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한국인’과 다른 ‘특별한 외국인’의 특별한 이야기들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좋아하는 외국인의 존재가 새삼스럽지는 않아도 각별하다. 잘 몰랐거나 애써 무시했던 우리의 일면을 비춰주는 거울이 될 수 있으니까. 그냥 나그네처럼 스쳐지나가는 이들도 있다. 그런 이들에게도 하필 한국에 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보통 한국인’과 다른 ‘특별한 외국인’의 특별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스콧 버거슨- 발칙한 한국학, 발칙한 외국인
미국인 스콧 버거슨(35)은 스스로를 ‘이상한 사람’(strange person)이라고 소개한다. 지난 96년 한국에 온 뒤 이곳을 베이스캠프 삼아 살면서 이따금 일본, 중국으로 여행 다니곤 하는데, 미국으로 돌아갈 생각이 전혀 없다고 잘라 말한다.
“어떤 직장이 좋을까, 어떤 차를 살까 등을 생각하며 사는 삶은 정말 싫다. 아니, 그렇게는 살 수 없다. 미국에 더 많은 자유가 있다고 하지만 난 여기서 더 자유롭다. 미국에서는 그 시스템에 따라서 살아야 하지만, 이방인으로 존재하면 그런 순응주의가 필요 없어 훨씬 자유롭다.” 일본에서도 3년간 머물러 봤지만, 한국이 더 좋다고 한다. 일본보다 훨씬 낯선 나라여서 그만큼 자유롭다는 게 굳이 이 땅을 고집하는 이유다. 고정된 직장을 거부하는 그의 호구지책은 글쓰기다. 버클리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뒤 샌프란시스코의 한 신문사에서 문화비평가로 3년 정도 일하다 미국을 떴는데 그 경험을 살렸다. 주목할 만한 예술가를 찾아내거나 특정 지역을 취재해 나름의 비판적 시각으로 <버그>라는 영문잡지를 홀로 만들어왔다. 이 잡지를 통해 테크노풍 트로트로 유명한 이박사를 누구보다 먼저 발견했다고 자부하며 ‘한국의 텍사스촌, 부산’, ‘리틀 마닐라, 대학로’, ‘한국의 차이나타운, 인천’ 등의 제목을 달고 색깔 있는 지역학도 펼친다. 책도 쓴다. 3년 전 <맥시멈 코리아>(자작나무 펴냄)를 냈고, 최근에는 <발칙한 한국학>(이끌리오 펴냄)을 발간했다. <발칙한 한국학>에는 19세기 말부터 외국인이 한국에 대해 써온 책들 가운데 한국을 정말 이상하게 오해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상세히 검토하고 있다. 한국의 역사나 작금의 현실을 파헤치는 탐구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책을 펼쳐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제법 두터운 <버그>는 미국, 영국, 홍콩, 일본의 타워레코드에서 팔고 있다. 특이한 건 수익은 애초부터 없다는 거다. 판매대금을 타워레코드와 반분한 뒤 돌아오는 몫은 몽땅 우송비용으로 충당되기 때문이다. 여피족을 혐오하는 그는 돈을 많이 필요로 하지도 않고, 많이 쓰지도 않는다. 지난 설 연휴 때 대전, 경주, 안동을 여행하는 5일 동안 든 비용이 불과 10만원이다. 그러고 보니 가죽가방도, 휴대폰도 모두 낡았다. 돈 안 되는 잡지를 힘들게 만들지 말고 영어강사로 쉽게 돈 벌라는 이들도 있지만 그건 그의 체질이 아니다. “난 자본주의가 싫다. 소비주의도 싫다. 잡지에 광고를 넣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버그잡지 신고하여 상금타고 애국하자!’라는 표어가 붙은 <버그> 5호의 뒤표지가 이상하다 싶었는데, 국가정보원이 버스, 지하철 등에 붙여놓은 포스터를 패러디한 것이다. 