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주국 상징물 유치 둘러싼 지자체들의 혈전… 수익성에 눈 멀어 행정·재정 낭비 극심
(사진/태권도공원 유치를 둘러싼 일대 격돌.인천 강화 태권도 수련 학생들의 거리행진(왼쪽)과 보은 군민들의 유치 법회 모습)
‘태권도공원을 통일중심도시 파주에 세우자’, ‘태권도, 가자 세계로 오라 보은 속리산으로’ 등 거리 곳곳마다 플래카드가 뒤덮인 지는 이미 오래다. ‘준비된’ 태권도공원을 강조하기 위한 지역별 서명운동이나 주민결의대회도 일찌감치 시작됐다. 충북 보은군 태권공원유치기획단 김광호 팀장은 “경쟁지역인 춘천, 파주, 강화, 무주, 경주 등을 직접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어 후보지가 될 만한지 특성을 살펴보기도 했다”며 “우리가 최적지”라고 주장했다. “우리가 제1후보지로 급부상하고 있다”는 말은 모든 시·군이 한결같다. 보은군은 군민 2만8천명과 국회의원 83명의 서명을 발판으로 태권도공원 유치청원서를 국회에 제출하기도 했다. 김광호 팀장은 “어린애만 빼고 군민이면 누구나 서명한 셈”이라고 자랑했다. 신청서를 낸 지자체는 시장이나 군수가 직접 뛰면서 국무총리나 대한태권도협회장 등을 만나 로비를 펴는 한편 기획실무단을 구성해 유치 논리를 개발하고 있다. 일부 시·도는 자기 지역이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에 태권도 발원지로 나온다며 타당성을 홍보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대대적인 유치전은 민간 차원의 지역추진위원회 구성으로 더욱 불을 뿜고 있다. 강릉시는 강릉지역 각급 기관단체장과 출향인사, 지역출신 국회의원 등이 광범위하게 참여한 공원유치 범시민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대정부 로비활동을 벌이고 있다. 강릉시는 특히 일본과 중국의 3개 도시와 교류를 맺어 외국인 2500여명으로부터 지지서명을 받은 데 이어 과거 강릉에 거주했던 해외동포 415명한테까지도 서명을 받았다. 유치 열기가 뜨겁기는 광역자치단체도 마찬가지다. 광주시장, 전남지사, 강원도의회는 청와대와 국무총리실 등에 자기 지역 기초단체에 유치해줄 것을 건의했고 제주도는 도차원의 유치위원회를 꾸려 남제주군 유치활동을 돕고 있다. 경기도 양주의 경우 의정부가 범양주권으로 묶인다는 이유로 의정부지역 국회의원까지 양주군 유치에 나서고 있으며 보은군은 유치활동을 위해 서울연락사무소까지 설치했다. 광역단체의 조정 없이 쏟아붙기식 유치전
문화부 체육진흥과는 “부지로 100만평을 내놓을 수 있는 지역이 이렇게 많을 줄 미처 몰랐다. 애초 네댓곳 정도나 신청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27곳이나 돼 우리도 감당하기 어렵다”고 난감해했다. 후보지 난립과 유치를 둘러싼 과열 양상은 거듭된 일정 차질을 불러오고 있다. 애초 7월 말로 잡혀있던 후보지 선정은 9월 말로 연기됐다가 공청회를 3번이나 열면서 또다시 10월 말로 늦춰졌다. 그동안 문화부 장관 이름으로 각 지자체에 과열을 자제하라는 공문이 두 차례나 내려갔고, 그래도 수그러들지 않자 문화부는 각 시·군 관계자를 불러모아 지역의 유치열기는 평가에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고 못을 박기도 했다.
경쟁과열은 애초 태권도공원 유치신청을 광역별로 자체조정을 거쳐 한두곳씩 받지 않고 시·군별로 다 받은 데서 비롯됐다. 문화부 체육진흥과 심영섭 과장은 “이렇게 많이 신청할줄 몰랐다”며 “이제 와서 광역별 조정을 강요할 수는 없다. 기초단체도 민선단체장들인데 주민들의 표와 직결되는 것이라 포기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곤혹스러워했다. 유치를 신청한 춘천시 김준우 체육진흥과장도 “처음부터 광역별로 컨트롤이 안 돼 과열을 빚고 있는 것”이라며 “광역별 조정은 때가 늦었다”고 말했다. 유치신청서를 낸 27개 시·도 가운데 동해시와 평택시는 부지확보가 어려워 도중에 사업을 포기했다.
