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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유현산] 승리? 애국심? 그냥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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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5-2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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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를 싫어한 소심한 기자, 붉은악마와 함께 카니발의 열기 속으로 뛰어들다

5월26일 광화문 앞에서 프랑스전 단체관람을 하고 있는 붉은악마와 시민들. 촛 골이 터지자 환호하고 있다.
서귀포 월드컵 경기장에서의 기억은 그 짧은 순간에 멈춰 있다. 박지성이 헤딩골을 넣자 가슴 속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치밀어올랐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나이가 얼마쯤 되는지도 모른 채 주위 사람들을 얼싸안고 팔짝팔짝 뛰었다. 절정의 카타르시스. 수만명의 발 구르는 소리가 어찌나 큰지 관중석이 쿵쿵 흔들렸다. 경기장의 모든 에너지는 이 절정의 순간에 터져나왔다. 상사의 눈총을 받으며 휴가계를 냈든, 시험이 내일모레로 다가왔든, 또는 옛사랑이 할퀴고 간 상처가 크든, 각자의 발목을 잡고 있는 자질구레한 일상의 근심들이 흩어졌다. 모두가 중력을 잃었다. 그 순간 나는 목이 쉬었다.

경기장으로 가는 여정도 축제

스탠드 맨 앞자리에서 응원하고 있는 유현산(가운데)기자. 현장팀의 선창에 따라 응원가를 부르고 있다.
나는 극성스럽게 응원을 좋아하는 대학을 나왔다. 모든 면에서 라이벌 대학을 이겨야 한다는 선배들의 욕망은 신입생들에게 쉽게 전염되고 증폭됐다. 그런 ‘불타는 경쟁의식’은 해마다 가을에 열리는 라이벌전에서 절정을 이루지만, 응원은 최소한 신입생들에겐 일상으로 굳어 있었다. 3월이 되면 응원구호를 외치며 방방 뛰다가 민박집 천장에 구멍을 냈다느니, 한잔 걸치고 엘리베이터 안에서 응원가를 목놓아 불렀다느니 하는 무용담이 캠퍼스를 돌아다녔다.


음주는 좀 하되 가무에는 약할 뿐 아니라, 선천적인 ‘열정 결핍증’을 앓고 있는 나는 그들의 즐거운 일탈에 동참할 수 없었다. 술자리를 마무리하는 거리의 응원전이 시작될 때면 나는 어정쩡하게 뒤로 물러서서 담배를 피워물었다. 소외감을 이런 혼잣말로 달래면서. “유치하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응원에 열광하는 내 동료들은 그저 귀여웠고, 정작 유치한 건 나였다. 어쨌든 그런 내가 ‘그 짓’을 하러 산을 넘고 물을 건너고 있었다. 사실 내가 붉은악마 체험에 자원한 이유는 축구보다는 ‘제주도’라는 매력 때문이었다. 막상 5월21일 잉글랜드전에 참가하는 붉은악마와 잉글랜드 응원단을 위해 마련된 특별기 안에서 몇 시간 뒤면 그네들 틈에 끼어 “짝짝 짝짝짝 대∼한민국!”을 외쳐야 하는 내 모습을 상상해보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제주공항은 비행기가 실어나른 200여명의 붉은악마들에 점령당했다. 서울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탑승구로 가던 시민들이 박수를 쳤고, 공항 입구에는 붉은악마 제주지회 회원들이 나와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전사들을 환영했다. 목포에서 배를 타고 온 한 회원은 “붉은악마라고 하니까 뱃삯을 할인해주더라”며 “배 안에서 중학생들에게 응원을 가르치며 놀았다”고 즐거워했다. 경기장까지 가는 여정은 일종의 퍼레이드 같았다. 나는 공항 매점에서 붉은 응원복을 샀다. 완전무장한 기분이었다.