동해안에 좌초했던 북한 잠수함 사진이 있는 그 포스터 말이다. “(국가정보원이 만든) 포스터식의 선전은 민주주의와 맞지 않는다. 사상의 자유가 있어야 민주주의 아닌가. 한국도 많이 변했지만 이런 낡은 생각이 아직도 도처에 있다. 한국의 정치인들은 다들 거짓말쟁이다. 나라를 걱정하는 체만 하고.” 정치 이야기가 나오자 “그거 아느냐? 부시는 대통령이 아니라는 거”라고 정색하며 묻는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진짜 대통령은 딕 체니 부통령(조지 부시 시절 국방장관을 지냈다)”이라며 익살맞게 웃는다. 진담어린 농담이었다. “내 국적이 어디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미국에서 살 생각도 없고, 부시도 싫으니까.” 왜 아직 결혼을 안 했는지 물었다. “결혼을 특별히 거부하는 건 아니다. 외로워서 결혼하는 게 부정적 동기라면, 난 긍정적 동기를 갖고 결혼하고 싶다. 훌륭한 여자(great woman)를 만나는 게 긍정적 동기다. 대학 시절을 포함해 두번 동거를 했지만 결혼까지 가지는 못했다.” 외로움을 좋아하니 결혼이 급할 것도 없다. 식당에서 혼자 식사하며 신문 보는 게 그의 즐거움 중의 하나다. 카페에서의 만남은 그가 안내한 종로 뒷골목의 오겹살 집으로 이어졌다. “한국은 정말 빨리 변화하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변화는 섹스에 관한 태도다. 내 리서치(연구) 결과다.” 경험적으로 볼 때 그렇다는 뜻이냐고 물었더니 “경험도 리서치의 하나”라며 묘하게 웃는다. 들고 나갔던 <발칙한 한국학>에 사인을 청했다. 한참을 고심하더니 또 한참을 쓴다. 거기에는 “발칙하게 생각하고, 지구적으로 행동하라”는 말이 한글과 영어가 뒤섞인 채 적혀 있었다. 자칭 ‘이상한 사람’이라는 그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정작 이상한 사람은 나 혹은 우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로버트 번즈- 한국인의 정감이 좋다
혈연, 지연, 학연으로 꽁꽁 묶인 한국인들의 폐쇄적인 관계를 유교의 영향 탓이라며 매섭게 비판한 스콧 버거슨과 달리, 캐나다인 로버트 번즈(43)는 9년째 한국에 머물고 있는 이유가 관계를 중시하는 한국인 특유의 정감 때문이라고 한다.
“처음 한국에 온 뒤 1년간은 혼돈 그 자체였다. 환경이 너무 달랐으니까. 1년이 지나고 나니 아주 편안해지더라. 친구들을 잘 돌봐주는 사고방식 덕분이었다. 현재로선 한국을 떠날 생각도, 캐나다로 돌아갈 계획도 없다.”
한국을 고집하는 그의 세계 경험은 뜻밖에도 아주 다채롭다. 10대 때에는 어머니를 따라 케냐, 짐바브웨 등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살았고, 대학 시절에는 유럽 각국을 전전했으며, 한국에 오기 직전에는 미국 예일대 대학원에서 언어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항공대에서 영어 강사로 일하던 99년에는 6개월간 휴직해 육로를 통해 아버지의 나라인 스코틀랜드까지 여행했다. 중국, 베트남, 타이, 인도, 이란, 터키…. 거쳐간 대부분의 나라가 다 좋았지만 한국에서 쌓은 관계를 허물고 옮기고 싶은 마음까지 들진 않았다. 번즈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해맑은 표정이 인상적이었는데 그의 말을 듣다 보면 어째 수수께끼를 푸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서로 돌봐주는 관계를 그렇게 좋아하면서 여태껏 미혼인 점도 그랬다.
“결혼할 생각은 없다. 성격 자체가 혼자 사는 데 맞는다. 게다가 내 삶은 계속 바뀌고 있어 현실적으로도 결혼과 어울리지 않는다.”
