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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나도 때론 행복의 주인공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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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5-2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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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마석 산자락에 고깃집 차리고 ‘재기’에 성공한 서갑숙씨

사진/ 주차장으로 쓰는 고기마을의 마당 저 너머에는 낚시터가 있다. 서씨가 앉아 있는 왼편에는 마당보다 훨씬 넓은 잔디밭이 펼쳐져 있다.
섹스 스캔들의 주인공이 여성인 경우, 재기에 성공한 예가 거의 없다. 오현경·백지영씨의 비디오 사건은 사생활을 존중해야 한다는 여론을 일으키는 데까지만 이르렀을 뿐, 사회의 시선은 연예활동의 재개까지 곱게 지켜보지 않았다. 성체험서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의 서갑숙(41)씨 역시 텔레비전에서 ‘증발’된 상태다. 하지만 그는 전혀 다른 차원의 재기에 성공했다.

두딸과 마음을 열어놓고 친구처럼…

지출 1900만원, 수입 1800만원. 서씨가 지난 4월14일 문을 연 ‘www.고기마을.com’의 한달 손익계산서다. 100만원을 손해봤을 텐데, 400만원 정도를 벌었다고 싱글벙글이다. 고정자산으로 꼽힐 시설투자에 들어간 돈을 경상지출에 넣어 계산했으니, 그걸 빼야 셈이 맞다는 거다. www.고기마을.com은 인터넷 사업이 아니다. 경기도 마석 부근의 경치 좋은 산자락에 자리잡은 고깃집이다. 2천만원 가까운 돈을 쓰고 간 이들은 외지인이 아니라 가족 단위로 이곳을 찾아 고기 구워 먹고, 넓디 넓은 잔디밭에서 놀다 가는 이웃들이다.


연예인들이 물 좋고 산 좋은 곳에 음식점을 내는 건 드문 일이 아니지만 서씨의 경우는 아무래도 각별하다. 3년 전, 서울에서 이곳으로 노모를 모시고 와 새 삶을 시작하면서 이 지역의 주민이 됐고, 주민 자격으로 생계수단을 일군 것이다. 도시와 전원의 이중생활이 일반적인 ‘여유 있는 자’의 풍경과는 거리가 멀다. 또 고깃집 부근에 있는 그의 집에는 두딸을 포함해 3대에 걸친 모녀가 단출하게 살고 있다. 화제의 여배우가 노모와 두딸을 데리고, 이웃집 숟가락이 몇개인지 뻔히 알 정도로 공동체 성격이 짙은 지역에서 지역민으로 산다는 게 그리 간단했을까? 전원으로의 이주는 많은 도시인의 꿈이지만, 지역민과의 완전한 동화에 실패해 애먹는 사례가 흔하다. 게다가 중학교 2년, 초등학교 5학년의 두딸이 학교를 다니면서 혹시 ‘섹스 스캔들’의 어머니 때문에 곤혹스워하지는 않을까? 이혼한 남편이 키우던 아이들이 그와 살기 시작한 지가 불과 1년반이다. 서씨는 이 모든 예상문제를 가뿐하게 뛰어넘었다.

“엄마가 쓴 책 때문에 곤란하지는 않니?”

“아니, 우리들 사이에선 우리들 이야기가 있는 거지, 어머니가 화제 대상은 아냐. 그리고 엄마 책 가지고 뭐라고 한다면 친구가 아니지.”

서씨는 큰딸 의정과 나눈 대화의 기억을 배우답게 대사하듯 재현했다. 얼마 전 어버이날에는 “앞으로도 계속 친구처럼 대해줄 거지? 고기마을에서 아르바이트하면 계속 아르바이트비 줄 거지?”라던 딸의 물음이 살갑다.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마음을 열어놓는 서씨 특유의 태도는 자녀교육에서 그대로 이어진다. 딸은 그에게 정말 친구다.

“의정이가 다니는 중학교는 남녀공학이거든요. 그래서 남자친구 사귀는 노하우를 일러주기도 했고, 실제로 남자친구를 사귀기도 했어요. 그런데 이 아이가 얼마 전에 솔로 선언을 했어요. 한명한테 목숨 걸지 말고 두루 친한 게 좋다고 했더니 정말 그게 좋겠다며.”

또 언젠가는 의정이가 자랑스레 말하더란다. “‘어떤 아이들이 담배 피우러 가는데 같이 가지 않을래 하고 유혹하는데 단호하게 거절했어’ 하더라고요. 왜 그랬어 했더니 ‘엄마가 담배 피울 거면 숨어서 그러지 말고, 당당하게 함께 피우자고 했잖아. 엄마 속이기 싫었어’ 하더라고요.”

동네 아주머니들과 ‘목욕탕 친구’로

사진/ 서씨는 음식을 직접 만드는데, 음식점 이층에 사는 집주인 아주머니(오른쪽)가 심심찮게 일을 도와준다.
딸이 원해서기도 하지만 가끔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키는 건 “엄마가 어떻게 지내는지 알아야 엄마를 이해하고 친구처럼 지낼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물론 어머니로서의 희망사항을 불어넣기도 한다.

“엄마는 너희들이 여행가가 되면 좋겠어.”

“직업으로? 그거 돈 못 벌지 않아?”

