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단한 껍질에 둘러싸여 검푸른 자태를 뽐내며 우뚝 솟아 있는 대관령 소나무숲의 황장목.
코로나19 이후 자연 보전과 향유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자연을 보전함으로써 누리고, 자연을 누림으로써 보전할 동기와 역량을 얻는 생태여행지에 다녀왔다. ‘생태여행’(생태관광)은 1990년 이후 전세계적으로 알려진 개념으로, 국제생태관광협회(TIES)는 ‘자연으로 떠나는 책임 있는 여행’ ‘환경을 보전하고 지역주민 삶의 질을 보장하며 해설과 교육을 수반하는 여행’으로 정의한다.경북 울진군 금강송면, 북면 일대 산림보호구역에 있는 ‘금강소나무 숲길’은 국내에서 보기 드문 생태여행지다. 지역공동체는 자연을 보전하려고 가이드 동반 예약 탐방제를 도입했고, 여행자는 잘 보전된 자연을 누리고 알아가며, 주민들은 숲길 탐방 운영과 안내에 핵심 역할을 한다. 국내에서 이런 특징을 두루 갖춘 여행지를 찾기는 쉽지 않다. 당장 여행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조용히 걷고 세심하게 관찰하는 것뿐. 지난 십수 년간 우후죽순 늘어난 걷기여행 길의 현실을 짚으며, 자연과 문화·역사 속에 파묻히기 좋은 길 10곳도 함께 소개한다._편집자주
나는 소나무숲으로 들어갔고, 소나무숲은 내 안으로 들어왔다. 한 아름을 훌쩍 넘는 소나무를 품고 있는 흙은 푹신했다. 울창한 소나무와 사이사이의 활엽수가 하늘의 푸르름을 자신들의 푸르름으로 덮고 있었다. 솔향기는 맑았고, 내 머리도 맑혔다. 20m 넘는 키의 쭉쭉 뻗은 소나무들 모습에 눈이 시원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얼굴 일부가 돼버린 마스크를 잠시 내리자 코와 입으로 솔숲의 청신한 기운이 훅 하고 들어왔다. 그렇게 나는 ‘숲며들었다’. 대관령 12개 숲길 가운데 하나
4월24일 찾은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어흘리에 있는 대관령 소나무숲은 이방인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이 숲은 1922~1928년 소나무 씨앗을 직접 뿌리는 ‘직파조림’ 방식으로 조성됐다. 현재 총면적은 4㎢로 축구장 571개 규모다. 1988년 문화재 복원용 목재생산림으로 지정됐고, 2000년에는 ‘제1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22세기를 위해 보존할 아름다운 숲’으로 지정됐다. 2017년에는 경북 울진 금강소나무숲, 충북 단양 죽령옛길(낙엽송·잣나무) 등과 함께 산림청에서 지정한 ‘경영·경관형 10대 명품숲’에 선정됐다.대관령 소나무숲길은 대관령 옛길, 선자령 순환등산로, 백두대간 마루금, 국민의숲 트레킹 코스 등 길이와 소요 시간, 난이도가 다양한 대관령 일대 12개 숲길 가운데 하나다. 2021년 5월1일 이 12개 노선, ‘대관령숲길’ 102.96㎞ 전 구간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국가숲길’로 지정됐다. 국가숲길은 ‘산림 문화·휴양에 관한 법률’에 따라 산림·생태적, 역사·문화적 가치가 높아 국가의 체계적인 운영·관리가 필요한 곳을, 산림청 심의를 거쳐 지정하는 숲길이다. 이번에 지리산둘레길, 백두대간트레일, DMZ펀치볼둘레길도 함께 지정됐다. 소나무숲길의 전체 거리는 6.3㎞다. 걷는 데 2시간30분~3시간 정도 걸린다. 난이도는 어렵지 않은 편이다. 2018년 일반에 개방됐다. 조성된 지 약 100년 만에 탐방객을 맞은 소나무숲은 사람 발길이 본격적으로 닿은 지 3년밖에 되지 않은 비교적 새로운 숲길이다.
대관령 소나무숲길 어귀에 있는 삼포암 폭포.

대관령 소나무숲길에 우뚝 솟아 있는 황장목들.

대관령 소나무숲길.
치유의숲, 접근성 좋은 다양한 코스
소나무숲길을 걷기에 앞서 이날 오전, 인근에 있는 ‘국립 대관령 치유의숲’을 가족과 함께 방문했다. 2016년 조성된 치유의숲은 “면역력과 건강 증진을 위해 향기, 경관 등 산림의 다양한 치유 인자를 활용할 수 있도록 조성한 숲”(강릉시 설명)이다. 이 숲에는 ‘치유데크로드’ ‘숲속쉼터’ ‘솔향기터’ ‘물소리숲길’ 등 다양한 코스가 마련됐다. 각 코스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고, 숲 곳곳에 평상이 설치돼 산책하며 쉴 수 있는 공간이 넉넉하다. 숲속엔 소나무와 단풍나무 사이에 연분홍 철쭉이 피어 있었다. 바닥에는 철쭉보다 먼저 피고 바람을 따라간 산벚나무의 꽃송이가 눈송이처럼 깔려 있다. 한바탕 흩날렸을 꽃보라 때를 놓친 것을 벚꽃을 좋아하는 우리 가족은 아쉬워했다.(다만, 치유의숲에 산벚나무 수는 많지 않다고 한다.)
‘국립 대관령 치유의숲’에서 우리 가족이 건식 반식욕을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