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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소박한 시심에 감동이 싹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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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5-2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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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방송은 베르디의 개선 행진곡/베토벤의 환희의 송가를 폭포처럼 쏟아내고/…/유리탁자에 앉아 조간신문을 펼쳐 들고/그렇게 평온한 아침 한 때/나의 17층 그 창밖으로는 땅보다는 무엇보다도/하늘이 많이 보여 좋다.”(‘일과준비’ 중에서)

사춘기 시절 일기장 귀퉁이에 낙서하듯 시 한편 써보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불혹의 나이에 20여년 동안 가슴 속에 쌓아온 시편들을 엮어 첫 시집을 내놓은 직장인이 있어 화제다. 지난해 11월 월간 <문학세계>를 통해 등단한 한광섭(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42)씨가 최근 내놓은 <그 시간들의 풍경>(도서출판 천우 펴냄)에는 생활인의 감성이 오롯이 녹아 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조금씩 써온 습작들을 엮었습니다. 제게는 지난 20여년 세월을 묶은 일종의 ‘종합선물’인 셈이죠.” 한씨는 “직장도 내 삶의 일부이고, 인간적인 상념도 내 삶의 일부”라며 “무슨 거룩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방법의 하나”로 시를 쓴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평범한 직장인의 고민과 상념이 시집 곳곳에서 감지된다.

이를테면 “나는/뭐/쉬운 빵만 먹고 산 줄 아니/오늘도/감원풍이/도시를 싸고 돈다…”(‘What can I do’ 중에서)며 불안해하기도 하지만, “생계가 사랑으로 뭉친/작은 광주리/지쳐 잠든/어머니 같은/…/집이 기다리는 밤/가족이 기다리는 집/사랑이 소담한 광주리”(‘늦은 밤 전철에서’ 중에서)에서 위로받기도 한다.

한씨가 시 쓰기에 몰두하는 것은 주로 1시간 남짓 걸리는 출퇴근 시간이다. 이때 떠오른 시상을 꼼꼼히 적어뒀다가 주말이면 원고지에 옮긴다. “느낌이 올 때마다 조금씩” 쓰기 위해 베갯머리에도 늘 메모지를 놓아둔다.

“시는 일상의 감동이나 느낌을 나눌 수 있는 틀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거울로 활용할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요.” ‘은퇴한 문학청년들’에게 던지는 한씨의 충고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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