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은 결국 그를 죽였네
등록 : 2002-06-12 00:00 수정 :
“퇴원하면 쓰려고 의수·의족까지 마련해뒀는데….”
미군이 관리책임을 지고 있는 2만2800볼트 고압선에 감전돼 1년 가까이 투병해온
전동록(54·경기 파주시 파주읍)씨가 6월6일 오후 끝내 숨을 거뒀다. 감전사고 뒤 팔다리를 모두 잘라내고도 꿋꿋이 버텨내던 그는 혈관이식수술 뒤 찾아온 합병증으로 갑자기 배에 물이 차고 혈관이 터지면서 유언조차 남기지 못한 채 한 많은 삶을 마감했다.
지난해 7월16일 경기 파주시 뇌조리에 있는 미군부대 ‘캠프 하우스’ 후문 앞 건물에서 철재지붕 공사를 하던 전씨는 미군부대에서 뻗어나온 고압선에 감전돼 의식을 잃었다. 전류가 심장을 건드리지 않아 다행히 목숨을 건진 그는 양쪽 팔다리에 중화상을 입고 간과 폐에도 손상을 입어 12주 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경과가 좋지 않으면 팔다리를 절단할 수 있다”는 불길한 소견도 이어졌다.
공사 시작 전부터 건물주와 이장 등 마을 주민들은 미군 쪽에 “사고 위험이 있으니 고압선을 치워달라”고 여러 차례 요청했다. 그러나 미군 쪽은 “고압선과 관련한 위법사항이 없으니 알아서 하라”는 대답뿐이었다고 주민들은 말한다. 사고가 난 뒤 미군 쪽은 병원을 방문해 위로금 명목으로 전씨 가족에게 60만원을 건넨 뒤 여지껏 아무런 반응이 없다.
사고난 지 한달여 만에 전씨는 양쪽 팔다리를 차례로 절단해야 했다. 고압선에 숯덩이가 돼버린 육체가 썩어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달 뒤에는 절단부위가 감염되면서 뼈를 더 깎아내고 봉합하는 수술까지 받았다. 반복되는 수술로 치료비가 쌓이면서 네 식구의 생계자금은 고스란히 병원비로 쏟아부어졌다. 그것도 모자라 카드 대출까지 받으면서 전씨 가족의 삶은 점차 나락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고압선 이전 요구를 묵살한 미군 쪽에 감전사고의 일차적 책임이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미군 쪽은 사고의 원인은 안전에 부주의한 전씨 탓이라고 주장한다. 현행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은 미군이 점유·소유 또는 관리하는 토지의 공작물과 기타 시설 또는 물건의 설치나 관리의 하자로 인해 발생하는 손해에 대해서도 대한민국 국가가 국가배상법에 의해 손해를 배상하도록 하고 있다. 미군 쪽이 전씨 가족과 시민단체의 반발에도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는 이유다.
월드컵 한-미전이 벌어져 온 나라가 흥분한 채 ‘반미’(?)에 열을 올렸던 지난 6월10일 오전 경기 일산병원에서 전씨의 장례식이 열렸다. 발인제를 마친 뒤 서울 광화문 미국 대사관 앞에서 노제를 지내기 위해 영안실을 나서자, 여지없이 병원 입구부터 경찰이 철통같이 막아섰다. 이날 전씨는 가족과 시민단체 관계자 등 200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벽제 화장터에서 한줌의 재로 태워져 용미리 납골당에 안장됐다.
정인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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