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시민행동’의 하승창 사무처장… ‘밑빠진 행동’을 피하기 위하여
영화 <뷰티풀 마인드>의 주인공 존 내시에게는 평생 동안 따라다니는 환영이 있다. 검은 옷을 입은 기관원, 대학 기숙사의 룸메이트와 그 친구의 귀여운 딸…. 그 사람들이 실제 존재하지 않는 한낱 환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은 뒤 존 내시는 그것들을 떨쳐버리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하지만 끝내는 그들을 평생 껴안고 살기로 하고 받아들인다. 영광스러운 노벨상 시상식장을 나설 때도 존 내시의 눈에는 행사장 한 귀퉁이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그 세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그는 평생 동안 그 환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것은 그에게 차라리 업보에 가깝다.
평생 떨쳐버릴 수 없는 ‘업’
지난달, 지방 출장 가는 길에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 들른 원주의 어느 낡은 극장에 앉아 그 영화를 보면서, 나는 우리 시대 많은 젊은이들의 가슴에 남아 있는 환영이 떠올라 눈물지었다. 한때 우리 시대 많은 젊은이들이 ‘레닌주의자’인 적이 있었다. 적을 거꾸러뜨리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무기였으니까…. 그러나 그 적이 바뀌고 이제는 무기도 바뀌어야 한다고 깨달았을 때, ‘이상’을 ‘환영’으로 바꾸어 불러야 한다고 깨달았을 때, 많은 젊은이들은 “하룻밤에 한 양동이씩” 눈물을 흘려야 했다. 그리고 그 흔적은 이 땅 많은 젊은이들의 가슴에 평생 동안 떨쳐버릴 수 없는 ‘업’으로 영원히 남았다.
내가 일주일에 한번씩 출연하는 기독교방송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의 진행자 하승창(42)씨는 며칠 전 프로그램 시작 부분에서 나를 소개하다가 실수를 했다. “한울노동문제연구소의 하종강 소장”이라고 해야 하는 대목에서 “한울노당… (잠시 멈칫) 노동문제연구소”라고 해버린 것이다. 생방송이었으니 말을 다시 주워담을 수도 없었다. 그렇게 실수를 한 뒤 우리는 광고방송이 나가는 잠깐 동안 포복절도했는데 하승창씨가 무심코 말했다. “노동당을 만들고 나왔어야 했는데, 그걸 못해서…. 만들다 깨지고 만들다 깨지고…. 아무리 노동당에 한이 맺혀도 그렇지….” 물론 웃으며 한 말이었지만 나는 그 짧은 순간에 목이 메었다. 광고방송이 끝나기 전에 목소리를 추스르느라고 내가 애썼다는 걸 하승창씨는 몰랐으리라. 하승창씨에게 그것은 평생 동안 따라다니는 환영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에게 그것은 차라리 일종의 ‘업’인 것이다. 하승창씨는 시민단체 ‘함께하는 시민행동’의 사무처장이다. 그 단체의 사업 집행과 살림을 책임지는 사람이다. “경매로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게 되는 바람에 일년에 한번씩 쫓기듯 이사다녀야 하는 신세를 면했다”고 하는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그날의 인터뷰는 실로 머리 아플 만큼 복잡하고 밀도 있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에 관한 다양한 경험과 해박한 지식들이 동원되었고 이를테면 지금까지의 ‘한국사회운동론’들이 비교·분석되는 자리였다. 그 내용들을 그대로 충실하게 옮기면 마치 조금 앞에 있는 ‘한홍구의 역사이야기’만큼이나 깊이 있는 글이 될 것이지만, 그럴 수는 없다. 독자들이 ‘휴먼 포엠’을 읽으며 머리를 식힌다지 않던가…. 클릭 하나로도 세상을 바꾸자
하승창씨는 90년 3월 민족통일민주주의노동자동맹 사건으로 구속되었다. 세계사적으로는 한 세기를 마감하는 격동의 시대였다. 징역을 살면서 <자본론>과 조순의 <경제학원론>부터 다시 읽었다. 비슷한 시기에 나는 국민학교(초등학교) 도덕 교과서부터 다시 읽기 시작했으니 그 무렵 우리의 세계관 재정립을 위한 노력은 얼마나 피눈물 나는 것이었는지….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방식’을 찾기 시작했다. 민중당은 사회주의정당이나 거의 다름없는 강령으로 합법정당 활동을 시작했고 ‘노동해방문학’은 그때로서는 “엄청나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내용을 담고도 합법적 잡지로 출간되었다. 지하에서 숨죽여 활동하던 많은 인재들이 바깥세상으로 나왔는데, 감옥에서 나온 하승창씨도 그 무리 중의 하나였다. 노동당과 합친 민중당에 들어가 해산될 때까지 활동했다. 그리고 92년에 경실련에 들어갔다. 노동운동과 진보정당운동을 거쳐 시민운동으로 이전한 것이다.
