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성 높인다는 취지는 간 데 없고 임금삭감과 인력감축의 구실로 작용
정리해고 못지않게, 외환위기 이후 직장인들의 입에 일상적으로 오르내리는 말이 ‘억대 연봉’이다. 연봉은 이제 더 이상 스포츠 선수한테나 따라붙는 말이 아니다. 생계임금이란 의미가 강한 월급 대신 몸값을 뜻하는 연봉은 새로운 임금체계로 자리잡은 지 이미 오래다. “연봉제만이 살 길”이라는 구호는 정리해고를 끝낸 회사마다 어김없이 터져나온다. 신인사제도라는 이름으로 연봉제 도입을 꾀하는 현대정유 쪽의 말은 기업에 불어닥친 연봉제 바람을 그대로 보여준다. “가장 보수적인 정유업계도 살아남기 위해 연봉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전면 시행할 것인지 간부급부터 할 것인지를 놓고 저울질인데 생존을 위한 변혁단계에 있는 만큼 노조도 협조를 안 할 수 없을 것이다.”
호봉제로 되돌아가는 사업장도 생겨
우리나라에서 연봉제는 어디까지 왔을까? 지난 94년 두산그룹이 과장급 이상을 대상으로 연봉제를 처음 도입한 이래 미원, 효성, SK에 이어 99년부터 삼성그룹과 LG그룹이 전 계열사를 대상으로 연봉제를 도입했다. 노동부에 따르면 올 1월 현재 100인 이상 사업장 5400여개 중 32%(1612곳)가 연봉제를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연봉제 바람 속에서 유행을 좇아 기존의 호봉제를 연봉제로 우선 바꾸고 보는 기업들도 나타나고 있다. 제주도에서는 최근 한 병원이 연봉제를 도입하자 모든 병원이 삽시간에 연봉제로 바꾸기도 했다. 직원의 능력과 성과를 평가할 기준조차 제대로 갖추지 않은 채 연봉제 신화에 매달리는 식이다. 여기서 조직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연봉제의 취지는 뒷전으로 밀리고, 인사 기법의 하나 정도로 도입되고 있다. 별 저항 없이 자연스럽게 임금삭감과 인력감축을 꾀하려는 도구로 연봉제를 활용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연봉제에서 과거의 호봉제로 되돌아가는 사업장도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다. 연봉제 도입에 실패한 서울의 A병원은 연봉제의 일그러진 풍경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병원은 7년 전 기존 호봉제를 갑작스레 연봉제로 바꿨다. 이 병원은 연봉제 실시 뒤 처음에는 임금인상폭을 6∼32%로 했으나 2년차에는 5%, 3년차에는 동결하는 식으로 점차 줄여갔다. 연봉제 도입 초기에는 당근을 주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임금을 줄이고, 줄어든 임금을 부서 안에서 나눠먹게 한 것이다. 고액연봉을 받는 직원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고 임금인상률이 해마다 낮아지자 연봉제에 대한 저항이 일기 시작했다. 그러자 병원 쪽은 임금삭감의 칼날을 신규 입사직원한테 들이댔다. 첫 입사자의 임금을 고참직원이 입사할 때 견줘 크게 깎은 것이다. 연봉제 실시 이후에 입사한 직원은 기존 호봉제 때보다 임금이 훨씬 더 낮아졌고, 이는 이직률 증가로 이어졌다. 이 병원의 사례를 조사한 장희연 보건의료노조 조사연구부장은 “연봉제가 들어온 뒤부터 배겨내지 못하고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연봉책정 기준과 평가의 공정성을 둘러싸고 노사 간에 극심한 갈등을 빚은 건 당연했다. 결국 고민 끝에 병원 쪽은 주먹구구식 연봉제가 한계에 봉착했다고 보았으며, 연봉제를 중도에 접고 안정적인 단일호봉제로 돌아가기로 한 것이다. 연봉제가 임금삭감의 방편으로 이용되는 배경에는 연봉에 대한 ‘비밀유지’가 깔려 있다. 회사 쪽은 연봉 계약서를 맺으면서 책정된 연봉을 직원끼리 공개하지 못하게 한다. 따라서 그 누구도 자기 연봉이 다른 사람들과 얼마나 차이나는지 정확히 알 도리가 없다. 