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식증을 감시한 셀프 카메라
등록 : 2002-04-24 00:00 수정 :
오는 4월26일 개막하는 전주영화제에 <김진아의 비디오일기>라는 낯선 다큐멘터리 한편이 상영된다. 이 작품은 거식증을 앓는 감독이 6년간 카메라로 자신의 아픔과 희망을 퍼포먼스화하여 담아낸 157분짜리 셀프 다큐다. 셀프 다큐지만 일반적인 셀프 카메라처럼 술술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일상을 소개하는 장면은 거의 없다. 일기같이 사적인 이 작품은 일상의 기록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상태를 극적으로 표현하는 퍼포먼스들의 모음. 변기에 얼굴을 처박고 토하면서 자기 모습이 잘 찍힐 수 있게 카메라 높이를 조절한다거나, 잘 세팅된 카메라 앞에서 동물의 날간을 미친 듯이 으깨 먹는다거나 하는 비일상적인 몸짓들이 한 젊은 여성의 삶을 독특한 앵글로 보여준다.
김진아(29) 감독은 서울에서 대학을 마치고 미국 로스앤젤레스 칼아츠에서 비디오 아트를 공부했다. 대학 재학 시절부터 유방확대 수술의 그로테스크함을 꼬집는 단편 <헤로인>, 바비인형 같은 외모를 강요하는 사회적 선입관 속에서 여성의 외모 콤플렉스를 형상화한 <내가 그리는 그림> 등 비디오 작업을 해왔고, 자신이 거식증을 앓으면서 8mm 홈비디오 카메라로 비디오 일기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거식증이 시작된 것은 대학 졸업 직전. ‘성인’으로서 사회 진출을 앞두고 있던 그는 미국 유학을 간 뒤 거식증에 빠진다. 마신 물 한 모금의 양도 기록하는 거의 단식에 가까운 병적인 다이어트를 하던 그에게 카메라는 유일한 말상대이자 감시자였다. ‘내 모습이 추하다’는 생각에 집 밖에 한 발짝도 나가지 않고 굶다가 폭식을 하곤 하던 그가 호전되기 시작한 것은 어느 날 폭식을 한 직후 나신으로 자신을 거울에 비춰보면서.
카메라는 마치 임신부처럼 배만 불룩한 그의 모습을 보여준다. “거식증은 그냥 밥을 먹지 않는 게 아니에요. 밥을 안 먹는다는 건 엄마를 거부하는 것이고, 또 한편 여성의 욕망을 억압하는 사회 속에서 타자들의 시선에 마비되는 것이죠.” 비디오 일기를 찍으며 거식증을 치유해낸 그는 요즘 자신의 체험이 잘 녹아난, 여성의 욕망을 페미니즘적으로 고찰하는 장편 극영화 <그 집 앞> 준비와 더불어 외할머니, 어머니, 자신으로 이어지는 모계 가족사를 주제로 한 비디오 일기도 계속 찍고 있다.
최수임 기자/ 한겨레 씨네2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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