미국의 명문 예일대를 다녔는데 그 조건을 ‘활용’하지 않는 것도 수수께끼처럼 보였다. “한국의 미국 대학들에 대한 생각에는 순진한 구석이 있다. 미국에서는 좋은 대학 안에서 학과들 사이에 수준 차가 크다. 예일대의 언어학과는 그냥 보통 수준이다.”
합리적이고 겸손한 말이다. 한국에서 유일한 문제는 30∼80%로 들쭉날쭉한 한국어에 대한 이해력인데, 프랑스어와 독어가 능숙한 것에 비해 “창피하다”고 한다. 역시 겸손하다.
현재 그가 하고 있는 일은 두 가지다. 3개월 전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 과정을 시작한 것과, 2년 전 시작한 참여연대 지원활동이다. 마침 그의 연구실을 찾아갔을 때, 참여연대 일을 한창 하고 있었다. 분기별로 나오는 영문잡지 <아시아연대>(ASQ)에 들어갈 원고를 교정하고 감수하는 일이다. 캄보디아의 최근 선거에 대한 글을 이메일로 받아 손보고 있었다.
“2000년, 총선시민연대가 벌이는 운동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한국의 정치는 무척 폐쇄적이어서 외부의 힘을 통한 변화가 필요했는데, 마침 시민단체들이 똘똘 뭉쳤다. 좋은 아이디어였다. 그래서 외국인 친구와 함께 스스로 찾아가 도울 일이 없는지 물었다. 사실 한국인 스스로 해야 할 일이어서 지금 하고 있는 일 말고는 크게 도울 게 없었다.”
번즈가 갖고 있는 정치적 태도는 탄력적이라고 해야 할 듯하다. “약간은 사회주의자 성향을 갖는 대부분의 캐나다인”처럼 정부는 평범한 사람들을 중심에 놓고 일해야 한다는 게 그의 기본 생각이다. 잠시 소설가 이문열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이문열 소설을 많이, 즐겨 읽었다고 한다. “이문열이 굉장히 보수적이고, 특히 여성에 대해서는 더 심하다는 걸 알고 있다. 책에서도 드러난다. 그렇지만 별로 놀랍지 않다. 윌리엄 포크너도 남자들에 대해서만 썼다. 작가가 자기가 아는 것에 대해 쓰는 거니까 그의 정치적 견해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상관하지도 않는다.”
그동안 한국의 구석구석을 여행했다. 제주도부터 보길도에 이르는 섬까지. 그래서 생긴 희망사항이 북한 여행이다. “한국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갖고 있는 궁금증과 호기심이 나에게도 생겼다. 그곳의 땅은 어떻고, 그곳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등등.”
진 토시오- 붉은 악마 앨범에 참여하다
최근 데뷔음반을 낸 클럽 드럭의 밴드 레이지본에는 독특하게도 트럼펫 연주자가 있다. 진 토시오(22). 일본인이다. 99년부터 레이지본에 합류해 매주 토요일 밤이면 통통한 볼을 불룩하게 만들며 클럽에 모인 사람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왜 그는 (한국에 비하면) 풍요롭기 이를 데 없는 일본의 클럽신을 제쳐두고 자객처럼 트럼펫 하나 어깨에 달랑 멘 채로 가난한 홍대 앞 클럽으로 표표히 날아온 것일까. 정답은 “얼떨결에”다.
