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은씨 <씨네21> 통해 김규항씨 글에 도발적 반론… 권혁범·이숙인씨도 가세
최근 영화전문지 <씨네21>의 인터넷 게시판을 달군 페미니즘 논쟁이 지상논쟁으로 옮겨가 불붙었다. 발단은 <씨네21> 4월23일치에 고정칼럼 필자인 김규항씨가 쓴 ‘그 페미니즘’. 김씨는 이 글에서 90년대 이후 한국의 이른바 주류 페미니즘이 “모든 사회적 억압의 출발점인 계급문제에 대해 무관심”하며 ‘그 페미니즘’을 구성하는 ‘중산층 인텔리 여성’들은 “성적 억압의 좀더 분명한 피해자인 하층계급 여성의 고통을 이해하지 않고 단지 그들에게 남은 유일한 사회적 억압인 성적 억압을 ‘남성 일반과의 문제’로 만드는 데 열중한다”고 비난했다. 게재 뒤 온라인상의 논쟁이 뜨거워지자 김씨는 같은 지면의 ‘그놈들과 그년들’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다시 확인하며 자신이 언급한 페미니즘 계간지 <이프>의 논조와 최근 최보은씨의 박근혜씨 지지선언이 ‘자유주의적 도발’이 아닌 ‘급진주의의 극단적 통속화’라고 못을 박았다.
“왜 여성운동에게만 매운가”
이에 대해 당사자인 <프리미어> 편집장 최보은씨와 <이프> 편집위원 이숙인씨가 반박의 포문을 열어 논쟁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김규항씨의 글에서 ‘도발 전문 페미니스트’라는 다소 무례한 공격을 받은 최보은씨는 5월27일 <씨네21>의 ‘마지막까지 쓰고 싶지 않았던 글’에서 ‘무늬만 중산층 여성’인 자신의 여성으로서의 고된 삶과 두 번째 결혼 실패담을 ‘커밍아웃’하면서 김씨가 제기한 ‘중산층 인텔리 부르주아 여성’론이 근거가 없다고 공박했다. 최씨는 ‘(주류 페미니즘은) 여성해방을 인간해방과 별개로 진행한다’는 김씨의 주장이 구체적인 ‘팩트’에 바탕을 두지 않았다고 비판하면서 최근 여성계에서 논란이 되는 박근혜 연대론에 대한 입장을 부연했다. 그는 “지자체 선거와 대선을 쌍으로 맞은 정치의 계절에 여성정치가 아예 의제가 되지 못하는 현실을 주시하다가,(…) ‘박근혜를 여성의 눈으로 보자’, ‘여성이 여성을 찍자’는 얘기를 한 거’라면서 자신의 주장이 페미니스트들에게 누가 된다면 “바로 그분들에게서 야단맞고 싶다”는 심경을 밝혔다.
<이프>의 이숙인씨도 월간 <말> 6월호에서 김규항씨의 글에 대한 반론을 기고했다. 그는 “페미니스트들이 남성이라는 대자적 존재를 1차 공격대상으로 삼는 것은 사실이며, 때론 계급의 이익을 공동체 이익보다 우선시하는 경우는 있지만 이는 어떤 사회운동에게도 있는 딜레마”라면서 김씨의 눈이 “왜 여성운동에서만 유독 맵고 독하게 작용하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이씨는 ‘주류 페미니스트’들의 계급적 한계에 일정 부분 동의하면서도 과연 “김규항씨가 일컫는 진보주의 남성들의 속성은 과연 어떠한지를 돌아보라”고 권한다. 그는 진보운동 현장에 있다가 권력의 우산 아래로 몰려든 일군의 남성과 이른바 진보적 문화판에서 가는 곳마다 패거리로 엮이는 연줄과 서열문화를 예로 들어 김씨의 글에 페미니즘 대신 진보주의자 남성을 대입했을 경우 드러나는 그의 글의 ‘억지’와 ‘궤변’을 반박했다. 또한 이씨는 “개인적으로 박근혜씨를 지지하지 않지만 그녀에 대한 여성계 내부의 논의가 무르익을 때는 되었다”고 박근혜 연대론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노력하는 인종차별주의자? <말>에는 남성의 목소리로 김규항씨의 ‘마초성’을 비판한 흥미로운 글도 실렸다. ‘남성깨기’라는 칼럼에서 권혁범씨는 김씨의 ‘노력하는 마초’라는 자기 규정은 ‘인종평등을 위해 노력하는 인종차별주의자’라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다. 권씨는 “여성주의에게 감당할 수 없는 절대적 보편성을 요구하는 것은 이미 그것에 대한 무지 혹은 근원적 거부를 전제하는 것”이라면서 “왜 그런 요구를 다른 운동과 이념에게는 못하고 여성주의에게 했을까?”라고 김씨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김규항씨가 자신의 세트 안으로 넘어온 이 공을 어떻게 쳐낼지 궁금하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그 페미니즘과 그들'. 페미니즘을 비판한 칼럼을 <씨네21>에 쓴 김규항(왼쪽)씨와 이를 반박한 최보은씨. (이정용 기자)
<이프>의 이숙인씨도 월간 <말> 6월호에서 김규항씨의 글에 대한 반론을 기고했다. 그는 “페미니스트들이 남성이라는 대자적 존재를 1차 공격대상으로 삼는 것은 사실이며, 때론 계급의 이익을 공동체 이익보다 우선시하는 경우는 있지만 이는 어떤 사회운동에게도 있는 딜레마”라면서 김씨의 눈이 “왜 여성운동에서만 유독 맵고 독하게 작용하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이씨는 ‘주류 페미니스트’들의 계급적 한계에 일정 부분 동의하면서도 과연 “김규항씨가 일컫는 진보주의 남성들의 속성은 과연 어떠한지를 돌아보라”고 권한다. 그는 진보운동 현장에 있다가 권력의 우산 아래로 몰려든 일군의 남성과 이른바 진보적 문화판에서 가는 곳마다 패거리로 엮이는 연줄과 서열문화를 예로 들어 김씨의 글에 페미니즘 대신 진보주의자 남성을 대입했을 경우 드러나는 그의 글의 ‘억지’와 ‘궤변’을 반박했다. 또한 이씨는 “개인적으로 박근혜씨를 지지하지 않지만 그녀에 대한 여성계 내부의 논의가 무르익을 때는 되었다”고 박근혜 연대론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노력하는 인종차별주의자? <말>에는 남성의 목소리로 김규항씨의 ‘마초성’을 비판한 흥미로운 글도 실렸다. ‘남성깨기’라는 칼럼에서 권혁범씨는 김씨의 ‘노력하는 마초’라는 자기 규정은 ‘인종평등을 위해 노력하는 인종차별주의자’라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다. 권씨는 “여성주의에게 감당할 수 없는 절대적 보편성을 요구하는 것은 이미 그것에 대한 무지 혹은 근원적 거부를 전제하는 것”이라면서 “왜 그런 요구를 다른 운동과 이념에게는 못하고 여성주의에게 했을까?”라고 김씨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김규항씨가 자신의 세트 안으로 넘어온 이 공을 어떻게 쳐낼지 궁금하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