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분규와 수난 속에서도 학교마다 후보 난립, 명예와 돈의 강렬한 유혹
지난 5월17일 서울 이문동 한국외국어대(총장 조규철) 본관 총장실. ‘총장실 점거 4일째, 총학생회’라고 적힌 큼지막한 대자보가 앞을 가로막았다. 주변 다른 방들도 각목을 잇대어 못질을 한 채 볼썽사나운 모습으로 굳게 잠겨 있기는 마찬가지다. 직원들은 “별 거 아니다”는 투다. 그도 그럴 것이 등록금 인상에 항의하는 학생들의 총장실 점거는 연례행사가 된 지 오래다.
총장, 할 거 못돼! 정말?
물론 총장은 몸을 급히 피한 뒤였다. 본관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교수회관의 작은 방 하나가 ‘망명 총장실’이다. 널찍한 본관 총장실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다. 그나마 이 방마저 학생들한테 들키면 또 딴 데로 옮겨야 할 판이다. 한국 사회 최고의 지성이라는 대학 총장의 신세가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같은 시각, 교내 ㅇ교수 연구실. “000 교수는 저쪽으로 간 것 같고, 000 교수는 아직 연락이 안 되고….” ㅇ교수가 누군가와 급히 전화 통화하는 소리가 연구실 바깥으로 간간이 새어나왔다. 이날 저녁에 있을 차기 총장 선출을 위한 2차 결선투표를 앞두고 막판 점검이 한창이었다. 책상에는 학내 교수 명단이 적힌 쪽지가 놓여 있었다. 그는 총장 후보로 나선 교수 가운데 한명이다. “오늘은 잘 알다시피 내가 너무 바쁜 날이라 기자를 만날 시간이 없어요.” 몸을 피해 교내를 떠도는 현직 총장과 차기 총장을 노리며 선거운동에 바쁜 교수들의 모습이 극명하게 엇갈렸다. 한국외국어대에서 이번에 차기 총장 후보로 나선 교수는 무려 11명. 이쯤 되면 ‘후보 난립’이다. 대학 총장이란 자리가 도대체 뭐기에 많은 교수들이 연구실을 떠나 총장 선거에 뛰어드는 것일까? “대학 총장 이거 맨날 학생들한테 시달리고. 할 거 못 돼.” 총장 후보로 나선 한 교수는 겉으로는 그렇게 말했지만, 물론 진심은 아니다. “후보로 나온 교수들은 좋게 보면 위기에 놓인 대학을 구하겠다는 기사들”이라고 표현한 한 교수의 말마따나 학생들한테 시달리더라도 대학을 수렁에서 건져야겠다는 게 그의 진심일까. 어쩌면 “11명이나 후보로 나와 사실 창피하다”는 ㄱ아무개 교수의 말이 차라리 솔직하게 들렸다. ‘총장 수난’은 외국어대만의 일이 아니다. 최근 이기준 서울대 총장이 판공비 과다지출 파문으로 중도하차하고, 고려대 김정배 총장이 학교 쪽의 ‘세금대납’으로 도덕성 시비에 휘말렸다. 연세대에서는 교수 10여명이 ‘독재총장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치며 집단으로 총장실을 점거해 농성을 벌였다. 학생들이 쳐들어온다는 첩보에 늘 긴장해야 하고, 그래서 언제나 몸을 피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는 게 대학 총장이다. 총장 선거 출마도 중독증세?
그런데도 요즘 각 대학에서 총장 선거를 치르면 교수 10여명이 후보로 나서기는 예사다. 서울대에서는 차기 총장 후보로 10여명이 나설 것이라는 입소문이 벌써부터 널리 퍼졌다. 서울대 총장 직선제 도입 뒤 가장 많은 후보들이 출마할 것으로 예측한다. 지난 2000년 충남대 총장 선거에서는 15명의 교수들이 출사표를 던지기도 했다. 총장 선거를 2년여 앞둔 한 지방국립대의 교수협의회장은 “총장 직선제 시대가 곧 막을 내릴 거라는 소문 속에서 그 전에 총장 선거에 나서겠다고 공언하는 교수들이 상당수에 이른다”고 말했다.
한번 총장 후보로 출마한 교수는 다시 도전하기 일쑤다. 몇해 전에는 지방국립대의 ㅅ아무개 교수가 두번이나 총장 선거에 도전했다가 연거푸 떨어지자 쇼크를 받아 심장병으로 죽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미 한차례 총장을 지낸 바 있는 한 교수는 총장 이후의 평교수 시절을 이렇게 돌이켰다. “총장직을 떠난 뒤 오랜만에 학문적 열정을 회복할 수 있었다. 교수들은 교육과 연구에 전념해야 한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는 이번에 다시 후보로 나섰다. 벌써 3번재 총장 선거 출마다.
