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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부어라, 마셔라, 족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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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4-2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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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이 입수한 경찰 기록으로 보는 80년대 ‘막걸리 보안법’의 살풍경

사진/ 86년 10월 건국대 점거농성을 하다 끌려나오는 학생들. 부도덕한 정권은 학생들의 시위를 일상화시켰다. ('87보도사진연감)
“북한 괴뢰집단은 정부를 참칭하고 국가를 변란할 목적으로 구성된 반국가단체이고, 그 반국가 단체나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찬양고무 또는 이에 동조하거나 기타의 방법으로 그들을 이롭게 하면 죄가 된다는 정을 잘 알고 있음에도…. 월수입 24만원으로는 5인 가족의 생계유지에 급급하고 집 한칸 장만할 수 없으며, 단칸 셋방에서 5인 가족이 거주하고, 영업용 택시 운전사로 종사하는 자신의 불우한 처지가 현 정부 시책의 잘못으로 빈부 차이가 많아진 것 때문이라고 오인한 나머지 북괴의 사회제도를 은연중 동경해오다가….”

김대중 만세, 김정일 만세, 김일성 만세!

사진/ 고려대 앞에서 방독면을 쓰고 음식을 배달하는 한 중국집 배달원. ('87보도사진연감)
1985년 12월12일 낮 12시32분께 서울 은평구 불광동 국립보건원 옆 사거리. 권아무개(당시 34살)씨는 손님을 발견하고 자신이 몰던 포니 택시를 세웠다.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 손님은 운전석 옆좌석에 앉은 뒤 “정릉 국민대학교 앞까지 가달라”고 말했다.


“학생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으레 있게 마련인 기사와 승객 사이의 대화가 이어지면서 택시는 어느새 북악터널을 지나고 있었다. “요즘 학생들 왜 그런 식으로 데모를 해대는지….” 말을 이어가던 권씨가 매일이다시피 이어지는 학생시위를 화제로 올린다. “아니, 하려면 제대로 하든가 말이죠. 영 마음에 들지 않아요. 먹고 살기도 어려운데, 데모를 어영부영하니까 길만 막히고….”

승객의 안색이 변하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권씨. 자기 말에 취해 한마디 덧붙인다. “참, 제가 말이죠. 지난주에 새마을교육을 갔는데요. 비디오를 틀어주는데 말이죠. 거 왜 이북 김일성 있잖아요. 거, 몸도 좋고 생긴 것도 아주 잘 생겼더라고요.”

잠시 뒤 택시는 목적지에 도착했고, 승객은 요금을 낸 뒤 서둘러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권씨는 다음 손님을 찾아 다시 핸들을 잡았다. 며칠 뒤 새벽 5시30분께, 조회를 마친 권씨에게 낯선 사내들이 다가섰다. 한 경찰서 대공과로 끌려간 권씨는 ‘반국가단체의 수괴인 김일성과 그들의 활동에 찬양·고무·동조해 북괴를 이롭게 했다’는 이유로 1박2일간 조사를 받은 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1970년대 유신독재 시절을 풍미하던 ‘막걸리 보안법’은 80년대 중반까지도 우리 삶의 주변을 떠돌며 위력을 발휘했다. 불과 10여년 전까지도 몇잔 술에 취해 주정하거나, 무심코 내뱉은 말 한 마디 때문에 ‘빨갱이’로 몰려 언제 어디서든 끌려갈 수 있었다. <한겨레21>이 최근 입수한 당시 서울의 한 경찰서 국가보안법 위반사건 검찰 송치기록은 이 같은 시대상을 그대로 드러낸다.

