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대선주자들은 당원들만이 아니라 일반 국민을 향해서까지 승리를 말하고 자기가 중심임을 과시하는가? 왜 승부를 위한 검투사가 되려 하는가?
민주당의 대선 경선 레이스는 흥미로운 볼거리였다. 한나라당도 현재 진행 중이다. 양당의 경선결과는 이미 판명이 난 셈이지만 본선의 대회전이 남아 있으니 그 흥미진진함은 점입가경이라고 할 것이다.
인간은 ‘놀이하는 동물’이라고 하였던가. 작금의 대선정국은 정치의 타성과 따분함을 단번에 불식하고, 정치적 유희가 삶의 한 부분임을 다시 확인시켜준 신선한 정치게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 들뜬 감정이 단지 놀이의 긴장감이나 경기의 박진감에서만 연유하는 것일까? 나를 비롯하여 많은 이들의 가슴에 흥미로움보다는 오히려 불안감이 커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승부는 위험하다
무릇 모든 경기가 승부라는 성격을 띠는 순간, 고조되는 긴장은 두려움과 불안을 낳는다. 하물며 정치게임에서랴. 누가 말했던가. 정치는 적과 동지의 구분이며,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라고. 대권경쟁에 참여하는 당사자들은 물론이고,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정치적 논란은 곧잘 우격다짐으로 비화한다. 프로들의 승부세계에서 가치와 덕목은 곧잘 뒷전으로 밀리고 승패라는 적나라한 실존의 아우성만 남는다. 그러면 우리의 불안초조는 결국 한편에 서서 다른 편과의 적대적 대립의 각을 세우는 데서 연유하는 것인가? 나는 누구의 편이 될 것인가, 그리고 너는 누구 편인가를 촉각을 곤두세우고 계산하고, 각기 자신의 표정을 단속하며 서로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가?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점을 확인하는 순간 나는 민망한 지경에 놓인다. 왜냐하면 나는 민주사회의 정치이념은 무엇보다 공존의 예술에 있다고 배웠고, 또 그렇게 가르쳐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동안 누려온 민주정치의 기쁨 즉, 너와 나의 차이를 긍정하고, 사적으로 대립하였음에도 공적 공존을 이룩해내는 민주주의의 가치를 반납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자. 공존의 예술인 민주공화국이 실패하고 민주정치에 대한 신념이 꺾인다면, 과연 패권적 거구들이 활개치는 이 세상에서 대다수의 소심하고 연약한 이들은 어떻게 자신의 존엄을 지켜나가겠는가? 그렇다면 그 노심초사는 바로 민주공화국의 정치이념에 대한 우리의 애정이 대선이라는 폭풍의 언덕에서 배신당하고 상처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서 연유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즉 대선은 민주공화국을 위한 중요한 시험이며, 우리 모두 시험대에 들었다는 사실이 그 조마조마함의 비밀인지도 모른다. 어떤 시험이 쉬운 것이 있으랴만 대선은 정말 위험하다. 직선제를 실시한 1987년부터 지금까지 대선정국의 역사에서 사건이 없었던 적이 있었는가? KAL기 폭파범 김현희의 압송, 초원복집 사건, 오익제 월북사건 등은 모두 우리 정치의 치명적 상처나 추악한 과거들이며, 우리 민주공화국의 허약함과 위태로움을 증명해주는 것들이다. 이번 대선과정은 어떻게 될 것인가? 초입부터 색깔론이 기승을 부리고, 미 국무부 차관보의 원론적 발언이 미묘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으며, 베네수엘라의 군부 쿠데타 배후에 미국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는 보도도 새삼 섬뜩하다. 또한 각종 악의에 찬 폭로들이 난무하고, 이른바 ‘정보 전문가’들의 암약도 시작된 듯하니 심상치 않다. 아울러 진실보다 힘이 센 언론은 여전히 요주의 대상이다. 대선이라는 정치과정이 정치적 진실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편견만을 확대 재생산한다면 그 시험은 애당초 실패하게끔 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공화국의 가치를 말하라 난관은 높고 덫은 널려 있다. 어찌 불안하지 않겠는가? 게다가 시험의 중대성에 대한 인식 없이 각 진영이 본능적 승부욕으로 내달리고, 또 그에 덩달아 대중들이 편가르기의 쾌감으로 야유와 선동에 몰입하면 사태는 더 악화된다. 승부의 열기 속에 민주공화국의 가치들은 증발해버리고, 패권의 유혹 속에 정치라는 공적 공간은 사적인 탐욕과 배타적 지배에 점령당하고 말 것이다. 수험생의 겸허한 자세로의 복귀와 민주공화국의 원칙들에 대한 헌신이 없는 한, 어떤 승부도 소득을 기약할 수 없다. 왜 대선주자들은 당원들만이 아니라 일반 국민을 향해서까지 승리를 말하고 자기가 중심임을 과시하는가? 왜 승부를 위한 검투사가 되려 하는가? 먼저 민주공화국의 충실한 학생이 되자. 바위 같은 신념과 샛별 같은 통찰력을 목표로 민주주의의 역사와 그 이념을 위해 머리를 싸맨 가난한 수험생이 되자. 그리하여 권력의 중심이 되기보다는 사랑과 격려의 대상이 되자. 평범한 대다수 국민의 마음속에 민주공화국의 소중한 가치들이 자랑스럽게 울릴 때, 민주정치는 마침내 스스로 승리할 것이다. 누가 승리를 말하는가? 민주주의와 평화의 저 웅혼한 시대정신의 충직한 하인이면 족할 것이다.

