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지체 장애인들을 일터로 이끄는 오산학교… 색다른 직업훈련 방식으로 취업률 높여
윙∼. 날카로운 금속음이 목공예실을 가득 채운다. 수일(21)이가 나무판을 집어넣자 자동 대패기가 톱밥을 튕겨낸다. 몸에 묻은 톱밥을 털며 건너편에 선 현기(21)가 대패질이 끝난 부분을 잡아 당긴다. 힘이 부치는 모양이다. 옆에 섰던 선생님이 거들자 목재가 대패기를 빠져나온다. 나무판이 매끈해졌다. 수일이와 현기는 목재를 들고 함께 전기 톱날로 가져가 두 끝을 다듬는다. 이것으로 무엇을 만들어볼까? 수일이와 현기는 무엇을 만들지 결정하지 못했다. 아니 스스로 결정하기 힘들다. 모두 정신지체 3급장애 학생들이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은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나무판을 들고 자동 대패기와 전기톱과 씨름하는 이유가 있다.
특수학교 졸업해도 20%대 취업률
“집에서 가까운 데, 가구공장에 취업하고 싶어요.” 준(20·정신지체 2급)이가 무뚝뚝하게 말한다. 며칠 전 강원도 양양에 있는 싱크대 조립업체에서 일할 사람을 구한다는 소식을 들은 모양이다. ‘취업을 희망합니다’라고 쓰인 그의 취업희망카드에는 “읽기 및 쓰기 가능, 계산 가능, 돈 개념 형성”, “주의가 산만함”이라고 적혀 있다. 취업하려고 하는 이유를 묻자 준이는 “먹고 살아야죠”라고 간단하고 퉁명스럽게 대답한다. 하지만 그의 취업은 불투명하다. 정신지체 2급장애와 함께 간질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 고용촉진 등에 관한 법률’의 장애인 의무고용 조항에 따라 상시근로자 300인 이상 사업체는 상시근로자의 2%를 장애인으로 고용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장애인 고용률은 0.91%에 불과하다. 장애인 의무고용 대상업체 1925개 가운데 303개 업체만이 고용 의무를 이행하고 있다. 지난 96년부터 특수학교에는 고등부 과정을 마친 장애 학생의 직업훈련 과정으로 20개의 전공과(2년 과정)가 생겼지만 이들이 일자리를 구하기란 여전히 하늘의 별따기와 다름없다. 정신지체 특수학교에서도 학생들이 졸업 이후에 일자리를 구하고 사회적응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직업훈련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정신지체 특수학교 졸업자 가운데 취업자는 20%대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정신지체 특수교육기관인 오성학교의 취업률은 놀랄 만하다. 오성학교 전공과에서 첫 졸업생을 배출한 98년에는 14명의 졸업생 가운데 8명이 취업을 했고, 99년에는 16명 가운데 10명이 일자리를 구했다. 그리고 올해 19명의 졸업생 가운데 17명이 취업을 해 89.5%의 취업률을 기록했다. 사실은 100% 취업이라고 볼 수 있다. 뇌성마비 1급장애로 움직이는 게 거의 불가능한 학생과 건강이 좋지 않아 학교로 되돌아온 학생은 취업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오성학교도 이전에는 10명이 졸업하면 기껏해야 한두명이 취업했을 뿐이었다. 취업률이 급격히 높아진 데는 나름의 비결이 있다. 어명훈 교장은 “‘선훈련 후배치’라는 기존의 직업훈련 개념에서 벗어나 사업체에서 직접 문제점을 개선하고 훈련할 수 있는 ‘선배치 후훈련’의 지원고용 방식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학교에서 직업훈련을 한 다음 기업체를 알아보며 일자리를 구하는 방식이 아니라 장애인을 고용할 의사가 있는 기업체를 먼저 찾은 다음 그곳에 맞는 훈련을 현장과 학교에서 실시한다는 뜻이다. 그만큼 전공과를 맡고 있는 교사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필요했다. 2년마다 영동지역의 기업체를 찾아다니며 홍보활동을 겸한 설문조사를 했다. 정신지체 학생을 고용할 의사가 있는지를 묻고, 장애 학생들도 일할 수 있다고 설득했다. 해마다 전공과 교사 8명이 직접 기업체를 방문했다. 이병해(34) 전공과 2학년 담임교사는 “사업체에 취업을 구걸하는 느낌이 들었다”면서 “업체 사람들이 정신지체 장애를 이해하지 못해 학생들이 취업할 만한 곳을 찾기가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고 토로했다. ‘선배치 후훈련’으로 기업의 필요 인력 양성 오성학교 전공과는 지역의 몇몇 산업체와 ‘산학협동 교실’을 운영했다. 2학년 학생들이 1∼2주 동안 산업체 현장교육을 할 때에는 교사도 학생 2∼3명과 한조를 이뤄 똑같이 현장에 나가 함께 일했다. 학생들이 취업했을 때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를 직접 보고 지도하기 위해서다. 교사와 함께 일했기 때문에 학생들의 현장 적응속도도 한결 나아졌다. 이보숙(38·여) 전공부장은 “기술이나 작업이 서투른 것보다 학생들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생활하는 것을 힘들어했다”고 말한다. 지난 6월에 동해에 있는 한 장갑 제조업체에 학생 2명과 현장 실습교육을 나갔다. 작업을 하다 실이 끊어졌는데도 학생은 다른 사람한테 알리지 못했다고 한다. 특수학교에서만 10년 넘게 따로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시내버스를 탈 줄 몰라 출·퇴근하는 일도 큰 문제였다. 