“1986년 5월30일 새벽 2시께 서대문구 남가좌동 ㄷ빌딩 앞에서 택시를 기다리다 술기운이 올라 마침 같은 장소에 있는 이름모를 남자와 시비를 벌이던 중 옆에서 택시를 기다리던 ㅁ고등학교 2학년 정아무개군 등 2명이 싸움을 말리기 위해 ‘지금 몇시나 됐습니다’라고 말을 건네자 이에는 답하지 않고, ‘학생, 담배 있어 없어’라고 되물어 ‘없다’고 하자 ‘없으면 빨리 꺼져라. 나는 전과 3범이다’라고 오히려 시비를 걸면서 소란을 피우자, 같은 장소에 있는 빌딩 야간 경비원 고아무개(28)씨가 시비를 말리던 중 갑자기 큰 소리로 ‘김대중 만세’라고 외친 뒤, 노상에 드러누워 두팔을 어깨 위로 번쩍 올리면서 ‘김정일 만세’를 3차례, ‘김일성 만세’를 2차례 반복해 고창함으로써 반국가단체인 북한 괴뢰집단의 수괴 김일성과 그 후계자 김정일을 찬양·고무하여 그들을 이롭게 한 것임.”(86년 6월 불구속 입건된 도아무개(당시 32살)씨 송치기록)

술자리 언저리를 배회하던 유령들

사진/ <한겨레21>이 입수한 한 경찰서의 국가보안법 위반사건의 검찰 송치기록. 엄숙한 말투로 어마어마한 혐의를 적어놓아 웃음을 자아낸다.
“1986년 11월22일 낮 12시께 서울 성북구 돈암동의 한 사찰에서 열린 친형의 칠순 잔치에 참석해 소주 1병을 마시고 놀다가 오후 5시께 귀가하기 위해 돈암동에서 시내버스로 홍제동 정류장에 내려, 다시 서울역과 금촌간 운행하는 버스에 요금을 내지 않고 승차하자 운전기사가 ‘요금을 내라’고 하니 “운전이나 잘하라”고 소리치며 ‘요금을 내면 되지 않느냐’라고 술주정을 하다가, 승객 30여명을 향해 ‘나는 공산당이다’ ‘왜 공산당이 나쁘냐. 공산당을 잡는 놈이 더 나쁜 놈들이다’ ‘왜 데모하는 학생들을 잡아넣느냐. 잡아넣는 놈이 더 나쁘다’ ‘김일성은 위대한 인물이다’ ‘잡아넣어라 이 새끼들아’ ‘박 정권이 나쁘다더니 현 정권은 더 나쁜 놈들이다’라고 10여분간 외쳐 반국가단체인 북괴 공산당과 그 수괴인 김일성을 찬양·고무·동조해 그들을 이롭게 한 자임.” (86년 11월 구속돼 1심에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은 김아무개(당시 55살)씨 송치기록)

떳떳지 못한 정권은 국민의 불만을 ‘체제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했고, 이는 고스란히 ‘북괴에 대한 동경’이 되었다. 경찰 기록마다 “자신의 불우한 처지가 현 사회제도의 모순이라고 오인하고, 북괴의 사회제도를 은연 중 동경하여 오다가”라는 대목이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거리에서 마주치는 낯선 사람에게서 ‘수상함’을 감지하면 주저없이 ‘신고’를 떠올리는 강박이 온 사회를 짓누르던 시대, 서민들의 술자리 언저리에는 국가보안법이라는 유령이 배회하며 감시의 눈길을 떼지 않았다.

1985년 8월24일 밤 10시께 최아무개(당시 50살)씨는 서울 은평구 진관외동 한 실내 포장마차에서 오징어 안주 두 접시와 맥주 여덟병을 친구와 나눠 마시고 있었다. 잠시 뒤 친구는 “하던 일을 마무리짓고 오겠다”며 자리를 비웠다. 친구가 나가자 최씨는 술집 주인 조아무개(당시 47살)씨와 어울려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빈 병이 쌓이면서 취기가 오른 그는 노래까지 부르며 분위기를 돋웠다. 그리고 “노래를 잘한다”는 조씨의 말에 흥이 난 최씨는 “이북노래도 안다”며 ‘인민의 노래’를 불렀다. 한국전 당시 인공치하에서 중학교에 다니며 배운 노래였다.