누설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약속이지만 “다른 사람보다 연봉이 적으면 창피해서” 연봉얘기를 동료한테 꺼내지도 못한다. 이런 철저한 보안유지를 바탕으로 회사 쪽이 연봉제를 고리로 아무도 모르게 전체적인 임금삭감을 단행하는 것이다. 정규직조차 연봉 계약직으로 연봉제 도입 뒤 기존의 연공서열이 파괴되고 능력·성과주의가 강화되면서 직원들의 동요도 심해진다. 이는 높은 이직률에서 잘 드러난다. 제주도의 한 병원은 연봉제 실시 이후 중간관리자 상당수가 떠나면서 중간층이 사라졌다. 현재 근속 연수 1∼3년차인 직원들이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상황이다. 걸핏하면 직원들이 병원을 떠나다 보니 과거에 월단위로 작성되던 근무표가 지금은 하루하루 작성되고 있다. “일한 만큼 받는 게 아니라 기여한 만큼 받는다”는 혹독한 연봉제 원칙도 이직률 증가에 한 몫한다. 연봉제를 실시하는 삼성전자는 동일 직급 안에서의 연봉 차등폭을 60%, LG전자는 100%까지 두고 있다. LG전자 인사팀 김진희 과장은 “기존 인건비 재원을 효율적으로 쓰자는 게 연봉제”라며 “성과에 따라 인건비를 배분하는 과정에서 동일 직급 안에서 75%까지 차이가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결코 만만하지 않는 연봉 차등폭은 직장인들을 ‘연봉제 스트레스’로 내몰 수밖에 없다. 동료보다 오래 남아 일하면 무능력자로 몰려 연봉이 형편없이 깎이기 일쑤다. 그래서 연봉제가 도입된 한 병원에서는 밤일을 해도 일부러 시간외수당을 신청하지 않는 사례까지 나오고 있다. “더 열심히 일했는데도 성과가 똑같다면 회사를 떠나라”는 무언의 압력이 오고 방출될 처지에 놓이는 것이다. 여기서 드러나는 게 생산성 향상보다는 인력감축의 수단으로 이용되는 연봉제의 뒤틀린 모습이다. 회사가 큰 순이익을 냈더라도 회사 쪽은 삭감된 연봉 재계약서를 통보하고, 이에 반발하면 “불만이 있으면 나가라”는 말이 뒤따른다. 극소수 핵심인력에게는 나이·직급에 상관없이 억대 연봉이 주어지지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대다수 직원한테 ‘적당한 연봉’은 구조조정 압력으로 다가온다. 연봉에서의 임금불안이 고용불안으로 이어지는 셈이다. 연봉제를 도입하는 회사는 “근로계약서와 연봉계약서를 따로 분리해 고용은 안정되고 임금만 연봉제로 바뀐다”고 말한다. 그러나 연봉 계약서에 서명하는 과정에서 연봉은 고용계약까지 맞물리고, 정규직조차 어느새 연봉 계약직으로 신세가 바뀌고 만다. 장희연 조사연구부장은 “연봉제를 도입한 병원 직원들의 경우 ‘더러워서 내가 나가고 말지 뭐’ 하는 풍조까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연봉제가 들어오고 난 뒤 계약직으로 바뀐 자기 처지를 노동자 스스로 인정하는 경향마저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는 일부 비정규직 연봉을 정규직보다 높게 책정하는 회사 쪽의 연봉정책과도 맞물려 있다. 연봉제가 낳는 폐해는 회사에서도 나타난다. 이것이 극단적으로 나타나는 게 정보 단절이다. 조직의 성과를 생각하기에 앞서 자기 연봉을 높이려고 직원들이 자신이 갖고 있는 정보와 노하우를 일부러 흘리지 않는 것이다. 직원 개인의 정보 독점은 조직의 효율성을 깨뜨릴 수밖에 없다. 김진희 LG전자 과장은 “연봉제 실시 이후 직원마다 성과를 보여주는 단기 실적을 추구하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며 “자신이 갖고 있는 노하우를 공유하지 않고 그때그때 조금씩 꺼내놓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연봉제를 실시하고 있는 병원에서는 업무 인수인계가 제대로 안 돼 골치를 썩이고 있다. 한정된 재원을 동료들끼리 성과에 따라 나눠먹다 보니 부서이동 때 자신이 해온 일에 대한 정보를 뒤에 오는 사람한테 일부러 알려주지 않는 것이다. 공공서비스도 망가진다
