 쟁점으로 떠오르고, 지역의 문화가 부각되고, 지역의 스타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 중앙집권적 언론들은 기득권을 이용한 배타적 영업전략과 물량공세로 도무지 지역언론이 뿌리내릴 틈을 주지 않고, 그러다 보면 살아남기 위한 안간힘 속에서 지역언론의 저널리즘적 윤리문제가 불거지게 된다. 그러면 중앙지들은 그것을 빌미로 다시 이들 지역언론의 ‘사이비 이미지’를 강화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섬으로써, 지역언론 약화 또는 고사에 미필적(또는 고의적)으로 가담하는 것이다. 이번 월드컵을 통해서 증명됐지만, 우리가 아는 세상은 실상 언론에 의해 재구성된 ‘가상현실’이라고 말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영화에서 카메라의 시선은 강력한 이데올로기적 틀로 작용한다. 언론이 현실을 재구성하는 원리도 영화의 그것과 크게 다르다고는 할 수 없다. 문제는 영화는 한편으로 끝나지만 언론은 실제로 현실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6월 한달 모든 중앙일간지가 스포츠 신문화하고 모든 방송이 스포츠 채널이 되어버렸다. 경제신문까지 월드컵 전적을 1면 머릿기사로 뽑는 데야 프랑스가 세네갈에 1대 0으로 진 것이 마우쩌둥 사망이나 고베 지진과 맞먹는 뉴스라고 믿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역의 현안에 일단 기사 정도의 관심밖에 기울이지 않는 중앙언론에 ‘중앙시민’들과 똑같은 구독료를 내기는 억울하지 않은가. 좀 엉뚱한 비약 같지만, 축구 발전을 위해서라도, 지역민들에겐 ‘조선일보 절독운동’ 못지않게 지역언론 구독운동이 필요하다. 언론 월드컵이 있다면 한국은? 지역의 토대 없는, 기초 체력이 부실한 ‘국가대표 언론’은 축구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발전도 내다볼 수 없다. 폴란드전 이틀 뒤인 6월6일 현충일 <맨 인 블랙2>의 주연인 윌 스미스와 토미 리 존스가 영화 홍보차 한국을 방문해 기자회견을 했는데, 회견장에 다녀온 한 기자가 혀를 찼다. 일간지나 스포츠지 기자들로부터 미국의 경기를 봤느냐, 다른 경기를 관전할 계획이 있느냐 등등 월드컵과 관련한 질문들이 주로 쏟아졌다는 것이다. 당황한 사회자가 제발 월드컵 얘기는 그만 질문하라고 당부했는데도, 곧바로 월드컵에 대한 질문이 또 나오더라고 했다. 사회자가 질문한 기자에게 “스포츠 신문 기자라는 사실을 밝혀달라”는 농담을 던져 난처함을 무마했다는 것이다. 언론 월드컵이 있으면 아시아 지역예선에서 탈락할 수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