토시오가 한국과 첫 인연을 맺은 건 음악이 아니라 축구 때문이었다. 정확히 축구가 아니라 응원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취미로 배운 트럼펫 덕이기도 했다. “축구도 좋아하지만 왁자지껄한 응원을 더 좋아했어요. 마침 울트라니폰 멤버였던 친구가 한·일전 응원 때 트럼펫 부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고 해서 97년에 처음 한국에 왔어요”. 고2 때였다. 한국에 대한 지식도 관심도 없던 그였지만 뒤풀이 때 붉은 악마들에게 받은 인상이 너무 좋았다. 한국말을 못해서 대화에 끼지 못하는 게 답답했다. 그래서 귀국한 다음 조금씩 한국어를 공부하다가 졸업하고 6개월 뒤 정식으로 한국말을 배우기 위해 한국땅을 다시 밟았다. 한국에서 공부할 돈을 모으기 위해 젤리공장에서 3개월 동안 일하기도 했다. “젤리 안에 뭐 이상한 게 들어 있지 않나 확인하는 일이었는데 하루종일 기계 위에서 돌아가는 젤리들만 보고 있으니까, 와, 정신병자 되는 줄 알았어요.”
99년 6월부터 연세대 어학당에 다니기 시작했다. “제가 살던 고시원이 바로 드럭 앞에 있었어요. 친구들도 사귈 겸 가끔 놀러갔죠.” 일본에서도 클럽에 자주 가긴 했지만 연주자가 된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우연히 레이지본이 트럼펫 연주자를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별 생각 없이 오디션을 봤다. 그렇게 해서 그는 한국에 온 지 3개월 만에 뮤지션의 타이틀을 달게 됐다. 덕분에 ‘한국말을 마스터하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겠다’는 비장한 결심은 무너지기 시작했지만. 어학당은 1년 만에 포기했다. 게으름뱅이(레이지본의 뜻)라는 팀의 컨셉트를 온몸으로 실천했기 때문이었다. “아, 시험날 늦잠만 안 잤어도…. 지각하는 바람에 과락을 했어요. 같은 급수를 다시 해야 하는데 창피하기도 하고, 똑같은 거 다시 배우기도 재미없어서 그만뒀어요.” 그러나 그의 한국어는 발음이 약간 어눌한 것을 빼면 거의 ‘네이티브 스피커’ 수준이다.
일본어 교습, 통역 등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그는 고달픈, 그러나 즐거운 밴드생활을 하고 있다. 일본 공연도 간 적이 있다. 감개무량했냐고 물으니 “같이 했던 밴드와 음악색깔이 달라서 반응이 안 좋았어요” 썰렁하게 대답한다. 그래도 얼마 전 성인식 때 친구들로부터 “고등학교 동기들 중에 네가 가장 성공했다”는 격려를 받았다.
음악 외에 그가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것은 야구 관람이다.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야구만 하고 살았다는 그는 이날도 인터뷰 끝나고 잠실야구장에 갈 계획이었다. “롯데 팬이에요. 박정태 선수 너무 멋져요. 폼이 재미있잖아요.” 롯데가 경기할 때면 응원단 앞에서 트럼펫을 불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가 한국인들의 일본인 혐오증을 가장 심하게 느끼는 것도 바로 야구장이다. “상대편에서 나한테만 막 욕해요. 대구 경기 갔을 때는 야구장에도 못 들어오게 했어요.”
그가 속한 레이지본은 이번에 붉은 악마 응원곡 앨범에 참여했다. 전에 울트라니폰의 음반에서도 연주한 적이 있어 그는 “얼떨결에” 양국의 월드컵 공동 개최의 상징적 존재가 된 셈이다. 매일 밤새워 둘도 없는 친구인 멤버들과 연습하고, 공연하고, 술마시는 게 즐겁고 행복하지만 요즘엔 돈이 없어, 아니 돈 없는 생활이 너무 길어져 고달프다고. “앨범 많이 안 팔리면 일본에 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고 팬들은 은근히 ‘협박’한다.
