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이정용 기자)
피버노바와 붉은악마는 전국을 해방구이자 한판의 잔치마당으로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축구는 오히려 부차적일 수 있습니다. 지시와 동원에 의하지 않은, 자발적이고 수평적인 운집과 축제가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정치라는 화두를 배제하고 온 국민이 하나가 된 사건이었습니다. 지배자의 공간, 규제와 동원의 구역이던 광장과 거리가 한때나마 시민의 광장이요, 시민의 거리가 됐습니다. 우리에 대한 열정과 사랑으로 신명나는 굿판이 벌어졌습니다. 15년 전 6월 절차적 민주화를 손에 넣었다면, 2002년 6월 시민들은 내용적 민주화를 시현하고 맛보았습니다. 시인은 일찍이 오늘을 예지했습니다. 붉은악마는 새 것이 아니라, 원래 우리에게 있는 것, 우리가 참아온 것이라고. 주인은 바로 나 자신, 그리고 우리라고. …(중략) 어느 누가 막을 것인가 태백줄기 고을고을마다 봄이 오면 피어나는 진달래·개나리·복사 알제리아 흑인촌에서 카스피해 바닷가의 촌아가씨 마을에서 아침 맑은 나라 거리와 거리 광화문 앞마당, 효자동 종점에서 노도처럼 일어난 이 새피 뿜는 불기둥의 항거…… 충천하는 자유에의 의지…… 길어도 길어도 다함없는 샘물처럼 정의와 울분의 행렬은 억겁을 두고 젊음쳐 뒤를 이을지어니 온갖 영광은 햇빛과 함께, 소리치다 쓰러져간 어린 전사의 아름다운 손등 위에 퍼부어지리라. (신동엽, ‘아사녀’. 1960년 7월) 한겨레21 편집장 정영무 young@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