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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어느 누가 막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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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6-1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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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정용 기자)
6월이 가면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가 있을 것입니다.

승부에의 환호와 거리의 열기는 아스라한 몇컷의 장면으로만 머릿속에 남을 것입니다. 마치 영화 <원더풀 라이프>에서 지난 기억을 어렵사리 되살리려는 비디오테이프처럼.

월드컵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은 방송사와 기업들은 한동안 계속 주판알을 튕기겠지요. 덩그러니 축구장을 짊어진 지자체들도 축제의 뒤처리를 하느라 골머리를 앓겠지요.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일상으로 돌아가 있을 것입니다. 마치 언제 우리가 함께 열광한 축제가 있었느냐는 듯이. 언제 우리가 어깨를 비비고 손잡고 환호했느냐는 듯이.

한국인의 응원열기에 놀란 외신기자는 “한국은 다시 조용한 아침의 나라로 돌아갔다”고 타전하겠지요. 그러나 우리는 다시 돌아가지 않습니다. 돌아갈 수 없습니다. 7월은 6월 이전의 일상과 겉모습은 같을지 모르지만, 이미 다릅니다.

뜨거운 6월, 새로운 6월을 거쳤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15년 전인 87년 6월을 거치면서 물줄기가 달라지고, 60년 4월을 거치면서 물의 빛깔이 달라진 것과 같습니다.

잘못된 헌법이 바뀐다든가, 정권이 간판을 내리는 식의 획은 그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확연히 달라지지 않더라도 달라질 수 있다거나 달라져야 한다는 메시지는 선명합니다.


피버노바와 붉은악마는 전국을 해방구이자 한판의 잔치마당으로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축구는 오히려 부차적일 수 있습니다. 지시와 동원에 의하지 않은, 자발적이고 수평적인 운집과 축제가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정치라는 화두를 배제하고 온 국민이 하나가 된 사건이었습니다.

지배자의 공간, 규제와 동원의 구역이던 광장과 거리가 한때나마 시민의 광장이요, 시민의 거리가 됐습니다. 우리에 대한 열정과 사랑으로 신명나는 굿판이 벌어졌습니다. 15년 전 6월 절차적 민주화를 손에 넣었다면, 2002년 6월 시민들은 내용적 민주화를 시현하고 맛보았습니다.

시인은 일찍이 오늘을 예지했습니다. 붉은악마는 새 것이 아니라, 원래 우리에게 있는 것, 우리가 참아온 것이라고. 주인은 바로 나 자신, 그리고 우리라고.

…(중략)

어느 누가 막을 것인가

태백줄기 고을고을마다 봄이 오면 피어나는

진달래·개나리·복사

알제리아 흑인촌에서

카스피해 바닷가의 촌아가씨 마을에서

아침 맑은 나라 거리와 거리

광화문 앞마당, 효자동 종점에서

노도처럼 일어난 이 새피 뿜는 불기둥의

항거……

충천하는 자유에의 의지­……

길어도 길어도 다함없는 샘물처럼

정의와 울분의 행렬은

억겁을 두고 젊음쳐 뒤를 이을지어니

온갖 영광은 햇빛과 함께,

소리치다 쓰러져간 어린 전사의

아름다운 손등 위에 퍼부어지리라.

(신동엽, ‘아사녀’. 1960년 7월)

한겨레21 편집장 정영무 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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