그날 밤 “곧 오겠다”던 친구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고, 수중에 돈이 없던 최씨는 술에 취한 채 조씨와 술값 시비를 벌이다 결국 파출소 신세를 지게 됐다. 그러나 파출소 조사과정에서 “이 아저씨 이북노래도 불렀다”는 조씨의 증언이 나오면서 상황이 돌변했다. 무전취식을 한 ‘잡범’으로 취급받던 최씨는 이 말 한 마디에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사상범’으로 바뀌었다. 관할 경찰서 대공과로 옮겨진 그는 “대어를 낚았다”며 흥분하는 경찰에 둘러싸여 3일 밤낮을 한숨도 자지 못하고 조사를 받은 뒤에야 풀려날 수 있었다.

터져나오는 웃음, 그리고 갑갑증

술집 주인 조씨는 어떻게 됐을까? 어이없게도 조씨 역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최씨와 함께 입건됐다. 조씨의 혐의내용에 대해 당시 송치기록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최씨가) 노래 부르는 동안 손뼉을 쳐서 장단을 맞추고, ‘가사가 좋다’고 말하는 등 반국가단체인 북괴를 고무·동조하여 그들을 이롭게 한 자로, 범증이 충분하므로 기소하심이 가하다고 사료됨.”

엄숙한 말투로 어마어마한 혐의를 적어놓았지만, 당시 기록을 읽다 보면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기 어렵다. 그러나 헛헛한 웃음 뒤에는 어김없이 갑갑증이 밀려온다. 국가보안법 개폐문제를 두고 여전히 논란을 벌여야 하는 현실 때문이다. 지난해 ‘8·15 방북단’의 ‘방명록 사건’ 뒤 불거진 이념논쟁을 지켜보면서, 방북단의 일원이던 가수 이정열씨는 “막걸리 보안법을 만경대 국보법으로 바꿔야 할 광란극의 세상”이라고 개탄하기도 했다.

1986년 11월29일 오전 10시께 서울 중구 만리동에 있는 한 여인숙에서 잠을 자고 일어난 강아무개(당시 45살)씨는 부근 구멍가게에서 빈 속에 깡소주를 들이부었다. 다섯병째를 마시고 나자 속이 뒤틀렸다. 골목길에서 허리를 꺾고 속을 비워냈지만, 취기는 어느새 머리끝까지 올라 있었다.

몇 시간 뒤 중구 정동의 한 다방에 나타난 강씨는 소리지르기 시작했다. “김일성과 김정일을 만나게 해달라. 김일성은 정치 1인자다. 참 좋은 사람이다. 나는 갈매기다. 나는 빨갱이다. 이북으로 넘어가야 한다. 약속한 시간에 넘어가야 한다. 전두환이나 노태우도 별 것 아니다.” 20여분간 소란을 벌인 끝에 경찰에 연행된 그는 며칠 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강씨가 검찰로 송치되던 그해 12월10일, 한 조간신문의 사회면을 펼쳐봤다.

“서울 중부경찰서, 명동성당에서 열린 ‘고문 및 성고문 용공조작 범국민 폭로대회’ 참석해 ‘군사독재 폭력정권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친 민통련 부의장 백기완씨 영장 신청”, “만기 출소일을 4일 앞두고 춘천교도소에서 ‘동료 재소자들을 선동해 소란을 피운’ 대학생 공무집행방해죄로 재구속”, “서울 남대문경찰서, 중구 무교동 평창빌딩 9층 민추협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 “공항경찰대, ‘부천서 사건 고발장’ 등 국내 배포 금지된 반정부유인물을 갖고 나가려던 미국인 변호사 적발”, “치안본부, 자민투 배후조직인 구국학련 총책 김영환 등 운동권 배후 20명 붙잡아 전원 구속”, “대한변협, 제38회 인권주간 맞아 ‘법 집행의 남용이나 영장의 남발로 인한 인권침해가 없도록 하라’고 촉구”…. 막걸리 보안법에 취한 사회였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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