“89년엔가 창단된 경실련에 관한 기사가 신문에 실렸을 때 하종강 소장님도 ‘이런 프티부르주아들 같으니라고…’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저도 생생하게 기억나요. 그러나….” 그 뒤에 이어진 ‘시민운동의 의미’에 대한 설명은 생략한다. 정책실장을 끝으로 99년에 경실련을 나왔다.
“노동운동하는 사람들은 시민운동하는 사람들에게 ‘계급투쟁으로서의 노동운동도 매우 중요하니 계속 열심히 하십시오’라는 말을 듣고 싶은 거야”라고 내가 말했을 때 하승창씨는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방금 하신 그 말씀 그대로입니다. 소유관계가 달라지지 않는데 계급투쟁이 어떻게 사라지겠어요. 훈련된 전위로서의 노동운동은 계속 필요하지요. 오히려 지금은 그것이 좀 부족한 측면이 있어요. 노동운동하는 사람들과 얘기해보면 생각은 다 있는데… 다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거지요.”
시민운동에 대해 무지한 나는 또 이렇게 물어보았다. “시민운동하는 사람들이 이를테면 ‘인간의 의지로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신념은 한낱 착각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 하승창씨는 차라리 웃음이 나온다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한 사람의 행동이 세상을 바꾼다는 표어 모르세요? 훈련된 노동자 조직이 세상을 바꾸는 것처럼, 한 사람의 작은 힘이 모여 세상을 바꾸기도 한다는 거지요.”
“단체 이름에 ‘행동’이라는 표현이 들어가 있는 만큼 다른 시민단체와 비교해서 훨씬 과격한 성격의 단체라고 보면 되나?”라는 질문에 대한 하승창씨의 대답이 그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잘 설명해준다. “90년대의 시민운동에도 ‘행동’이 있긴 했지만 전문가들의 정책대안 활동을 중심으로 하는 운동이었다는 것이 이전의 민중운동과 대비되어 나오는 평가들인데, 그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다른 포인트들을 강조해보자는 거지요. 시민들이 행동을 하는 것, 단순하게 인터넷에서 클릭 한번 하는 것만으로도 생각이 바뀌고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의미의 ‘행동’을 말하는 거지요. 작은 실천이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함께하는 시민행동’이라 부르기로 한 겁니다.”
구원의 끈, 자기성찰…
현재 그가 하는 중요한 사업 중에는 ‘납세자운동’이라는 것이 있다. “특정한 계급이나 계층을 중심으로 보지 않고 세금을 내는 시민이라는 똑같은 입장에서 그 세금이 어떤 가치기준에 의해 어떻게 쓰여야 하나를 생각해 보자는 것이지요. 나아가 그 세금을 가지고 예산을 편성하는 일에 간섭하자는 것인데, 나중에는 세금을 쓰는 것뿐만 아니라 거둬들이는 것에까지 간섭을 할 수 있게 될 겁니다.”
그런 운동의 하나로 이 단체는 매월 ‘밑빠진 독상’을 선정해 시상한다. 최악의 선심성 예산배정과 어처구니없는 예산낭비 사례를 매달 선정하여 주는 상이다. 말할 것도 없이 ‘밑빠진 독’이란 말은 마치 밑빠진 독에 물을 붓듯이 국민의 혈세가 낭비되고 있는 것을 상징한다. 경제적 타당성이 없음에도 1991년부터 무리하게 새만금사업을 집행하면서 1조3천억원으로 시작한 사업을 6조원의 예산으로 증액한 농림부 등이 그동안 이 상을 받았다. 인터넷 시대의 특성을 살린 ‘개인정보보호운동’이나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루는 새로운 방향의 소비자운동도 이 단체가 정성을 기울이는 사업들이다.