낸시 - 신나고 흥미로운 변혁의 가능성
그냥 낸시라고만 했다. 1년 반 전 한국에 온 낸시(36)에게 가장 당황스러웠던 것은 꼬리표로 사람을 알아보는 관습이었다. 어디 출신, 어떤 직업, 어떤 피부색깔 따위의. “너는 누구니라고 묻기보다는 어디서 왔는가, 어떤 일을 하는가로 사람을 평가하는 게 아쉬워요. 그런 통념은 어디나 있지만 좀더 심한 것 같아요” 그래도 궁금할 터이니 대답하자면 그는 캐나다 서부 캘거리 옆 도시에서 왔고, 영어 강사다. 그리고 아나키스트이기도 하다. 그럼 이런 질문이 한번 더 들어온다. “어떤 조직에 있으세요?” 그가 “아무 곳에도 속해 있지 않은데요” 대답하면 사람들은 당황하거나 “그럼 어떤 운동을 하시는데요?” 동어반복의 질문을 한다.
식민지, 군사독재 등 특수한 역사적 경험과 이데올로기 과잉의 시대를 겪으면서 아나키즘 운동이 서구사회에 비해 더디게 성장한 우리 사회에서 “아나키스트입니다”라고 말하는 건 여전히 “대책 없는 이상주의자예요”라는 대답으로 들리기 십상이다. “아나키즘은 하나의 이데올로기나 원칙으로 묶인 집단이 아니에요. 중앙집권적 권위나 위계에 반대하고, 자유와 평등을 위해 싸우는 운동이지요.” 그가 한국에 오기 전 참가해온 운동도 캐나다에서의 대학 시절 등록금 철폐 시위, 무미아 아부 자말의 사형 반대 시위, 보험제도의 민영화 반대 시위 등 하나의 색깔이나 이데올로기에 묶이지 않는 것들이었다.
한국에 온 지 6개월 만에 아나키스트 동료들을 만나 시작한 운동도 매우 다양하다. 아나키스트 그룹에서 만든 자유학교의 교사이자 학생으로, 평화인권연대의 자원봉사 영어 강사로, 평등노조 이주노동자 지부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양심적 병역거부 등 다양한 정치적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토론회나 집회 등에 참가한다. ‘연대’는 그가 하는 아나키즘 운동의 매우 중요한 슬로건이기도 하다. 인터뷰가 있던 날도 그는 무산된 이주노동자들의 시위에 대한 항의집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돈을 벌기 위해 외국에서 한국으로 왔다는 점에서 3D 업종에 종사하는 동남아시아인이나 저나 같은 이주노동자라고 생각해요. 흰 피부를 가진 건 이곳에서 분명 유리한 점도 있겠지만 외국인 혐오증이라는 면에서 제가 느끼는 부담은 다른 이주노동자와 크게 다르지 않을 거예요.”
그는 한국에서의 경험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것으로 나눔의 집에 찾아가서 위안부 할머니들과 나눈 대화와 지난해 노동절 때 참가한 거리집회를 떠올린다. “캐나다 같은 서구에서는 노동절도 9월로 옮기며 메이데이의 의미를 희석시켰지요. 노동절은 그냥 쉬는 날이 됐고요. 그런데 지난해 노동절, 휴일이었는데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열심히 시위에 참가하는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어요.” 그가 한국을 사랑하는 이유도 바로 이런 것이다. “한국에 오기 전에는 잘 몰랐는데 사람들이 매우 정치적이고 시위현장에서 자신의 주장을 펴는 데도 적극적이에요. 어떤 사회보다 많은 변혁의 가능성이 있는 곳이라 신나고 흥미롭지요.”
탑골공원을 걸어가다가 일제시대 때 일본인의 만행을 고발한 사진 전시를 한참 들여다보며 그는 정부의 이주노동자 정책에 대해 비판했다. “월드컵 맞이한다고 몇몇 나라의 외국인 노동자 입국을 규제한다는 기사 보셨어요? 정말 이해가 안 돼요. 그 사람들 가운데는 이처럼 일제시대 때 착취와 탄압을 피해 만주땅으로 이주한 사람도 많은데, 일제 만행 규탄한다면서 조선족 노동자 입국을 규제하는 건 모순 아닌가요?”