특히 공공서비스 사업장에서의 연봉제는 노사문제를 넘어 대국민 서비스와 직결된다. 환자를 얼마나 많이 보는지, 돈을 얼마나 버는지에 따라 의사의 연봉이 책정되는 병원이 대표적이다. 이주호 보건의료노조 국장은 “연봉제를 실시하고 있는 병원을 보면 의사들이 환자를 보는 시간이 점차 짧아지고, 세 가지만 검진하면 될 것을 대여섯 가지나 과잉진료하는 등 연봉제가 환자한테 직접적인 불이익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연봉제 도입을 원하는 직장인도 많다. 내 능력을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다면 연봉제도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장희연 조사연구부장은 “우리나라에 들어오고 있는 형태의 이른바 ‘한국식 연봉제’를 직접 겪어보면 사정은 달라진다”고 말했다. 미국식 연봉제를 우리한테 맞는 옷으로 갈아입히고 있다지만, 이 과정에서 ‘성과에 따른 배분’은 오간 데 없고 임금삭감의 방편으로 이용되는 등 연봉제가 크게 왜곡되었다는 것이다. 장 부장은 “당해보면 연봉제의 진실을 알게 된다”고 덧붙였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사진/ 삼성전자는 동일 직급제 안에 차등폭을 60%까지 두고 있다. 연봉 차등폭은 직장인들에게 큰 스트레스를 준다.
그러나 연봉제 바람 속에서 유행을 좇아 기존의 호봉제를 연봉제로 우선 바꾸고 보는 기업들도 나타나고 있다. 제주도에서는 최근 한 병원이 연봉제를 도입하자 모든 병원이 삽시간에 연봉제로 바꾸기도 했다. 직원의 능력과 성과를 평가할 기준조차 제대로 갖추지 않은 채 연봉제 신화에 매달리는 식이다. 여기서 조직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연봉제의 취지는 뒷전으로 밀리고, 인사 기법의 하나 정도로 도입되고 있다. 별 저항 없이 자연스럽게 임금삭감과 인력감축을 꾀하려는 도구로 연봉제를 활용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연봉제에서 과거의 호봉제로 되돌아가는 사업장도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다. 연봉제 도입에 실패한 서울의 A병원은 연봉제의 일그러진 풍경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병원은 7년 전 기존 호봉제를 갑작스레 연봉제로 바꿨다. 이 병원은 연봉제 실시 뒤 처음에는 임금인상폭을 6∼32%로 했으나 2년차에는 5%, 3년차에는 동결하는 식으로 점차 줄여갔다. 연봉제 도입 초기에는 당근을 주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임금을 줄이고, 줄어든 임금을 부서 안에서 나눠먹게 한 것이다. 고액연봉을 받는 직원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고 임금인상률이 해마다 낮아지자 연봉제에 대한 저항이 일기 시작했다. 그러자 병원 쪽은 임금삭감의 칼날을 신규 입사직원한테 들이댔다. 첫 입사자의 임금을 고참직원이 입사할 때 견줘 크게 깎은 것이다. 연봉제 실시 이후에 입사한 직원은 기존 호봉제 때보다 임금이 훨씬 더 낮아졌고, 이는 이직률 증가로 이어졌다. 이 병원의 사례를 조사한 장희연 보건의료노조 조사연구부장은 “연봉제가 들어온 뒤부터 배겨내지 못하고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연봉책정 기준과 평가의 공정성을 둘러싸고 노사 간에 극심한 갈등을 빚은 건 당연했다. 결국 고민 끝에 병원 쪽은 주먹구구식 연봉제가 한계에 봉착했다고 보았으며, 연봉제를 중도에 접고 안정적인 단일호봉제로 돌아가기로 한 것이다. 연봉제가 임금삭감의 방편으로 이용되는 배경에는 연봉에 대한 ‘비밀유지’가 깔려 있다. 회사 쪽은 연봉 계약서를 맺으면서 책정된 연봉을 직원끼리 공개하지 못하게 한다. 따라서 그 누구도 자기 연봉이 다른 사람들과 얼마나 차이나는지 정확히 알 도리가 없다. 누설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약속이지만 “다른 사람보다 연봉이 적으면 창피해서” 연봉얘기를 동료한테 꺼내지도 못한다. 