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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투표장을 아름다운 그라운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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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5-2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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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정용 기자)
프랑스와 마지막 평가전을 치른 다음날, <한겨레> 스포츠레저부장을 지낸 이길우 광고부장의 차를 타고 출근하는데 신문선씨의 전화가 왔습니다.

이 부장에게 승전보를 알리는 전화였습니다. 전날 방송3사 시청률 경쟁에서 앞섰다는 자랑이었습니다. 신씨는 시청률은 바로 광고수익과 직결되며, 시청률 경쟁이 얼마나 피를 말리는 일인지 자세한 ‘해설’을 곁들였습니다.

게임이 끝났는 줄 알았는데 끝난 게 아니구나, 치열한 ‘장외 월드컵’이 실감났습니다. 월드컵은 돈과 미디어가 만들어낸 메가 이벤트입니다. 그 상업주의, 국가주의를 따지면 ‘월드컵에의 동조’는 흔쾌히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축구공에는 분명 다른 속성이 있습니다. 둥글다는 것입니다. 공 하나로 다 통하는 것입니다. 상업주의, 국가주의의 껍질을 벗기면 원초적 소통, 원초적 유희가 있습니다. 누구나 축구를 즐긴 기억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머니 배 속에서 발길질을 시작했습니다.

이런 재미를 한껏 즐기는 붉은악마가 부럽습니다. 20대가 주축인 자발적이고 수평적인 연대의 싱싱한 에너지. ‘대한민국’이란 구호를 외치지만, 진짜 열광하는 대상은 축구나 승리가 아니라 숨어 있는 열정을 폭발시키며 함께 손을 흔들고 있는 자신들이라고 합니다.

붉은악마 체험을 한 유현산 기자는 이를 ‘카니발의 자장(磁場)’이라고 했습니다. 싱싱한 자장은 이내 모든 경기장으로 흘러넘치며, 경기에 이기든 지든 잘 깨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 싱싱한 자장에 6월13일 지방선거도 끌어들였으면 합니다. 구태가 섞여 있는 지방선거는 세계적 스타들이 모인 월드컵처럼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축구처럼 문명과 원시성이 조화를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경기장과 광화문 전광판 앞에 젊음이 넘치고, 6월13일 투표장은 텅 빈 그라운드처럼 썰렁하다면 서글픈 일입니다. 삶을 바꾸는 것은 월드컵이 아니라 선거이기 때문입니다.

붉은악마가 ‘13일은 투표장으로’ 캠페인을 벌였으면 합니다. 젊은층은 투표율이 낮았습니다. 20대의 지방선거 투표율은 95년 52.7%, 98년 33.9%에 그쳤습니다. 이번에 월드컵까지 겹쳐 중앙선관위는 투표하고 축구 보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습니다.

후보 자질 따져보는 데 45분, 투표장 왔다갔다하는 데 45분. 도합 90분의 한 경기 시간만 내면 될 것입니다. 이번 선거에는 여야 정당뿐 아니라 시민단체, 이익단체의 다양한 후보들이 나섰고, 후보 평가작업도 활발합니다.

알제리대학팀의 골키퍼를 맡았던 알베르 카뮈는 도덕과 의무를 축구에서 간파했다고 합니다. 누군가는 뽑히고, 그가 우리 삶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라면, 옥석을 가릴 의무가 있습니다.

한겨레21 편집장 정영무 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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