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정진웅 ㅣ 성공회대 강사·문화인류학 (강재훈 기자)
이런 현상들은 곧 자아의 확장으로서의 국가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전체주의적 인식의 흔적이 우리 사회에 아직 널리 퍼져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국가의 영광과 치욕을 곧바로 나의 영광과 치욕으로 치환하는 이러한 전근대적 마음의 습속을 넘어서야만 우리도 비로소 월드컵의 주최국으로서 좀더 의연할 수 있지 않을까? 여기서 우리 내부의 이러한 국가주의적 습속의 흔적을 이끌어내고 또 키우는 주체로서의 언론의 역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언론매체들은 월드컵 역사상 개최국이 16강 진출에 실패한 경우는 전무했다는 사실을 부각시킨다. 그러면 우리는 또 한국이 이번에 16강 진출에 실패하면 세계적인 망신거리가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이상한 조바심에 빠진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축구 마니아들을 제외하고는 월드컵 역사의 시시콜콜한 부분까지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얼마나 세상에 얼마나 있을 것이며, 또 설사 그런 사람들이 상당수 있다 해도 우리의 16강 진출 여부가 그들이 한국이라는 나라를 평가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 잣대가 될까? 이런 점에서 “월드컵 16강 진출”을 둘러싼 언론보도는 대니얼 부어스틴이 얘기하는 ‘의사사건’, 즉 “언론에서 다룸으로써 중요해지는 사건”의 전형이다. 곧 16강 진출에 대한 언론보도는 우리 사회의 국가주의적 열망을 일정부분 반영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러한 열망을 활성화하고 강화한다. 월드컵 통해 우리를 발견하자 이런 의미에서 이번 월드컵이 많은 언론매체들이 행하고 있는 국가주의적 동원의 메커니즘에 대한 우리 사회의 비판적 시각과 이해를 키울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자신의 정체성의 근거를 자신의 노력과는 무관한 집단의 성취에서 찾는 습속을 점차 떨구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도 혹 집단적 자부심이 필요하다면 적어도 그 자부심의 근거를 ‘우리들의 대표’가 ‘남들보다 공을 좀더 잘 차는 능력’에서 찾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월드컵이 다가올수록 김구 선생의 다음과 같은 소망이 우리 사회에서 들불처럼 퍼져나가는 날을 꿈꾸게 된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유한 나라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갖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