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와 포렌식 인터뷰’를 아십니까
미국 전문가 화상 인터뷰
등록 : 2020-12-11 05:39 수정 : 2020-12-16 17:56
2020년 7월15일 서울 영등포구 이룸센터 대회의실에서 울력과 품앗이 프로젝트팀이 미국 전국장애인권리네트워크(NDRN)의 데이비드 헛 부상임이사·선임변호사와 화상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고한솔 기자
“강도가 은행을 터는 시간은 1~2분에 불과한데도 현장에 있던 피해자는 심각한 트라우마를 겪어요. 노동 착취는 어떨까요. 수년, 수십 년 동안 피해자는 뇌 손상을 입은 것과 다름없고 정확한 사실을 기억하는 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장애가 있는 피해자라면 더 심하겠죠.”
2020년 8월21일 화상회의 플랫폼을 통해 만난 미국 수사관 숀 텝퍼가 말했다. 그는 미국 법무부 민권국 범죄과 인신매매기소팀 소속으로 노동·성착취 인신매매 사건을 담당한다. 미국의 장애인 노동력 착취 현황을 알아보기 위해 ‘울력과 품앗이’ 프로젝트는 미국 전문가들을 화상 인터뷰했다. 미국 전국장애인권리네트워크(NDRN)의 데이비드 헛 부상임이사·선임변호사(7월15일), 미국 법무부 민권국 범죄과 인신매매기소팀의 숀 텝퍼 수사관(8월21일), 전미성인보호서비스협회(NAPSA) 로리 델라그래마티커스 대표(11월4일)를 차례로 만났다.
미국은 공정근로기준법·인신매매피해자보호법·미국장애인법·혐오범죄방지법, 이 네 가지 연방법으로 장애인 노동력 착취 사건을 다룬다. 사건에 따라 서로 다른 법률이 적용되고 관여하는 기관 역시 바뀐다. 특히 미국은 강제노동·성착취를 목적으로 폭력이나 사기, 강압으로 피해자를 통제하는 행위를 인신매매로 바라본다. ‘매매’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는 한국보다는 그 개념의 폭이 비교적 넓다.
숀 텝퍼는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와의 인터뷰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이야기가 나오도록 유도하는” ‘포렌식 인터뷰’를 한다고 했다. 이는 아동 대상 수사에서 주로 쓰이는 기법인데, 경험하거나 목격한 사건에 대해 자세한 정보를 이끌어내는 데 유용하다. 장애 전문가와도 적극 협업한다. “우리는 장애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피해자의 취약성을 찾는 게 쉽지 않아요. ‘나는 독립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말하며 취약성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으려는 피해자도 있습니다. 피해자의 장애가 얼마나 심한지 판단하는 건 수사관의 일이 아닙니다. 장애에 대해 잘 아는 전문가를 찾고 그 파트너와 협력하는 게 중요합니다.”(숀 텝퍼)
물론 ‘오갈 데 없는 장애인을 돌봐줬다’는 주장은 미국에서도 흔히 발견되는 가해자의 방어 논리다. 미국 전국장애인권리네트워크의 데이비드 헛은 그 인식을 개선해나가고 있다며 그 예시로 ‘헨리 칠면조 서비스 사건’을 들었다.
가금류 가공업체 헨리 칠면조 서비스는 1970년대부터 지적장애인 32명을 고용하면서 비장애인 노동자보다 적은 월급을 주고, 초과근무수당과 사회보장급여를 가로챘다. 학교를 개조한 허름한 주거지에 감금된 피해자들은 폭언과 폭력에 시달렸다. “1970년대 헨리 터키 서비스는 장애인에게 취업 기회를 주는 회사로 좋은 평판을 얻고 상을 받기도 했어요. 장애인들은 65달러의 월급을 받으며 칠면조의 내장을 꺼내는 일을 했는데, 이들에게 일자리를 주지 않았으면 장애인들이 무직자가 됐으리라고 생각한 거죠.” 그러나 이 인식은 40년 만에 바뀌었다. 2011년 미국 고용기회평등위원회(EEOC)는 피해자 32명을 대리해 소송을 제기했고, 미국 연방대법원은 2013년 업체에 징벌적 손해배상으로 2억4천만달러(약 2640억원)를 배상하라고 명했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