어떤 학생은 직장에서 일하고 집을 찾아가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사회적응훈련 교육을 했다. 시내버스 타기, 신호등 보고 건너기, 공중전화 걸기, 물건 사기 등등. 또 매달 ‘현장 체험학습’을 진행했다. 여기에는 DDR체험, 시장에서 물건 사기, 정동진 기차여행, 볼링장 체험 등이 포함되어 있다. 같은 또래들이 일상에서 즐기는 일을 정신지체 학생들도 경험하도록 한 것이다. 단기 실습교육이 끝나고 기업체에서 고용 의사를 밝히면 사업주와 학부모, 교사가 모여 실제로 학생이 취업해 일할 수 있는지를 논의했다. 취업이 가능하다고 판단하면 조기 취업 형태로 장기 현장실습을 했다. 물론 이때도 교사가 학생과 함께 현장에 나가 일하며 상담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벌써 올해 전공과 2학년생 19명 가운데 7명이 장기 현장실습을 하고 있다. 이보숙 전공부장은 “졸업한 뒤에도 취업한 학생들이 직장에서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전화를 통해 상담을 계속하고 있다”며 “교사들은 ‘학교 졸업 뒤에 학생들이 어떻게 살 것인가’를 염두에 두고 취업교육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특수학교의 시설·장비가 부족하고 낙후한 것은 사실이지만 좋은 시설을 갖추고도 학교 안에서만 교육을 한다면 장애 학생들의 취업난이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일터에 적응하는 게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정신지체 학생들 가운데는 취업을 하고 6개월 안에 회사를 그만두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또 하나 이들의 취업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정신지체 장애인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라는 편견이다. 심지어 정신지체 학생의 부모들조차 같은 생각을 한다. 이씨는 “현장 실습을 간다고 하면 부모들이 ‘우리 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한다”며 “부모의 과잉보호가 오히려 학생들의 자립을 막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정신지체 장애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다. 스스로 생각해서 어떤 일을 하기보다는 남이 하는 것을 보고 반복해서 따라하면서 일을 배운다. 그래서 이들의 일감은 주로 단순 반복 작업이다. 성실하게 일터를 지키는 그들을 주목하라
강릉에 있는 영광전자에는 오성학교 졸업생이 9명이나 취직했다. 직원이 33명인 작은 라디오, 텔리비전 스피커 제조업체이다. 이 업체의 김범수(34) 과장은 “정신지체 3급장애인들이라 행동이 조금 느리기는 하지만 별다른 문제는 없다”며 “9년 넘게 근무해 여러 가지 일을 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이곳에 취직한 박의철(29)씨는 접착제를 바른 스피커를 차곡차곡 쌓는 일을 한다. 오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2번이나 옮겼다. 전 직장이 모두 부도가 나 월급 한푼 받지 못했다. 이곳에서 받는 월급도 최저임금 수준이다. 그럼에도 박씨는 단 한차례도 결근하거나 지각한 일이 없다. “재밌어요. 나이가 자꾸 드니까 취직하고 싶었는데 갈 데도 없고. 일하니까 좋아요.” 말 한마디 꺼낼 때마다 힘겹게 얼굴 근육을 움직이면서도 그는 결코 웃음을 잃지 않는다. 일자리를 갖는다는 것은 자활인으로 스스로 삶을 꾸려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황상철 기자rosebud@hani.co.kr

(사진/오성학교는 정신지체 학생들에게 일하는 기쁨을 안겨주고 있다. 학생들이 목공예실에서 자동 대패기로 실습하고있다)
‘장애인 고용촉진 등에 관한 법률’의 장애인 의무고용 조항에 따라 상시근로자 300인 이상 사업체는 상시근로자의 2%를 장애인으로 고용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장애인 고용률은 0.91%에 불과하다. 장애인 의무고용 대상업체 1925개 가운데 303개 업체만이 고용 의무를 이행하고 있다. 지난 96년부터 특수학교에는 고등부 과정을 마친 장애 학생의 직업훈련 과정으로 20개의 전공과(2년 과정)가 생겼지만 이들이 일자리를 구하기란 여전히 하늘의 별따기와 다름없다. 정신지체 특수학교에서도 학생들이 졸업 이후에 일자리를 구하고 사회적응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직업훈련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정신지체 특수학교 졸업자 가운데 취업자는 20%대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정신지체 특수교육기관인 오성학교의 취업률은 놀랄 만하다. 오성학교 전공과에서 첫 졸업생을 배출한 98년에는 14명의 졸업생 가운데 8명이 취업을 했고, 99년에는 16명 가운데 10명이 일자리를 구했다. 그리고 올해 19명의 졸업생 가운데 17명이 취업을 해 89.5%의 취업률을 기록했다. 사실은 100% 취업이라고 볼 수 있다. 