물론 ‘교수는 야망도 욕심도 없는 책상물림의 학자여야 한다’고 강요할 순 없다. 연구실에 갇혀 학문연구에만 평생을 바쳐야 하는 것도 아니다. 총장 후보로 나선 한 교수는 “총장이 되면 관념적인 연구에서 벗어나 현실 속에서 자신의 학문적 이상을 실현시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대학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대학 행정에 관심을 보이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총장 선거를 바라보는 한 교수는 “정말 열심히 공부하는 교수치고 총장 선거에 기웃거리는 사람은 한명도 없다”며 “열심히 연구하는 교수라면 선거에 나서서 사람들 만나러 뛰어다닐 시간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대학 교수는 비록 총장이 아닌 평교수라 하더라도 사회적 지위와 명예를 이미 누리고 있는 게 사실이다. 후보 난립을 두고 한 교수가 “창피하다”고 표현한 건 다른 조직과는 구별되는 대학의 이런 특성 때문이다. 그는 “도대체 총장 해서 무슨 영광을 보겠다는 것인지”라며 혀를 찼다. ㄱ대학 총장 비서실장은 “평생 평교수로 남아 제자들을 가르치는 교육자로 남겠다는 교수가 한국에서 몇이나 되겠는가. 아무리 교수라도 공직에 자기 이름이 오르내릴 때 이를 마다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며 세태를 꼬집었다.
너나 할 것 없이 교수들이 총장 선거에 나서는 현상은 교수 사회의 ‘학내 정치’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당선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데도 명망을 좇아 총장 후보로 나서는 교수도 적지 않다. 헛된 이름을 좇는 것이거나 아니면 일단 후보로 나선 뒤 나중에 보직이라도 하나 받으려는 심산이다. 대학에서는 보직 하나 맡지 못하면 무능한 교수로 찍히기 십상이다. 그리고 일단 보직을 맡으면 이를 교두보 삼아 다음 번 총장 선거를 노릴 수도 있다. 한국외대의 한 교수는 “총장 후보로 나선 교수 가운데 솔직히 함량 미달인 사람이 많다”며 “몇몇은 총장 선거에 나섰다는 사실을 명함에 한줄 넣으려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나중에 교수직을 떠나더라도 이를 ‘간판’으로 활용하려는 의도다.
사회적 예우와 돈
%%990004 대학 총장은 바깥에서 돈도 끌어와야 하고 외부 행사도 참석해야 하고 교수를 비롯한 대학 구성원들의 의견도 수렴, 조정해야 하는 등 격무에 시달리는 자리다. 그런데도 ‘연구하는 학자’인 교수들은 총장을 해보고 싶어한다. 그런 욕망 뒤에 총장이란 자리가 주는 어떤 매력이 있는 것일까.
물론 대학 총장은 권위와 명예의 상징일 뿐 아니라 권한도 막강하다. 학교 예산의 편성과 집행에 대한 최종 결정권, 주요 보직교수에 대한 인사권도 행사한다. 게다가 총장이 되면 특수 대학원에 오는 정치인도 만나고, 학교 발전기금을 걷으러 돌아다니는 과정에서 수많은 기업인과 정치인 등을 자주 만나게 된다. 대학 총장직을 발판으로 정치권에 진출하거나 장관직을 노릴 수도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대학 총장의 위상을 딱히 규정하고 있는 건 없지만 어느 대학 총장이나 스스로 은근히 장관급 예우를 받는 자리로 여긴다”고 말했다. 한 대학의 총장 비서실 쪽도 “총장이 참석하는 외부 행사가 있을 때 총장에 대한 의전절차를 신경쓰지 않을 수 없지만 얘기하지 않아도 주최 쪽에서 알아서 예우해준다”며 “과잉 예우하려고 해 오히려 우리가 말리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총장이 되면 사회적 예우 못지않게 돈도 따른다. 한 교수는 “평교수보다 많은 총장 월급과 그보다 더 많은 판공비도 명예 못지않은 유혹”이라고 귀띔했다. 국가공무원 보수규정은 국립대 총장의 경우 특1호봉을 적용한다(수당을 빼고 순수 봉급만 한달 375만원). 사립대는 천차만별이다. 서울소재 사립 ㄱ대학의 경우 20년차 평교수 월급은 580여만원인데 총장은 보직수당으로 여기에다 한달에 150만원씩 더 받는다.