사진/ 정태욱 l 영남대 교수·법학
무릇 모든 경기가 승부라는 성격을 띠는 순간, 고조되는 긴장은 두려움과 불안을 낳는다. 하물며 정치게임에서랴. 누가 말했던가. 정치는 적과 동지의 구분이며,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라고. 대권경쟁에 참여하는 당사자들은 물론이고,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정치적 논란은 곧잘 우격다짐으로 비화한다. 프로들의 승부세계에서 가치와 덕목은 곧잘 뒷전으로 밀리고 승패라는 적나라한 실존의 아우성만 남는다. 그러면 우리의 불안초조는 결국 한편에 서서 다른 편과의 적대적 대립의 각을 세우는 데서 연유하는 것인가? 나는 누구의 편이 될 것인가, 그리고 너는 누구 편인가를 촉각을 곤두세우고 계산하고, 각기 자신의 표정을 단속하며 서로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가?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점을 확인하는 순간 나는 민망한 지경에 놓인다. 왜냐하면 나는 민주사회의 정치이념은 무엇보다 공존의 예술에 있다고 배웠고, 또 그렇게 가르쳐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동안 누려온 민주정치의 기쁨 즉, 너와 나의 차이를 긍정하고, 사적으로 대립하였음에도 공적 공존을 이룩해내는 민주주의의 가치를 반납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자. 공존의 예술인 민주공화국이 실패하고 민주정치에 대한 신념이 꺾인다면, 과연 패권적 거구들이 활개치는 이 세상에서 대다수의 소심하고 연약한 이들은 어떻게 자신의 존엄을 지켜나가겠는가? 그렇다면 그 노심초사는 바로 민주공화국의 정치이념에 대한 우리의 애정이 대선이라는 폭풍의 언덕에서 배신당하고 상처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서 연유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즉 대선은 민주공화국을 위한 중요한 시험이며, 우리 모두 시험대에 들었다는 사실이 그 조마조마함의 비밀인지도 모른다. 어떤 시험이 쉬운 것이 있으랴만 대선은 정말 위험하다. 직선제를 실시한 1987년부터 지금까지 대선정국의 역사에서 사건이 없었던 적이 있었는가? KAL기 폭파범 김현희의 압송, 초원복집 사건, 오익제 월북사건 등은 모두 우리 정치의 치명적 상처나 추악한 과거들이며, 우리 민주공화국의 허약함과 위태로움을 증명해주는 것들이다. 이번 대선과정은 어떻게 될 것인가? 초입부터 색깔론이 기승을 부리고, 미 국무부 차관보의 원론적 발언이 미묘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으며, 베네수엘라의 군부 쿠데타 배후에 미국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는 보도도 새삼 섬뜩하다. 또한 각종 악의에 찬 폭로들이 난무하고, 이른바 ‘정보 전문가’들의 암약도 시작된 듯하니 심상치 않다. 아울러 진실보다 힘이 센 언론은 여전히 요주의 대상이다. 대선이라는 정치과정이 정치적 진실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편견만을 확대 재생산한다면 그 시험은 애당초 실패하게끔 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공화국의 가치를 말하라 난관은 높고 덫은 널려 있다. 어찌 불안하지 않겠는가? 게다가 시험의 중대성에 대한 인식 없이 각 진영이 본능적 승부욕으로 내달리고, 또 그에 덩달아 대중들이 편가르기의 쾌감으로 야유와 선동에 몰입하면 사태는 더 악화된다. 승부의 열기 속에 민주공화국의 가치들은 증발해버리고, 패권의 유혹 속에 정치라는 공적 공간은 사적인 탐욕과 배타적 지배에 점령당하고 말 것이다. 수험생의 겸허한 자세로의 복귀와 민주공화국의 원칙들에 대한 헌신이 없는 한, 어떤 승부도 소득을 기약할 수 없다. 왜 대선주자들은 당원들만이 아니라 일반 국민을 향해서까지 승리를 말하고 자기가 중심임을 과시하는가? 왜 승부를 위한 검투사가 되려 하는가? 먼저 민주공화국의 충실한 학생이 되자. 바위 같은 신념과 샛별 같은 통찰력을 목표로 민주주의의 역사와 그 이념을 위해 머리를 싸맨 가난한 수험생이 되자. 그리하여 권력의 중심이 되기보다는 사랑과 격려의 대상이 되자. 평범한 대다수 국민의 마음속에 민주공화국의 소중한 가치들이 자랑스럽게 울릴 때, 민주정치는 마침내 스스로 승리할 것이다. 누가 승리를 말하는가? 민주주의와 평화의 저 웅혼한 시대정신의 충직한 하인이면 족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