그의 아나키즘 운동은 이주노동자나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 든 한국사회의 현안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오는 9월에는 오스트레일리아로 떠나 7, 8개월 동안 유기농법을 공부해올 계획이다. 환경을 파괴하지 않고 지속가능한 농법을 직접 실천하고 싶은 생각에서다. 한국에 돌아온 다음에는 아직 서투른 한국어 공부도 본격적으로 시작할 생각. 인터뷰가 끝난 뒤 낸시는 근처의 PC방으로 발길을 돌렸다. 지난 21일 있었던 한국 정부의 이주노동자 탄압을 전 세계 활동가에게 알리고, 각국의 한국 대사관에 항의 메일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반론보도문>
본지는 지난 3월28일치 401호 32면 ‘자유시민연대, 동무 생겼네’ 제하의 기사에서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이하 시민회의)가 주장하는 기업활동에 대한 과도한 규제의 폐지, 고교평준화 제도의 폐지, 양심적 병역거부 반대, 정기간행물등록등에관한법률 개정안의 반대 등의 내용이 극우보수단체인 자유시민연대가 주장하는 내용과 다를 바 없어 중도를 지향하는 시민단체인지 의구심을 갖게 한다는 취지의 보도를 했다.
이에 대해 시민회의는 자유로운 기업활동을 보장함으로써 국익을 증진하고 자유시장경제 체제를 수호하며, 능력에 따른 수업을 받을 권리를 보장함으로써 공교육을 바로잡고, 언론이 권력의 감시자로서의 역할을 다하게 하고자 하는 등 중도적인 다수 중산층의 합리적인 의견을 대변한 것으로, 이러한 주장을 근거로 시민회의를 극우단체로 몰아붙이거나 반개혁세력의 대변자라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친 논리의 비약이자 대다수 국민의 보편적인 생각을 잘못 이해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성욱 기자 lewook@hani.co.kr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미국에 더 많은 자유가 있다고 하지만 난 여기서 더 자유롭다. 미국에서는 그 시스템에 따라서 살아야 하지만 이방인으로 존재하면 그런 순응주의가 필요 없어 훨씬 자유롭다." (박승화 기자)
“어떤 직장이 좋을까, 어떤 차를 살까 등을 생각하며 사는 삶은 정말 싫다. 아니, 그렇게는 살 수 없다. 미국에 더 많은 자유가 있다고 하지만 난 여기서 더 자유롭다. 미국에서는 그 시스템에 따라서 살아야 하지만, 이방인으로 존재하면 그런 순응주의가 필요 없어 훨씬 자유롭다.” 일본에서도 3년간 머물러 봤지만, 한국이 더 좋다고 한다. 일본보다 훨씬 낯선 나라여서 그만큼 자유롭다는 게 굳이 이 땅을 고집하는 이유다. 고정된 직장을 거부하는 그의 호구지책은 글쓰기다. 버클리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뒤 샌프란시스코의 한 신문사에서 문화비평가로 3년 정도 일하다 미국을 떴는데 그 경험을 살렸다. 주목할 만한 예술가를 찾아내거나 특정 지역을 취재해 나름의 비판적 시각으로 <버그>라는 영문잡지를 홀로 만들어왔다. 이 잡지를 통해 테크노풍 트로트로 유명한 이박사를 누구보다 먼저 발견했다고 자부하며 ‘한국의 텍사스촌, 부산’, ‘리틀 마닐라, 대학로’, ‘한국의 차이나타운, 인천’ 등의 제목을 달고 색깔 있는 지역학도 펼친다. 책도 쓴다. 3년 전 <맥시멈 코리아>(자작나무 펴냄)를 냈고, 최근에는 <발칙한 한국학>(이끌리오 펴냄)을 발간했다. <발칙한 한국학>에는 19세기 말부터 외국인이 한국에 대해 써온 책들 가운데 한국을 정말 이상하게 오해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상세히 검토하고 있다. 