태권도공원은 태권도협회가 숙원사업으로 추진했던 것인데도 정작 태권도협회는 빠진 채 사업이 추진되면서 돈벌이를 위한 놀이공원으로 퇴색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서울대 나영일 교수(체육연구소장)는 “문화부의 사업추진과정에서 태권도인들은 주체에서 빠지고 말았다. 그러다보니 태권도 성전을 짓겠다는 애초 구상이 관광객들을 위한 수익사업으로 변질되고 있는 느낌이 없지 않다”고 아쉬워했다.
문화부의 사업계획을 보면 태권도공원은 6개 단지로 구성된다. 태권도인들이 요구했던 태권도 전당은 10만평, 태권도수련단지는 30만평이다. 여기에 호국청소년단지 20만평, 관광단지 20만평, 무술영상단지 10만평, 한방기공단지 10만평 등까지 부대시설로 들어간다. 관광코스로 운영되는 태권도 테마공원을 조성한다는 것이다. 물론 지자체들이 탐내는 것은 ‘돈이 되는’ 관광상품 성격의 부대시설들이다. 대한태권도협회쪽은 “문화부로부터 사업에 참여해달라는 요청도 없었고 시설과 관련해 어떤 상의도 한 적이 없다. 태권도 전당 외에 다른 부대시설은 우리가 말할 입장이 못된다”고 말했다. 나영일 교수는 “태권도공원이란 이름으로 영상단지같은 위락시설까지 꼭 들어설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며 “수익사업에 치우친 탓에 공원면적이 100만평에 이르러 환경파괴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나 교수의 지적처럼 공원조성 면적이 여의도 면적을 웃도는 만큼 대규모 환경훼손을 어떻게 최소화할 것인지도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이다. 27개 시·군이 후보지로 내놓은 부지는 거의 다 산으로, 풍광이 빼어난 곳만 고르다보니 보전임지가 전체 후보지의 70%를 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산림법은 지속적인 산림보존을 위해 전국 임야를 보전임지와 준보전임지로 나눠 보전임지로 묶인 지역은 전용을 억제하고 개발을 제한하고 있다. 후보지 선정기준에는 이와 관련해 법적 제약이 있는지 여부를 평가항목으로 넣고 있다. 문화부 관계자는 “현행 법체계상 보전임지는 풀기가 난해하다. 하지만 국가차원의 프로젝트인데 접근이 어렵다는 것일 뿐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며 신청지역 대부분이 보전임지인 상태에서 보전임지 훼손은 불가피하다는 뜻을 내비쳤다. 산림청쪽도 “보전임지는 말 그대로 보전이 원칙이다. 하지만 공공사업이라면 보전임지에 건축허가를 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립공원 속리산 자락을 후보지로 정한 보은군은 환경부가 해당 지역을 국립공원으로 추가지정하려 하자 “태권도공원 유치사업에 쪽박을 깨자는 것이냐”며 강력히 항의해 국립공원 대상에서 빼기도 했다. 녹색연합 서재철 부장은 “이번 기회에 보전임지를 풀어서 활용해보자는 것이 유치를 희망하는 지자체들의 속셈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유치 실패한 지자체의 후유증을 생각해야
서 부장은 또 “최종 선정지역이 결정되면 그순간 나머지 24개 다른 지역은 그동안 막대한 예산을 쓰고 유치추진기구를 움직이고 한 게 다 헛수고가 되면서 후유증을 겪을 게 불을 보듯 뻔하다”며 “지금의 유치경쟁은 도박판 같은 형국”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성남시와 하남시는 부지 매입에 드는 수천억원을 조달할 길이 막막해 사업 포기의사를 비치고 있지만 공식적인 포기선언은 하지 않은 채 어정쩡한 상태로 유치를 계속 추진하고 있는 형편이다. 문화부 태권도공원기획단 관계자는 “유치경쟁에 매달리고 있는 지역 공무원마다 너무 힘들다며 선정작업을 빨리 끝내달라고 아우성이다. 사실상 유치가 어려운 일부 시·군의 중간 실무진은 사업철회쪽으로 기울고 있지만 민선단체장은 지역주민들의 표 때문에 그냥 가자고 한다”고 전했다. 각 시·군마다 시장, 군수부터 읍·면·이장까지 동원돼 태권도공원 유치에 총력을 기울이면서 행정적, 재정적 낭비만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조계완 기자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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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단체들의 태권도공원 유치경쟁이 막판에 접어들면서 점입가경이다. 문화관광부는 물론 청와대, 국회 등을 상대로 한 로비전이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는가 하면 다른 경쟁지역의 동향을 살피는 첩보전까지 등장하고 있다. 유치 희망지역에서 서울이 빠진 탓에 어찌보면 조용한 듯하지만 유치를 추진하고 있는 지역은 아예 사활을 걸다시피하고 있다. 지난 4월 말 태권도공원 유치신청 접수 이전부터 ‘소리없는 전쟁’으로 전개되던 경쟁은 신청이 끝난 뒤 전국적으로 들끓기 시작해 최종 후보지 선정이 10월 말로 다가오면서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문화부는 9월25일부터 후보지역별로 현장실사를 벌인 뒤 선정 사흘 전 심사위원회를 전격구성해 비공개리에 선정을 마칠 계획이다.