하승창씨가 요즘 시쳇말로 “떴다”. 얼마 전부터 기독교방송에서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매일 두 시간씩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그는 ‘시민운동가’보다 ‘방송인’으로 더 친숙하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전에 그 프로를 진행하던 이들 중에는 국회의원이 된 사람도 있기에 “정치를 해볼 가능성은 없냐?”고 물었다. 그는 단호하게 답했다. “가능성은 딱 한 가지 경우뿐입니다.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을 예전에 함께 했거나 지금도 하고 있는 사람들이 같이 정당을 만들어 해보자고 하면 생각해봐야지요.” 말을 잘못 꺼냈다 싶어 “나는 알레르기적으로 정치 하고는 인연이 없는 사람이니까” 하고 서둘러 발을 빼면서 다시 물었다. “기존 보수 정치권에서 ‘영입’이나 ‘발탁’의 제안을 받으면….” 내 질문이 다 끝나기도 전에 그는 한번 더 못을 박았다. “그렇게 정치를 시작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겁니다.”
“노동운동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없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을 듣다가 나는 흠칫 놀랐다. “어떤 일을 하든 자기 성찰이 없이는 불가능하지요. 노동운동도 마찬가지 아니에요?” 내가 국민학교 도덕교과서부터 다시 읽으며 구원의 끈처럼 붙들었던 화두-‘자기 성찰’, 그가 그 단어로 긴 인터뷰의 끝을 장식할 줄이야…. 나는 무한한 감동으로 악수를 나누었다.
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

사진/ 기독교방송에서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을 진행하는 하승창씨는 '시민운동가'보다 '방송인'으로 더 친숙하게 알려졌다. (이용호 기자)
내가 일주일에 한번씩 출연하는 기독교방송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의 진행자 하승창(42)씨는 며칠 전 프로그램 시작 부분에서 나를 소개하다가 실수를 했다. “한울노동문제연구소의 하종강 소장”이라고 해야 하는 대목에서 “한울노당… (잠시 멈칫) 노동문제연구소”라고 해버린 것이다. 생방송이었으니 말을 다시 주워담을 수도 없었다. 그렇게 실수를 한 뒤 우리는 광고방송이 나가는 잠깐 동안 포복절도했는데 하승창씨가 무심코 말했다. “노동당을 만들고 나왔어야 했는데, 그걸 못해서…. 만들다 깨지고 만들다 깨지고…. 아무리 노동당에 한이 맺혀도 그렇지….” 물론 웃으며 한 말이었지만 나는 그 짧은 순간에 목이 메었다. 광고방송이 끝나기 전에 목소리를 추스르느라고 내가 애썼다는 걸 하승창씨는 몰랐으리라. 하승창씨에게 그것은 평생 동안 따라다니는 환영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에게 그것은 차라리 일종의 ‘업’인 것이다. 하승창씨는 시민단체 ‘함께하는 시민행동’의 사무처장이다. 그 단체의 사업 집행과 살림을 책임지는 사람이다. “경매로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게 되는 바람에 일년에 한번씩 쫓기듯 이사다녀야 하는 신세를 면했다”고 하는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그날의 인터뷰는 실로 머리 아플 만큼 복잡하고 밀도 있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에 관한 다양한 경험과 해박한 지식들이 동원되었고 이를테면 지금까지의 ‘한국사회운동론’들이 비교·분석되는 자리였다. 그 내용들을 그대로 충실하게 옮기면 마치 조금 앞에 있는 ‘한홍구의 역사이야기’만큼이나 깊이 있는 글이 될 것이지만, 그럴 수는 없다. 독자들이 ‘휴먼 포엠’을 읽으며 머리를 식힌다지 않던가…. 클릭 하나로도 세상을 바꾸자

사진/ (이용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