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주의는 헌정질서의 기본인 공사의 구분을 파괴한다. 어쩌면 현 정권의 폐쇄성은 지역분열 구도하에서 다수파의 배타성이 불러온 소수파의 한계인지도 모른다.
식상할지 모르지만, 다시 대통령 아들의 얘기로 시작해보자. 어째서 그 많은 말들 가운데, ‘공사의 구분’이란 구절이 안 보이는가 하는 아쉬움 때문이다. 국가기관에 의한 사건의 은폐가 사실이라면 문제는 더 심각해지겠지만, 하여튼 그 기본 성격은 공사의 구분에 실패하여 의롭지 못한 이익을 취한 데 있는 것이 아닌가?
공사의 구분이 어려운 까닭은 무릇 성취 욕구가 있는 인간의 마음 속에는 모든 일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려는 본능이 발동하기 때문일 것이다. 주위에서 너무나 많이 보아오지 않았는가? 사적 이익을 어떻게든 공적 원칙으로 합리화하고, 사적 이해관계를 위해서 공적 원칙을 무시하거나 외면하는 모습들을.
김대중 정권에 대한 ‘사적 감정’
대통령과 그 가족이라면 사적인 자유와 허용의 영역은 더욱 축소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며, 공적 원칙을 엄수하고, 견리사의(見利思義)의 긴장을 풀지 말아야 마땅했을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렇지 못하였다. 취임 초인 것 같다. 김 대통령은 친인척 문제에 대한 질문을 받고는, “그 문제는 나에게 맡겨달라. 정말로 문제없이 해나갈 것”이라고 답하였는데, 그러한 발상이 오늘의 지경에 이른 먼 이유 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어째서 공적 사안을 사적으로 취급하려 들었을까? 만약 당시에 바로 지금처럼, “비리의혹에 대하여는 누구든 예외 없이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될 것이다”라고 하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자기에 대한 신뢰나 자긍심은 때때로 공적 원칙의 신호등을 잊게 하는 것 같다. 따지고 보면, 그동안 계속 제기되어온 비선라인에 의한 인사 왜곡의 문제도 공사의 구분에 실패한 탓이라고 할 수 있다. 동일한 피해의식을 공유하고, 아울러 도덕적 우월성을 자부하는 폐쇄적인 집단은 자신들의 내향적 습성이 공적 질서를 어떻게 해치게 될지 미처 생각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결국 국민의 정부도 지역주의의 난관에서 좌절하였으며, 민주공화국이라는 공적 공간의 이면에는 여전히 사적 인맥과 사익의 추구가 창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김대중 정부가 역대 최악의 부패한 정권이며 이 정부만 사라지면 만사가 형통할 것이라고 하는 주장들은 또 어떠한가? 지난호 논단의 최보은씨 말마따나 왜 사람들은 김대중 일가에 대하여 지나치게 가혹한가? 어째서 한반도의 평화에 절실한 대북지원이 대북 퍼주기라는 오명으로 폄하되어야만 하는가? 지역감정으로 덧씌워진 대중들의 피해의식 속에 국가의 공익은 길 잃은 미아가 되어도 좋은가? 김대중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감에서, 나는 다시 사적 감정이 공적 평가를 찬탈하는 공사의 구분의 실패를 본다. 지역주의는 헌정질서의 기본인 공사의 구분을 파괴한다. 우리 사회가 지역주의에 장악되어 있는 한, 공사의 구분이라는 미덕이 정치질서에 뿌리내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어쩌면 현 정권의 폐쇄성은 지역분열 구도하에서 다수파의 배타성이 불러온 소수파의 한계인지도 모른다. 다 알다시피 편파적인 신문권력과 그에 편승한 반대 정파의 집요한 타격은 정말 가공할 만한 것이 아니었는가? 지난해 10월 재보궐선거에서의 승리를 자축하는 자리에서 당시 이회창 총재가 기자들에게 “우리는 한식구”라는 공사의 구분을 몰각한 어처구니없는 ‘덕담’을 자연스럽게 한 것은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착잡한 5·18 정치공간이 지역대립에 저당잡힌 상황에서는 공사의 구분보다 당파성의 구분이 더 시급한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당파에 대한 헌신만으로 어떻게 민주헌정질서를 기약할 수 있겠는가? 더욱이 사적 탐욕을 위한 권력의 남용과 일탈은 입헌질서를 위협하는 치명적 해악이다. 권력형 비리에 대한 단호한 처벌은 당연하다. 다만 공사의 구분에 실패한 권력형 비리는 처벌되고 있으나, 공사의 구분을 마비시키는 지역감정은 여전히 기세등등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사적 관계에 의한 공적 질서의 침식, 이는 모든 헌정질서의 주적이며 그것을 방지하는 것이 법치주의의 사명이기도 하다. 공사의 구분이 무너지면, 어떤 정치체제도 결국 우월한 사적 세력에 의한 전제주의로 귀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역시 공사의 구분을 전제로 하는 것이며, 만약 그 전제가 사라지면, 그것은 인민의 자율적 자기 지배인 데모크라시(democracy)가 아니라 대중들의 무절제한 감정과 배타성의 지배인 ‘데모크레이지’(demoCrazy)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4·19는 전 국민의 것이 되었는데, 어째서 5·18은 아직 호남의 것에 머물러야 하는가? 4·19 정신은 이미 공적 자산으로 승화되었는데, 어째서 5·18의 혼백은 아직 광주 근처만 맴돌고 있는가? 오늘도 망월동 묘역에는 비가 내린다고 한다. 착잡하다.