이런 철저한 보안유지를 바탕으로 회사 쪽이 연봉제를 고리로 아무도 모르게 전체적인 임금삭감을 단행하는 것이다. 정규직조차 연봉 계약직으로 연봉제 도입 뒤 기존의 연공서열이 파괴되고 능력·성과주의가 강화되면서 직원들의 동요도 심해진다. 이는 높은 이직률에서 잘 드러난다. 제주도의 한 병원은 연봉제 실시 이후 중간관리자 상당수가 떠나면서 중간층이 사라졌다. 현재 근속 연수 1∼3년차인 직원들이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상황이다. 걸핏하면 직원들이 병원을 떠나다 보니 과거에 월단위로 작성되던 근무표가 지금은 하루하루 작성되고 있다. “일한 만큼 받는 게 아니라 기여한 만큼 받는다”는 혹독한 연봉제 원칙도 이직률 증가에 한 몫한다. 연봉제를 실시하는 삼성전자는 동일 직급 안에서의 연봉 차등폭을 60%, LG전자는 100%까지 두고 있다. LG전자 인사팀 김진희 과장은 “기존 인건비 재원을 효율적으로 쓰자는 게 연봉제”라며 “성과에 따라 인건비를 배분하는 과정에서 동일 직급 안에서 75%까지 차이가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결코 만만하지 않는 연봉 차등폭은 직장인들을 ‘연봉제 스트레스’로 내몰 수밖에 없다. 동료보다 오래 남아 일하면 무능력자로 몰려 연봉이 형편없이 깎이기 일쑤다. 그래서 연봉제가 도입된 한 병원에서는 밤일을 해도 일부러 시간외수당을 신청하지 않는 사례까지 나오고 있다. “더 열심히 일했는데도 성과가 똑같다면 회사를 떠나라”는 무언의 압력이 오고 방출될 처지에 놓이는 것이다. 여기서 드러나는 게 생산성 향상보다는 인력감축의 수단으로 이용되는 연봉제의 뒤틀린 모습이다. 회사가 큰 순이익을 냈더라도 회사 쪽은 삭감된 연봉 재계약서를 통보하고, 이에 반발하면 “불만이 있으면 나가라”는 말이 뒤따른다. 극소수 핵심인력에게는 나이·직급에 상관없이 억대 연봉이 주어지지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대다수 직원한테 ‘적당한 연봉’은 구조조정 압력으로 다가온다. 연봉에서의 임금불안이 고용불안으로 이어지는 셈이다. 연봉제를 도입하는 회사는 “근로계약서와 연봉계약서를 따로 분리해 고용은 안정되고 임금만 연봉제로 바뀐다”고 말한다. 그러나 연봉 계약서에 서명하는 과정에서 연봉은 고용계약까지 맞물리고, 정규직조차 어느새 연봉 계약직으로 신세가 바뀌고 만다. 장희연 조사연구부장은 “연봉제를 도입한 병원 직원들의 경우 ‘더러워서 내가 나가고 말지 뭐’ 하는 풍조까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연봉제가 들어오고 난 뒤 계약직으로 바뀐 자기 처지를 노동자 스스로 인정하는 경향마저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는 일부 비정규직 연봉을 정규직보다 높게 책정하는 회사 쪽의 연봉정책과도 맞물려 있다. 연봉제가 낳는 폐해는 회사에서도 나타난다. 이것이 극단적으로 나타나는 게 정보 단절이다. 조직의 성과를 생각하기에 앞서 자기 연봉을 높이려고 직원들이 자신이 갖고 있는 정보와 노하우를 일부러 흘리지 않는 것이다. 직원 개인의 정보 독점은 조직의 효율성을 깨뜨릴 수밖에 없다. 김진희 LG전자 과장은 “연봉제 실시 이후 직원마다 성과를 보여주는 단기 실적을 추구하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며 “자신이 갖고 있는 노하우를 공유하지 않고 그때그때 조금씩 꺼내놓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연봉제를 실시하고 있는 병원에서는 업무 인수인계가 제대로 안 돼 골치를 썩이고 있다. 한정된 재원을 동료들끼리 성과에 따라 나눠먹다 보니 부서이동 때 자신이 해온 일에 대한 정보를 뒤에 오는 사람한테 일부러 알려주지 않는 것이다. 공공서비스도 망가진다

사진/ 공공서비스 사업장의 연봉제는 대국민 서비스와 직결된다. 밀린 업무를 처리하고 있는 서울의 한 병원 내과 간호실. (김종수 기자)

사진/ 연봉 정보 사이트 payope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