인터넷을 통해 결성된 10만명의 거대한 조직은 완벽하게 수평적인 연대를 이룬다. 홈페이지에서 경기관람 신청을 하면 사무국이 추첨해서 몇개 조로 나눠 참가자 명단을 발표한다. 회원 중 여행업이나 숙박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응원단의 비행기 예약과 교통·숙박 일정을 담당한다. 원활한 진행을 위해 자원자 중에 뽑힌 각조 조장들은 인원 확인, 차량이나 숙소 배치 등 각종 궂은일을 도맡아 한다. 물론 혜택은 없다. 30대 이상이 조직운영의 큰 책임을 맡고 있지만 붉은악마의 주축은 20대와 10대다. 이렇게 인터넷의 자양분을 먹고 자란 발랄한 세대들은 억지로 짜인 위계를 거부한다. 경기가 끝난 뒤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회장이 관중들에게 인사하러 나오자, 붉은악마 일각에서 “우∼” 하는 야유가 터져나왔다. 선수들에게 하듯 박수를 치거나 환호하는 회원은 없었다. 야유를 주도한 청년에게 다가가 왜 그랬는지 물어보았다. “축구협회가 해준 게 뭐가 있어요? 규제만 하지.” ‘해준 것 없는 이들’에 대한 야유 밑에는 축구협이라는 권위에 대한 반발심리가 깔려 있었다.

여자 붉은악마는 더 무섭더라

서귀포 경기장에서는 남녀노소 모두의 축제가 펼쳐졌다. 특히 여성들의 환호성이 높았다.
경기장으로 가는 봉고차 안에서 내다본 제주의 풍경은 아름다웠다. 한 어린아이가 창문을 내리고 외친다. “일본 꼭 이겨야 돼!” 한·일전인 줄 착각한 이 아이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리고 멀리 바다를 등진 서귀포 경기장이 보였다.

붉은악마는 양쪽 골대 뒤편에 자리를 잡았다. 우리 건너편에는 KTF가 후원하는 붉은악마팀이 “대한민국”을 외치고 있었다. 7년 역사가 있는 기존 붉은악마(올해 SK텔레콤의 후원을 받는다)와는 달리 KTF 붉은악마는 올해 회사 홍보차원에서 조직한 팀이다. 경기 중에는 한쪽에서 선창하면 화답해주면서 별 문제 없이 응원을 이끌지만, 회원들 사이에 갈등이 있는 것은 분명해보였다. 경기 중 한 여성회원이 “우리가 왜 KTF 애들 리딩에 따라줘야 돼. 쪽팔리게”라고 말하기도 했다. 사진기자 김종수 선배가 나를 스탠드 맨 앞자리로 끌고 갔다. 뒷자리에 서 있어도 어색할 판에 나는 이 ‘굿판’의 중심에 있었다. 응원을 이끄는 사람들은 자신을 ‘현장팀’이라 불렀다. 경기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지만 현장팀이 선창하면 붉은악마 전체가 따라하는 응원전은 이미 한창이었다. 현장팀을 이끄는 장석호(33)씨는 부산 아이콘스 서포터 회장으로 98년 프랑스 월드컵에 원정을 다녀오기도 했다. 이젠 휴가를 내지 않아도 회사에서 다녀오라고 한단다. 격려하는 걸까, 포기한 걸까.

내 어색한 손동작을 본 옆자리의 여학생이 묻는다. “응원 처음 해보세요?”, “예.”, “남들 하는 대로 따라하다 보면 금방 익숙해져요.” 특별히 응원연습을 하는 붉은악마는 아무도 없다. 모두가 현장에서 단련된(?) 선수들이다. 사실 ‘필승 코리아’, ‘아리랑’ 등 대부분의 응원가는 일정한 패턴이 있고, 율동도 쉬워서 금방 몸에 익었다. 조금씩 흥이 나기 시작했지만 TV 카메라만 다가오면 놀라 고개를 숙이는 소심증은 어쩔 수 없었다.