사진/ 정태욱 ㅣ 영남대 교수(법학)
대통령과 그 가족이라면 사적인 자유와 허용의 영역은 더욱 축소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며, 공적 원칙을 엄수하고, 견리사의(見利思義)의 긴장을 풀지 말아야 마땅했을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렇지 못하였다. 취임 초인 것 같다. 김 대통령은 친인척 문제에 대한 질문을 받고는, “그 문제는 나에게 맡겨달라. 정말로 문제없이 해나갈 것”이라고 답하였는데, 그러한 발상이 오늘의 지경에 이른 먼 이유 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어째서 공적 사안을 사적으로 취급하려 들었을까? 만약 당시에 바로 지금처럼, “비리의혹에 대하여는 누구든 예외 없이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될 것이다”라고 하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자기에 대한 신뢰나 자긍심은 때때로 공적 원칙의 신호등을 잊게 하는 것 같다. 따지고 보면, 그동안 계속 제기되어온 비선라인에 의한 인사 왜곡의 문제도 공사의 구분에 실패한 탓이라고 할 수 있다. 동일한 피해의식을 공유하고, 아울러 도덕적 우월성을 자부하는 폐쇄적인 집단은 자신들의 내향적 습성이 공적 질서를 어떻게 해치게 될지 미처 생각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결국 국민의 정부도 지역주의의 난관에서 좌절하였으며, 민주공화국이라는 공적 공간의 이면에는 여전히 사적 인맥과 사익의 추구가 창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김대중 정부가 역대 최악의 부패한 정권이며 이 정부만 사라지면 만사가 형통할 것이라고 하는 주장들은 또 어떠한가? 지난호 논단의 최보은씨 말마따나 왜 사람들은 김대중 일가에 대하여 지나치게 가혹한가? 어째서 한반도의 평화에 절실한 대북지원이 대북 퍼주기라는 오명으로 폄하되어야만 하는가? 지역감정으로 덧씌워진 대중들의 피해의식 속에 국가의 공익은 길 잃은 미아가 되어도 좋은가? 김대중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감에서, 나는 다시 사적 감정이 공적 평가를 찬탈하는 공사의 구분의 실패를 본다. 지역주의는 헌정질서의 기본인 공사의 구분을 파괴한다. 우리 사회가 지역주의에 장악되어 있는 한, 공사의 구분이라는 미덕이 정치질서에 뿌리내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어쩌면 현 정권의 폐쇄성은 지역분열 구도하에서 다수파의 배타성이 불러온 소수파의 한계인지도 모른다. 다 알다시피 편파적인 신문권력과 그에 편승한 반대 정파의 집요한 타격은 정말 가공할 만한 것이 아니었는가? 지난해 10월 재보궐선거에서의 승리를 자축하는 자리에서 당시 이회창 총재가 기자들에게 “우리는 한식구”라는 공사의 구분을 몰각한 어처구니없는 ‘덕담’을 자연스럽게 한 것은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착잡한 5·18 정치공간이 지역대립에 저당잡힌 상황에서는 공사의 구분보다 당파성의 구분이 더 시급한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당파에 대한 헌신만으로 어떻게 민주헌정질서를 기약할 수 있겠는가? 더욱이 사적 탐욕을 위한 권력의 남용과 일탈은 입헌질서를 위협하는 치명적 해악이다. 권력형 비리에 대한 단호한 처벌은 당연하다. 다만 공사의 구분에 실패한 권력형 비리는 처벌되고 있으나, 공사의 구분을 마비시키는 지역감정은 여전히 기세등등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사적 관계에 의한 공적 질서의 침식, 이는 모든 헌정질서의 주적이며 그것을 방지하는 것이 법치주의의 사명이기도 하다. 공사의 구분이 무너지면, 어떤 정치체제도 결국 우월한 사적 세력에 의한 전제주의로 귀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역시 공사의 구분을 전제로 하는 것이며, 만약 그 전제가 사라지면, 그것은 인민의 자율적 자기 지배인 데모크라시(democracy)가 아니라 대중들의 무절제한 감정과 배타성의 지배인 ‘데모크레이지’(demoCrazy)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4·19는 전 국민의 것이 되었는데, 어째서 5·18은 아직 호남의 것에 머물러야 하는가? 4·19 정신은 이미 공적 자산으로 승화되었는데, 어째서 5·18의 혼백은 아직 광주 근처만 맴돌고 있는가? 오늘도 망월동 묘역에는 비가 내린다고 한다. 착잡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