한국의 역사나 작금의 현실을 파헤치는 탐구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책을 펼쳐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제법 두터운 <버그>는 미국, 영국, 홍콩, 일본의 타워레코드에서 팔고 있다. 특이한 건 수익은 애초부터 없다는 거다. 판매대금을 타워레코드와 반분한 뒤 돌아오는 몫은 몽땅 우송비용으로 충당되기 때문이다. 여피족을 혐오하는 그는 돈을 많이 필요로 하지도 않고, 많이 쓰지도 않는다. 지난 설 연휴 때 대전, 경주, 안동을 여행하는 5일 동안 든 비용이 불과 10만원이다. 그러고 보니 가죽가방도, 휴대폰도 모두 낡았다. 돈 안 되는 잡지를 힘들게 만들지 말고 영어강사로 쉽게 돈 벌라는 이들도 있지만 그건 그의 체질이 아니다. “난 자본주의가 싫다. 소비주의도 싫다. 잡지에 광고를 넣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버그잡지 신고하여 상금타고 애국하자!’라는 표어가 붙은 <버그> 5호의 뒤표지가 이상하다 싶었는데, 국가정보원이 버스, 지하철 등에 붙여놓은 포스터를 패러디한 것이다. 동해안에 좌초했던 북한 잠수함 사진이 있는 그 포스터 말이다. “(국가정보원이 만든) 포스터식의 선전은 민주주의와 맞지 않는다. 사상의 자유가 있어야 민주주의 아닌가. 한국도 많이 변했지만 이런 낡은 생각이 아직도 도처에 있다. 한국의 정치인들은 다들 거짓말쟁이다. 나라를 걱정하는 체만 하고.” 정치 이야기가 나오자 “그거 아느냐? 부시는 대통령이 아니라는 거”라고 정색하며 묻는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진짜 대통령은 딕 체니 부통령(조지 부시 시절 국방장관을 지냈다)”이라며 익살맞게 웃는다. 진담어린 농담이었다. “내 국적이 어디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미국에서 살 생각도 없고, 부시도 싫으니까.” 왜 아직 결혼을 안 했는지 물었다. “결혼을 특별히 거부하는 건 아니다. 외로워서 결혼하는 게 부정적 동기라면, 난 긍정적 동기를 갖고 결혼하고 싶다. 훌륭한 여자(great woman)를 만나는 게 긍정적 동기다. 대학 시절을 포함해 두번 동거를 했지만 결혼까지 가지는 못했다.” 외로움을 좋아하니 결혼이 급할 것도 없다. 식당에서 혼자 식사하며 신문 보는 게 그의 즐거움 중의 하나다. 카페에서의 만남은 그가 안내한 종로 뒷골목의 오겹살 집으로 이어졌다. “한국은 정말 빨리 변화하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변화는 섹스에 관한 태도다. 내 리서치(연구) 결과다.” 경험적으로 볼 때 그렇다는 뜻이냐고 물었더니 “경험도 리서치의 하나”라며 묘하게 웃는다. 들고 나갔던 <발칙한 한국학>에 사인을 청했다. 한참을 고심하더니 또 한참을 쓴다. 거기에는 “발칙하게 생각하고, 지구적으로 행동하라”는 말이 한글과 영어가 뒤섞인 채 적혀 있었다. 자칭 ‘이상한 사람’이라는 그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정작 이상한 사람은 나 혹은 우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로버트 번즈- 한국인의 정감이 좋다

사진/ 9년째 한국에 머물고 있는 로버트 번스는 2년전부터 참여연대에서 지원활동을 하고 있다. (이용호 기자)

사진/ 인디밴드 레이지본의 트럼펫 주자 토시오(왼쪽). 그는 붉은 악마와 울트라니폰의 응원곡 앨범에 모두 참가한 이색경력의 소유자다. (김종수 기자)

사진/ 1년 전부터 한국에서 아나키즘 운동을 하고 있는 캐나다인 낸시. 그의 요즘 관심사는 아주노동자 인권문제다. (김종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