선수 소개가 시작되기 전 갑자기 양 옆에서 휴대폰이 울려댔다. 중계방송에 잡힌 모습을 보고 친구들이 격려전화를 하는 모양이다. 한꺼번에 네통의 전화를 받았다느니 만나지 못한 지 10년이 된 동창이 격려전화를 했다느니 작은 소란이 일었다. 내게도 전화 한통이 왔다. “야, 너 어딨냐? 텔레비전에 안 나오는데.” 내 응원장면을 기다리며, 한국팀의 첫골을 기대하며, 이래저래 경기를 두배로 즐기는 한 선배의 전화였다. “다행이군. 얼굴이 안 나온 모양이야.”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나중에 사무실로 돌아오자 한 선배가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야, 너 텔레비전에 나왔던데.” 아뿔싸…!

경기장에는 의외로 여성회원들이 많았다. 어림잡아도 30%는 훨씬 넘어 보였다. 실제 붉은악마 전체회원 중 여성회원의 비율도 30% 정도라 한다. 이들은 남자들의 목소리를 압도할 만큼 적극적이다. 잉글랜드 선수 소개가 이어질 때 주로 여성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특히 베컴과 오언이 전광판 화면에 잡히자 비명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그때 나는 경기 도중 뿌릴 종잇조각을 찢고 있었다. ‘초짜’인 줄 어떻게 알았는지 뒷줄의 여학생들이 신문지를 한 움큼 안겨줬다. 한참 찢다 뒤돌아보니 이미 경기는 진행 중이었다.

질서로부터 해방된 카니발의 공간

경기가 끝난 뒤 관람석을 청소하고 있는 붉은악마.
경기의 진행상황을 제대로 알려면 TV를 봐야 한다. 현장에서 응원할 때는 상대팀이 어떤 전술을 펴고,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는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선수들의 숨소리도 들릴 것 같은 팽팽한 긴장감 속에 공이 왔다갔다하는 모습만 보일 뿐이다. 문득 나는 엉뚱한 후배 손에 이끌려 들어갔던 테크노바를 떠올렸다. 지금 그라운드에 펼쳐진 풍경은 배경음악 같은 것이다. 테크노바의 주연이 단조로운 테크노 음악이 아니듯, 우리가 경기장에서 진짜로 열광하는 대상은 축구가 아니라 숨어 있는 열정을 폭발시키며 함께 손을 흔들고 있는 우리 자신이다. 그래서 잉글랜드의 유명한 오언에게 골을 먹어도 즐거움은 식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를 자극하는 모든 움직임에 환호를 보냈다. 골키퍼가 힘겹게 슛을 막아도 환호, 이천수의 프리킥이 골대를 빗나가도 환호.

전반 40분이 막 지났을 무렵 파도타기가 시작됐다. 경기장에 들어선 뒤 처음으로 붉은악마도 자리에 앉았다. “이런 재미 때문에 오지!” 멀찍이 앉아 있던 중년의 아저씨가 소리쳤다. 내 손으로 찢은 종잇조각과 붉은악마의 머플러가 하늘을 날았다. 경기는 각본이라도 짜여 있는 듯 절정을 향해 치달았다. 마침내 후반 6분 박지성의 동점골이 터졌다. 그 이후는 응원전에 파묻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수도 없이 파도타기가 이어졌다. 응원 선창은 이제 현장팀이 아니라 붉은악마 곳곳에서 터져나왔고 아무렇게나 울려퍼졌다. 한국 선수가 공을 잡으면 무조건 “골! 골 !골!”을 외쳐댔다. “제주 사람들은 원래 숫기가 없어. 처음엔 붉은악마 애들이 아무리 외쳐도 가만히 앉아 있더라니까. 후반에야 다들 일어서서 난리를 쳤지.” 서울로 돌아오기 전 들른 식당에서 엿들은 말처럼 이 경기의 백미는 후반이었다.