“뭐든지 전문가가 되면 돈이 따르겠지. 세상은 정말 넓은데 다른 곳을 둘러보고 살아봐야 내가 있는 곳을 제대로 볼 수 있거든. 여행이라는 거 참 매혹적이야. 책도 쓸 수 있고.”

두딸을 통한 사회생활도 열심이다. 등교시간의 횡단보도를 지키는 녹색어머니회 활동도 빠짐없이 하고, 어머니들끼리 모여 책 읽고 토론하는 독서모임에도 참여한다. 개업 일주일 뒤 의정이 반 학부모들이 단체로 고기마을을 찾은 날, 의정도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했다.

서씨는 이곳에서 거의 날마다 목욕을 한다. 이웃과 가까워진 것도 동네 아주머니들과 ‘목욕탕 친구’가 되면서였다. “이곳 물이 아주 좋아요. 온천보다 좋은 것 같아요. 동네 이름도 ‘수동’이잖아요(정확한 주소지가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 운수리다). 목욕하면서 누구 집에 무슨 일이 있는지 두런두런 이야기하면서 이웃과 친구가 됐고, 서로 돌보는 사이가 됐어요. 처음에 순진한 분들은 저를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어요. 혹시 말 잘못해서 상처줄까봐.”

그가 이곳에 뿌리를 내리기까지는 물 흐르듯 아주 자연스러워 지금까지 어려움은 없었느냐고 묻는 질문이 생뚱맞게 느껴질 정도다. 서울에서 이사를 온 게 99년 1월이다.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를 낸 게 그해 10월이니, 이사가 어떤 도피가 아니었느냐고 생각하면 완전한 오산이다. 어머니가 여러 병을 치르느라 몸이 쇠약해져 공기 좋은 곳을 찾아야겠다고 맘 먹고 근교를 뒤지고 다녔다.

“양수리도 많이 가봤지만 물이 너무 많으면 우울하다고 해서 망설이다 이곳 운수리를 찾아냈어요. 구름 운, 물 수라는 이름이 맘에 들었는데 실제로 아침, 저녁 안개가 많이 끼면서도 환해서 아주 좋아요.”

집 옆의 밭에 상추·깻잎 등 10가지 이상 채소를 키우면서 어머니의 몸은 거뜬해졌고, 그 일부는 고기마을의 손님 입으로 들어간다. 어머니가 건강해진 덕에 늦은 밤 함께 술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기회가 많아졌다. 가끔 딸도 그 옆에서 술을 거든다. 그러다 낚시를 좋아하는 남동생 광수씨가 함께 살면서 생활 방편 삼아 낚시터를 운영해본다고 나섰다. 그 터를 임대하면서 바로 아래 옛 ‘가든’까지 빌리게 됐다. 책 덕분에 떼돈을 벌었다고 보는 이들도 있지만 마침 생활비가 필요할 때였다. 보증금 5천만원, 월 임대료 130만원에 위쪽의 낚시터, 아래쪽의 고기마을을 열었다. 직접 가게를 수리하고, 인테리어도 했다. 넓은 잔디밭과 물가를 산책할 수 있다는 게 이곳의 특징이다.

“언론은 자기 편한 대로 써요”

얼마 전 프랑스는 물론 국내에서 화제가 된 미술평론가 카트린 밀레의 성체험서 <카트린 M의 성생활>을 읽어봤느냐며, 서평이 실린 신문기사를 내보였다. 기사를 죽 보더니 “읽어보지는 못했는데…, 외국 사람이 쓴 책에 대해서는 이렇게 멋있게 표현해주면서…” 하고 서운한 표정을 짓는다.

“언론은 자기 편한 대로 써요. 지난해 가을 SBS 일일극 <이 부부가 사는 법>에 출연했다가 두달 만에 그만둔 적이 있거든요. 애초 배역의 구실이 잘 살아나지 않아 저 스스로 그만둔 건데, 신문에선 시청자들 반발로 중도하차했다고 썼어요.”

서씨는 최근 스웨덴의 한 다큐멘터리 제작팀이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다큐를 찍어 세계의 여성영화제 등에 출품하고 싶다는 제안을 받고 이모저모로 생각 중이다. “여성운동하는 분들이 왜 자꾸 뒤로 물러서느냐, 뭔가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한 적이 있어요. 공적인 활동과 개인의 행복 중에 전 일단 후자를 택했어요. 특히 가족의 안정에. 요즘에는 인권활동 등 뭔가 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손님들과 정겹게 인사를 나누며 고기를 썰고, 갖가지 반찬을 만들고 나르면서 밝은 표정을 짓는 것도 그렇고 개인의 행복, 가족의 안정이란 목표를 작은 것에서부터 차근차근 이뤄가는 듯 보였다. 개업 뒤 아직 하루도 쉬지 못했을 정도로 바쁘니 당장 또 다른 일을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머지않아 또 뭔가를 시작할 것 같은 느낌이 그래서 들었다.

그가 쓴 책이 그렇듯 그의 삶에서 사랑을 빼놓을 수 없다. “정을 딱히 두는 것보다 많은 친구들과 지내는 게 요즘에는 더 좋아요. 남자든 여자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기쁨을 즐기고 있어요. 그러다가 어느 날 누군가를 보고 눈이 번쩍 뜨이면 또 행복할 테고. 물론 제도로서의 결혼에 다시 뛰어들 생각은 없어요.”

이성욱 기자 lewoo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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