국비 2천억 투입… 전국 27개 시·군 참여 태권도공원 건설은 태권도 종주국을 대표하는 상징물을 만들고 태권도를 21세기 관광전략상품화한다는 구상에서 추진되고 있다. 100만평 이상으로 예정된 공원부지를 지자체가 무상제공하는 조건으로 올해부터 2007년까지 국비 2천억원이 투입된다. 문화부에 유치 제안서를 낸 곳은 전국 27개 시·군이다. 경기도가 9곳으로 가장 많고, 강원과 전북이 각 4곳, 충남·북이 각 2곳, 부산 기장군, 광주 광산구, 인천 강화군, 전남 여수시, 경북 경주시, 제주 남제주군 등 거의 전국을 망라하고 있다. 국비와 민간자본 유치로 1조원대의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가 하면 매년 15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 세계 명소로 떠올라 한순간에 지역경제 활성화를 꾀할 수 있다는 게 지자체들의 판단이다. 저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여기는 태권도공원이다 보니 시·군이 전역량을 유치홍보와 로비전에 투입하고 있는 것이다.‘태권도공원을 통일중심도시 파주에 세우자’, ‘태권도, 가자 세계로 오라 보은 속리산으로’ 등 거리 곳곳마다 플래카드가 뒤덮인 지는 이미 오래다. ‘준비된’ 태권도공원을 강조하기 위한 지역별 서명운동이나 주민결의대회도 일찌감치 시작됐다. 충북 보은군 태권공원유치기획단 김광호 팀장은 “경쟁지역인 춘천, 파주, 강화, 무주, 경주 등을 직접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어 후보지가 될 만한지 특성을 살펴보기도 했다”며 “우리가 최적지”라고 주장했다. “우리가 제1후보지로 급부상하고 있다”는 말은 모든 시·군이 한결같다. 보은군은 군민 2만8천명과 국회의원 83명의 서명을 발판으로 태권도공원 유치청원서를 국회에 제출하기도 했다. 김광호 팀장은 “어린애만 빼고 군민이면 누구나 서명한 셈”이라고 자랑했다. 신청서를 낸 지자체는 시장이나 군수가 직접 뛰면서 국무총리나 대한태권도협회장 등을 만나 로비를 펴는 한편 기획실무단을 구성해 유치 논리를 개발하고 있다. 일부 시·도는 자기 지역이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에 태권도 발원지로 나온다며 타당성을 홍보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대대적인 유치전은 민간 차원의 지역추진위원회 구성으로 더욱 불을 뿜고 있다. 강릉시는 강릉지역 각급 기관단체장과 출향인사, 지역출신 국회의원 등이 광범위하게 참여한 공원유치 범시민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대정부 로비활동을 벌이고 있다. 강릉시는 특히 일본과 중국의 3개 도시와 교류를 맺어 외국인 2500여명으로부터 지지서명을 받은 데 이어 과거 강릉에 거주했던 해외동포 415명한테까지도 서명을 받았다. 유치 열기가 뜨겁기는 광역자치단체도 마찬가지다. 광주시장, 전남지사, 강원도의회는 청와대와 국무총리실 등에 자기 지역 기초단체에 유치해줄 것을 건의했고 제주도는 도차원의 유치위원회를 꾸려 남제주군 유치활동을 돕고 있다. 경기도 양주의 경우 의정부가 범양주권으로 묶인다는 이유로 의정부지역 국회의원까지 양주군 유치에 나서고 있으며 보은군은 유치활동을 위해 서울연락사무소까지 설치했다. 광역단체의 조정 없이 쏟아붙기식 유치전

(사진/민간 차원의 유치전도 치열하다.강릉시는 광범위한 추진위를 구성해 대정부 로비활동을 벌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