붉은 악마의 머플러. 응원 때 일제히 머플러를 흔드는 모습도 장관이다.
경기장은 외부의 질서에서 해방된 카니발의 공간이었다. 붉은악마가 뿜어대는 싱싱한 에너지는 이내 모든 경기장으로 흘러넘친다. 한번 형성된 이 ‘카니발의 자장’은 경기에 이기든 지든 잘 깨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체면을 던져버리고 ‘한판 잘 놀면’ 그만인 것이다. 후반 40분 마지막 코너킥이 무위로 돌아가고 붉은악마들이 “청소! 청소!”를 외칠 때도 흥분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스탠드에 뿌려진 종이를 쓸어담고 경기장 밖으로 나오자 카니발은 계속되고 있었다. 함께 열광하던 잉글랜드 응원단과 시민들이 합세하여 여기저기에 원이 만들고 있었다. 응원가를 부르며 서로 손을 잡고 돌면, 이를 지켜보고 있던 젊은 의경들도 어깨를 들썩였다. 2002년 5월21 나는 제주에서 마음껏 놀았다.

한 골의 쾌감. 그걸 잊지 못하고 5월26일 프랑스전 단체관람을 위해 광화문을 찾았다. 워낙 찾는 사람이 많아 자리 차지하기가 힘들었다. SK텔레콤이 마련한 대형 전광판이 광화문 한복판에 우뚝 서 있었다. 경기장과 달리 그곳에는 ‘돈 냄새’가 물씬 풍겼다. 관람 진행을 맡는 스태프들은 자원봉사자들이 아니라 모두 SK텔레콤이 고용한 이벤트회사 직원이었다. 경기장에서는 볼 수 없는 짧은 치마의 치어리더들이 흥을 돋웠다. 축제의 여흥은 덜했지만 그곳은 일반 시민들에게 좀더 열려 있는 공간이었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나온 시민들이 많이 눈에 띄었고 팩소주와 소시지를 바닥에 깔아놓고 얼굴이 벌게진 전형적인 ‘한국형’ 아저씨도 볼 수 있었다.

‘돈 냄새’ 나는 광화문 단체관람

경기장 안이건 밖이건 풍악이 울리면 즐겁다. 잉글랜드전보다 골이 많이 난 덕택에 나는 골맛을 톡톡히 누렸다. “지금쯤 광화문에서는 이순신 장군 동상이 흔들릴까봐 걱정되네요.” 신문선씨의 말(아, 그 특유의 익살!)처럼 되지는 않았지만 시민들의 열기는 뜨거웠다. 중계방송에서 들리는 붉은악마의 응원을 광화문의 붉은악마들이 따라한다는 점도 재미있었다. 경기 결과는 2 대 3의 아쉬운 패배. 경기가 끝나자 나는 선수들이 아니라 나를 즐겁게 해준 붉은악마를 위해 한참 동안 박수를 쳤다.

나는 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서 우리나라가 4강에 든 이후로, 몇몇 주요 경기를 빼면 거의 축구를 본 기억이 없다. 철이 들면서부터 우리가 열광한 것은 축구가 아니라 그 기호 뒤에 숨어 있는 독재정권의 국가주의라고 결론내리기도 했다. “월드컵이 싫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한 선배는 언젠가 내게 “월드컵 때면 온 국민이 오직 축구에만 관심을 쏟도록 몰아가는 병영국가”를 성토했다. 그러나 붉은악마를 움직이는 것은 ‘동원의 메커니즘’이 아니라 ‘자발성의 메커니즘’이었다. 만약 권력자가 요즘의 발랄한 청춘들에게 축구를 보며 애국심을 키우라고 으르렁댔다면, 붉은악마는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축구를 위해서도, 우리를 위해서도 중요한 것은 애국이 아니라 ‘놀이’다. 이들은 스스로 모이고 스스로 논다. 무거운 언술로 이들의 놀이를 짓누를 필요가 있을까.

나는 붉은악마가 어서 해체되기 바란다(붉은악마 스스로 밝히는 조직의 목표이기도 하다). 그래서 경기장을 찾는 사람들 모두 붉은 옷을 입고 절정의 카니발을 즐겼으면 좋겠다. 월드컵 때만이 아니라 각 지역 구단의 서포터 문화가 활성화돼서 룸살롱을 놀이장으로 삼는 아저씨와 살림에 지친 아줌마들을 끌어냈으면 좋겠다. 나는 광화문 지하철역으로 가는 붉은악마들이 응원가를 부를 때, 그들에게 계속 박수를 쳐댔다.

글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사진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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