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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축제와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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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5-2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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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을 즐기는 사람은 즐기고, 시위할 사람은 시위하고, 따지고 넘어갈 정치적 사안은 따져야 한다. 월드컵이 축제라면, 있는 문제들을 은폐하기보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재고할 기회로 만들 수는 없을까.

사진/ 설혜심 ㅣ 연세대 강사(서양사)
‘드디어’ 월드컵이 시작되었다. 언론은 앞다퉈 월드컵을 ‘지구촌 최대의 축제’라며 분위기를 띄우느라 열광한다. 본경기가 채 시작되기도 전에 축구경기는 저녁뉴스를 평정하고, 여야 정치권이 한목소리로 월드컵 기간에 정쟁을 중단하자고 설파한다. 도대체 월드컵이 무엇이기에?

월드컵을 둘러싼 이런 야단법석은 기본적으로 몇 가지 전제를 깔고 있다. 먼저 월드컵에 국운이 달려 있다는 논지로, 침체된 경기를 도약시킬 수 있는 절대적인 기회라는 것이다. 더구나 월드컵이 불러올 경제적 효과는 국민 전체에 골고루 돌아갈 것이라는 암시를 깔면서 말이다. 때문에 이런 와중에 이른바 월드컵을 ‘담보’로 삼아 연대파업을 하는 것은 집단 이기주의의 산물일 뿐더러 철저히 비애국적인 행위라는 결론이 나온다.

또 다른 형태의 ‘동원’


나아가 월드컵의 ‘열풍’을 만들어내는 이들은 월드컵이야말로 전 세계 사람들이 열광하는 행사이고, 모든 사람들이 축구를 좋아한다고 가정하는 듯하다. 때문에, 이런 귀한 경기 때문에 일상은 조금쯤은 파괴되어도 괜찮다는 논지가 파생된다. 월드컵 기간 중에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교장 재량에 따라 휴업할 수 있고, 정부기관과 기업체는 출·퇴근 시차제를 시행하며, 월드컵이 열기는 경기장 주변에서는 집회나 시위를 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정책들이 낳을 수 있는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에 대하여 짚어볼 필요가 있다.

먼저 이런 정책들은 ‘국가적 차원’이나 ‘민족적 차원’이라는 거대 공동체의 이름으로 개인의 이해관계를 소홀하게 취급하는 측면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놀기 좋아하는 탓에 휴업이나 늦은 출근을 반가워할 것이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진행되어야 할 수업의 진도를 방해받을 것이고, 어떤 가정들은 평일에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들을 어디에 맡겨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더구나 임금이나 노동조건을 둘러싸고 투쟁하는 사람들에게는 협상의 지연이 생존권을 위협할 수도 있다. 아주 소소한 일일 수도 있지만, 축구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당장 저녁의 휴식시간에 볼 수 있는 텔레비전의 프로그램들이 줄어드는 불편함을 겪게 된다. 월드컵은 ‘국가’를 동원해서 국가 구성원의 ‘일상’을 파기하는 희생을 강요하는 셈이다.

또 다른 문제는 월드컵이란 이름으로 행해지는 ‘동원’ 이데올로기가 또 하나의 선례로 자리잡지 않을까 하는 걱정스러움이다. 유달리 국빈방문이 많았던 군부독재 시절에 국가적 행사에의 ‘동원’은 모두 뛰어나와 ‘기쁜 척’, ‘활기 있는 척’ 하는 것이었다. 김포공항 주변 학교의 학생들은 자주 수업을 제치고 도로변에 늘어서서 종이로 만든 태극기와 낯선 국가의 국기를 열심히 흔들어야 했다. 88올림픽의 개막식과 폐막식을 위해 학생부터 군인에 이르기까지 범국가적으로 동원된 사람들은 날밤을 새면서 매스게임을 준비하는 고생을 했다.

이번 월드컵의 ‘동원’은 분명 군부독재 시절의 동원과는 성격이 다르다. 많은 자원봉사자들과 발달된 기술이 과거의 ‘동원’ 인력을 메운 반면, 모든 국민은 ‘평화로운 척’해야 하는 동원을 강요받는다. 한달이나 되는 기간에 정쟁을 그쳐야 한다는 것은 그 정쟁이 그만치 가치 없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지방선거가 보름 남짓 남았고, 대통령의 아들은 나날이 새롭게 드러나는 비리로 인해 구치소에 수감된 이 시점에 말이다.

왜 모두가 평화로운 척해야 하나

어찌 보면 이런 강요는 외국에서 오는 손님들에게 예우를 갖추고, 국가 차원의 이미지를 고양하여야 한다는 명분 아래서 국민에게 ‘은폐’와 ‘침묵’을 강요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나아가, 모든 국민이 ‘평화로운 척’해야 하는 이런 동원은 우리나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너무 부끄러워서 감추고, 부정하는 자기 비하로 보일 수도 있다. 한달 동안 평화로운 척한다고 해서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월드컵을 즐기는 사람은 즐기고, 시위할 사람은 시위 하고, 따지고 넘어갈 정치적 사안은 따져야 한다.

월드컵은 분명 축제이다. 인류학적 차원에서 볼 때 축제의 고전적 의미는 일상생활의 단절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여기서 일상생활의 단절이란 단순히 먹고 마시고 취하고 즐기는 단절이 아니다. 단절은 본래 있는 것들의 수순을 바꿔봄으로써 기존 생활의 가치를 재확인하는 것이다. 그리고 단절 과정에서 좀더 나은 삶을 위해 과감히 버려야 할 것을 추려내는 과정이기도 하다. 월드컵이 축제라면 문제들을 은폐하기보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재고할 기회로 만들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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