평교수 시절보다 총장은 연금에서도 특혜를 누린다. 사학연금관리공단에 따르면 평균잡아 대학 총장은 특1호봉을 적용받아 매달 240여만원의 연금을 탄다. 반면 15년차 평교수의 한달 연금은 90만원에 지나지 않는다.
이기준 서울대 총장이 한해 판공비를 4억3천만원이나 쓴 것으로 드러났지만, 각 대학의 총장 공식 판공비는 1억원대 안팎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총장 판공비는 워낙 고무줄이라 공식 판공비는 큰 의미가 없다. 한 대학 직원노조는 “총장이 쓰는 돈이라면 학교 재무처가 없는 돈이라도 만들어서 주는 게 관행”이라고 말했다.
평교수에서 총장으로 신분이 바뀌면 교내에 따로 마련된 총장 공관에서 생활하는 것도 총장이 받는 대접 중 하나다. 그런데 총장 공관이 없는 대학도 많다. 이런 경우는 학교 당국이 다른 방식으로 배려해준다. 그래서 터진 게 고려대 김정배 총장에 대한 학교 쪽의 ‘세금대납’ 건이다. 김 총장의 소득세와 주민세를 학교 쪽이 대신 내줘온 것이다. 고려대는 “총장 공관이 없는 점을 보전해주는 차원에서 지난 30년간 총장의 세금을 학교가 대신 내주는 게 관행이었다”고 해명했다. 물의를 빚자 김 총장은 학교 쪽이 내준 세금 6700만원을 반환했다. 세금대납을 알면서도 김 총장이 그동안 그대로 받아들여온 건 대학 총장이 누리는 혜택과 총장이 되려는 교수들의 욕망의 한 자락을 보여주는게 아닐까.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일러스트레이션/장광석
같은 시각, 교내 ㅇ교수 연구실. “000 교수는 저쪽으로 간 것 같고, 000 교수는 아직 연락이 안 되고….” ㅇ교수가 누군가와 급히 전화 통화하는 소리가 연구실 바깥으로 간간이 새어나왔다. 이날 저녁에 있을 차기 총장 선출을 위한 2차 결선투표를 앞두고 막판 점검이 한창이었다. 책상에는 학내 교수 명단이 적힌 쪽지가 놓여 있었다. 그는 총장 후보로 나선 교수 가운데 한명이다. “오늘은 잘 알다시피 내가 너무 바쁜 날이라 기자를 만날 시간이 없어요.” 몸을 피해 교내를 떠도는 현직 총장과 차기 총장을 노리며 선거운동에 바쁜 교수들의 모습이 극명하게 엇갈렸다. 한국외국어대에서 이번에 차기 총장 후보로 나선 교수는 무려 11명. 이쯤 되면 ‘후보 난립’이다. 대학 총장이란 자리가 도대체 뭐기에 많은 교수들이 연구실을 떠나 총장 선거에 뛰어드는 것일까? “대학 총장 이거 맨날 학생들한테 시달리고. 할 거 못 돼.” 총장 후보로 나선 한 교수는 겉으로는 그렇게 말했지만, 물론 진심은 아니다. “후보로 나온 교수들은 좋게 보면 위기에 놓인 대학을 구하겠다는 기사들”이라고 표현한 한 교수의 말마따나 학생들한테 시달리더라도 대학을 수렁에서 건져야겠다는 게 그의 진심일까. 어쩌면 “11명이나 후보로 나와 사실 창피하다”는 ㄱ아무개 교수의 말이 차라리 솔직하게 들렸다. ‘총장 수난’은 외국어대만의 일이 아니다. 최근 이기준 서울대 총장이 판공비 과다지출 파문으로 중도하차하고, 고려대 김정배 총장이 학교 쪽의 ‘세금대납’으로 도덕성 시비에 휘말렸다. 연세대에서는 교수 10여명이 ‘독재총장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치며 집단으로 총장실을 점거해 농성을 벌였다. 학생들이 쳐들어온다는 첩보에 늘 긴장해야 하고, 그래서 언제나 몸을 피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는 게 대학 총장이다. 총장 선거 출마도 중독증세?

사진/ 5월14일 외국어대에서 열린 총장후보 합동토론회.

사진/ 툭하면 총학생회에 총장실을 점거당하지만 11명이나 출사표를 던졌다. 오른쪽은 외대 총학생회가 설치한 총장후보 정책비교판.

사진/ 지난해 12월 전국대학 총장회의에 참석한 각 대학 총장들. 총장이 되면 사회적 예우 못지않게 돈도 따른다. (한겨레 곽윤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