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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 건강] 죽는 날까지 걸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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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6-1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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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 건강 만들기!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먹으면 산다는 ‘철학’을 버리고…고문후유증으로 만신창이 된 몸을 걸으며 치유

나에게도 건강법이라는 것이 있을까. 있다면 아마도 걷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지난 5월1일 노동자들의 거리걷기에 끼었지만 고뿔이 겹쳐 그렇게 힘이 들었다. 그래도 내가 사는 길은 오로지 걷는 것뿐인데 차마 죽기야 하랴 하고 따라붙었다가 대빵 앓아눕게 되었다. 온몸은 으슬으슬 식은땀은 박박, 그래도 다음날 새벽 집사람과 뒷동산을 걷고 다음날 새벽에도 또 걸어 끝내 고뿔을 물리쳤으니 내 건강법이라면 걷기말고 또 있을까.

하지만 이 건강법을 익히기까지는 몇 고비가 있었다.


나는 본디 그저 먹으면 산다는 철학을 울턱으로(우직하게) 믿어오던 미욱이다. 내가 열세살 되던 해 겨울이다. 노상 한데에서 살다가 급성폐렴에 걸려 거리에서 죽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 아버지는 나를 병원엘 안 데려가고 겨울 홍어 한 마리를 끌고와 먹으란다.

고문후유증으로 무릎이 곪아도…

우리 기완이는 그저 먹으면 살아난다고. 단 한 발짝도 못 움직이게시리 숨이 차고 춥고 떨리는데 겨울 홍어가 먹히는가. 먹으면 게우고 또 먹으면 또 게우고. 어쨌거나 나는 그때부터 그저 먹으면 산다는 철학으로 살아왔다.

빨리 먹고 많이 먹고 눈치 안 보고 먹고. 그러나 그런 내 건강법이 깨지고 말았다.

군사깡패들한테 모진 매를 맞고 감옥에서 나온 1982년의 어느 날이다.

언론인 성유보씨가 먹으면 산다는 내 철학이 그리도 애처로웠던지 저녁을 먹자고 자기 집으로 나를 부른 것까지는 고마웠다. 하지만 버스에서 내려 그의 집까지는 500걸음쯤인데도 내 걸음으로 세 시간이나 걸리자 놀라는 것이다.

그 우람하던 백기완이가 어찌 그렇게 되었는가고. 이를테면 고문후유증이라는 것인데 뻑하면 두 무릎이 팅팅 곪고, 서른 발짝만 내리 걸어도 가슴은 찢어지는 듯하고, 먹은 것은 삭이질 못하는데다 당도 나오고, 절단 잠을 못 드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이리하여 한번 입원하면 한달도 더 걸리는 병원신세를 14년 동안 열네번을 져도 그때뿐. 권인숙양 사건소식을 들었을 적이다.

갑자기 두 무릎이 팅팅 곪아 고름을 한 바가지나 빼고난 다음 의사의 말이다. 마음도 몸도 절대 안정이라고.

그런데 87년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에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적이다.

또다시 두 무릎이 욱신욱신하더니 팅팅 곪는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방안을 꿈적거렸더니 갈 데가 있는가. 또다시 고름을 한 바가지 빼게 되었다.

걸으면 병원이 부르고 안 걸으면 거리가 부르는 상황 속에서 내 건강법은 썅(도대체) 어찌해야 할까. 옳거니, 나라는 사람은 몸의 건강과 마음의 건강을 따로 떼어놓을 수가 없으니 죽는 날까지 걷자 하고선 이날 입때까지 새벽에 40분, 점심 먹고 20분, 저녁 먹고 20분씩을 꼬박이 걷는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쉽지가 않다. 때로는 부질없다는 생각도 들고 또 때로는 못난 놈 제 몸만 사리는 것 같기도 해 멈칫멈칫할 때마다 퍼뜩 떠오르는 말이 있다.

참된 춤꾼은 제 장단을 타고난다는 말이다. 제 가슴에서 뛰는 소리에 역사의 고동을 듣는다는 뜻이라. 이렇게 웅얼대며 오늘도 걷는다.

하나를 세고 둘을 세고

만을 세고 천만번 거퍼 세도

한평생 얼어붙은 분단의 사슬, 있는 자의 독재

그래도 또 세자

세다가 일생을 마치는 한이 있어도

하나부터 다시 세자

얼붙은 천장, 틈새마다

별 이름을 매겨주어도

아직도 먼동은 멀었는가

그래도 또 세자

지금 나의 싸움은 바보처럼 세는 거다

악독한 거짓말쟁이 네놈들의 죄상을

토막토막 질근질근 이를 갈며

이 밤을 끝간 데까지

세고 또 세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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