뇌성마비 1급장애로 움직이는 게 거의 불가능한 학생과 건강이 좋지 않아 학교로 되돌아온 학생은 취업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오성학교도 이전에는 10명이 졸업하면 기껏해야 한두명이 취업했을 뿐이었다. 취업률이 급격히 높아진 데는 나름의 비결이 있다. 어명훈 교장은 “‘선훈련 후배치’라는 기존의 직업훈련 개념에서 벗어나 사업체에서 직접 문제점을 개선하고 훈련할 수 있는 ‘선배치 후훈련’의 지원고용 방식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학교에서 직업훈련을 한 다음 기업체를 알아보며 일자리를 구하는 방식이 아니라 장애인을 고용할 의사가 있는 기업체를 먼저 찾은 다음 그곳에 맞는 훈련을 현장과 학교에서 실시한다는 뜻이다. 그만큼 전공과를 맡고 있는 교사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필요했다. 2년마다 영동지역의 기업체를 찾아다니며 홍보활동을 겸한 설문조사를 했다. 정신지체 학생을 고용할 의사가 있는지를 묻고, 장애 학생들도 일할 수 있다고 설득했다. 해마다 전공과 교사 8명이 직접 기업체를 방문했다. 이병해(34) 전공과 2학년 담임교사는 “사업체에 취업을 구걸하는 느낌이 들었다”면서 “업체 사람들이 정신지체 장애를 이해하지 못해 학생들이 취업할 만한 곳을 찾기가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고 토로했다. ‘선배치 후훈련’으로 기업의 필요 인력 양성 오성학교 전공과는 지역의 몇몇 산업체와 ‘산학협동 교실’을 운영했다. 2학년 학생들이 1∼2주 동안 산업체 현장교육을 할 때에는 교사도 학생 2∼3명과 한조를 이뤄 똑같이 현장에 나가 함께 일했다. 학생들이 취업했을 때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를 직접 보고 지도하기 위해서다. 교사와 함께 일했기 때문에 학생들의 현장 적응속도도 한결 나아졌다. 이보숙(38·여) 전공부장은 “기술이나 작업이 서투른 것보다 학생들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생활하는 것을 힘들어했다”고 말한다. 지난 6월에 동해에 있는 한 장갑 제조업체에 학생 2명과 현장 실습교육을 나갔다. 작업을 하다 실이 끊어졌는데도 학생은 다른 사람한테 알리지 못했다고 한다. 특수학교에서만 10년 넘게 따로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시내버스를 탈 줄 몰라 출·퇴근하는 일도 큰 문제였다. 어떤 학생은 직장에서 일하고 집을 찾아가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사회적응훈련 교육을 했다. 시내버스 타기, 신호등 보고 건너기, 공중전화 걸기, 물건 사기 등등. 또 매달 ‘현장 체험학습’을 진행했다. 여기에는 DDR체험, 시장에서 물건 사기, 정동진 기차여행, 볼링장 체험 등이 포함되어 있다. 같은 또래들이 일상에서 즐기는 일을 정신지체 학생들도 경험하도록 한 것이다. 단기 실습교육이 끝나고 기업체에서 고용 의사를 밝히면 사업주와 학부모, 교사가 모여 실제로 학생이 취업해 일할 수 있는지를 논의했다. 취업이 가능하다고 판단하면 조기 취업 형태로 장기 현장실습을 했다. 물론 이때도 교사가 학생과 함께 현장에 나가 일하며 상담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벌써 올해 전공과 2학년생 19명 가운데 7명이 장기 현장실습을 하고 있다. 이보숙 전공부장은 “졸업한 뒤에도 취업한 학생들이 직장에서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전화를 통해 상담을 계속하고 있다”며 “교사들은 ‘학교 졸업 뒤에 학생들이 어떻게 살 것인가’를 염두에 두고 취업교육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특수학교의 시설·장비가 부족하고 낙후한 것은 사실이지만 좋은 시설을 갖추고도 학교 안에서만 교육을 한다면 장애 학생들의 취업난이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일터에 적응하는 게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정신지체 학생들 가운데는 취업을 하고 6개월 안에 회사를 그만두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또 하나 이들의 취업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정신지체 장애인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라는 편견이다. 심지어 정신지체 학생의 부모들조차 같은 생각을 한다. 이씨는 “현장 실습을 간다고 하면 부모들이 ‘우리 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한다”며 “부모의 과잉보호가 오히려 학생들의 자립을 막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정신지체 장애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다. 스스로 생각해서 어떤 일을 하기보다는 남이 하는 것을 보고 반복해서 따라하면서 일을 배운다. 그래서 이들의 일감은 주로 단순 반복 작업이다. 성실하게 일터를 지키는 그들을 주목하라

(사진/강릉 영광전자에서 일하는 오성학교 졸업생들. 이들은 초저임금수준에도 웃음을 잃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