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한겨레 이정우 기자)
지금까지 논란은 거두절미한 몇 마디 단어의 품격 시비에 모아졌습니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 시정잡배나 쓰는 그런 말을 써도 되느냐는, 초보적인 엄숙주의입니다. 언어학자나 윤리학자의 자문을 구하지 않더라도 깽판이나 양아치가 고운 말이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다만 우리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점잖지 못하다고 여기는 노골적인 성 관련 욕은 아니며 흔히 접할 수 있는 비속어입니다. 그런데 이런 말을 갖고 자질 시비를 하기 이전에 이 말이 얼마나 ‘돼먹지 못한’ 말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악의 축’, ‘창자’, ‘광기’ 같은 험한 말들의 말잔치에서 품격의 진정한 족보는 어떻게 될까? 논의를 더 근본적인 쪽으로 옮겨봅시다. 과연 말에 품격은 있는가? 그것을 누가 재단하는가? 저질발언 시비를 일으킨 <조선일보>를 기준으로 보면, 비속어를, 그 중에서도 우리말 비속어를, 그리고 그것을 특정 부류가 쓸 때 ‘막말’이 됩니다. 비슷한 말이라도 자기네가 ‘*판’이라고 쓰거나, 한자어인 시정잡배 따위로 쓰면 품격의 그물에 걸리지 않습니다. “저질이 저질발언을 했기 때문에 저질이다”라는 편의적이고 자의적인 동어반복적 논리에 바탕하고 있습니다. 말의 품격을 말하는 쪽의 품격을 먼저 따져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본질적으로 말의 품격은 표현이 비속어나 육두문자에 가까운지 아닌지가 아니라, 말이 헛말이거나 억압적인가 아닌가 하는 데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한겨레21 편집장 정영무 young@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