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익변호사, 장애인권 활동가가 모여 만든 ‘울력과 품앗이’ 프로젝트와 함께 <한겨레21>은 반복되는 장애인 착취, 이를 낳는 부실한 수사와 판결을 8개월 동안 살폈다. 서울 잠실야구장 노예 사건 이후 수사 과정을 담은 ‘아무도 그에게 묻지 않았다’(제1312호), 장애인 범죄 판결문 전수 분석 내용을 전한 ‘짓고도 모른 죄’(제1339호) 표지 이미지.
공익변호사, 장애인권 활동가가 모여 만든 ‘울력과 품앗이’ 프로젝트와 함께 <한겨레21>은 반복되는 장애인 착취, 이를 낳는 부실한 수사와 판결을 8개월 동안 살폈다. 서울 잠실야구장 노예 사건 이후 수사 과정을 담은 ‘아무도 그에게 묻지 않았다’(제1312호), 장애인 범죄 판결문 전수 분석 내용을 전한 ‘짓고도 모른 죄’(제1339호) 등이다. ‘울력과 품앗이’가 그동안 활동 결과를 담은 장애인 노동력 착취 사건 심층 분석 보고서를 <한겨레21>에 보내왔다. _편집자
‘울력’(힘을 합하다)과 ‘품앗이’(노동을 교환하다).
이웃사촌의 상부상조를 뜻하는 두 단어. 공익변호사와 장애인권 활동가들은 이 단어를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맞닥뜨렸다. 경찰과 검찰이 지적장애인의 노동력을 착취한 가해자를 형사처벌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노동력 착취가 아닌) 절에서 스님들이 힘을 합쳐 잡일을 하는 ‘울력’에 해당된다”(노원경찰서), “강제로 일을 시킨 적은 없으며 일손이 필요할 때 품앗이 개념으로 일을 도와준 것”(광주지방검찰청)이라고 설명했기 때문이다. 가해자들은 마땅한 돌봄을 받지 못하고 떠도는 지적장애인을 ‘노예’처럼 싼값에 부렸지만 이 미풍양속을 면죄부 삼아 법망을 피해갔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될까. 공익변호사 13명과 장애인권 활동가 2명이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2020년 4월 장애인 학대 사건에 관한 수사기관의 잘못된 처분을 개선하기 위한 ‘울력과 품앗이’ 프로젝트가 출발한 계기다. 이 프로젝트의 8개월 활동 결과를 담은 보고서(‘장애인 노동력 착취 형사처분 사례에 관한 질적 분석 및 개선방안 모색을 위한 연구’)가 12월11일 발간된다. 2014년 이른바 ‘염전노예’ 사건 이후 ‘○○노예’라는 수식어를 달고 세간의 관심을 끌었지만, 수사기관의 문턱을 제대로 넘지 못한 장애인 노동력 착취 사건 9건을 선별해 수사 절차와 그 결과상 문제점을 심층 분석했다. <한겨레21>이 이 보고서를 입수해 분석해보니, 학대 피해 장애인은 수사기관에서 세 가지 장벽에 가로막히는 것으로 나타났다. ① 이 정도면 장애가 심각하지 않다는 오판
지적장애 3급인 김명진(66·가명)씨는 전남 신안군 흑산도에서 노예처럼 부려졌다. 2009년 6월부터 2019년 7월까지 10년 동안 모두 4명의 가해자로부터 노동력을 착취당했다. 전복양식장이나 낭장망(양쪽 날개의 앞 끝에 닻이 있어 강한 조류에 어구가 밀려가지 않도록 고정된 그물)에서 일하거나, 농사나 가축에게 먹이 주는 허드렛일을 해야 했다.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았고, 계약서를 쓰더라도 임금을 다 받지 못했다. 세 차례 피해자를 심층 면담한 경찰은 가해자들을 노동력 착취 유인 및 준사기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송치했다. 준사기는 피해자의 심신장애를 이용해 재산상 이득을 취할 때 적용되는 혐의다. 그러나 검찰은 2020년 2월 증거불충분으로 가해자들을 불기소 처분했다. 김씨가 노동력을 착취당할 만큼 지적능력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판단한 게 주요 이유였다. 당시 병원이나 약국을 방문한 기록, 은행 거래 내용, 피해자와의 대면 조사 등을 바탕으로 내린 결론이다. 하지만 조사는 한 차례에 그쳤다. 이 조사도 전라남도장애인권익옹호기관 활동가가 동석하지 못했다. 형사소송법과 발달장애인법, 장애인차별금지법은 발달장애가 있는 피해자가 수사기관에서 조사받을 때, 수사에 중대한 지장을 주는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신뢰 관계인의 동석을 원칙으로 한다. 노동력 착취 사건에서 장애인의 지적능력은 범죄 성립을 결정하는 주요 요인이 된다. 피해자가 자발적으로 일했는지, 피해자에게 그 판단을 내릴 판단을 내릴 지적능력이 있는지가 쟁점이 된다. 그러나 수사기관이 피해자의 지적능력을 따질 때 가해자 편향적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발견된다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김민아 변호사(공익변호사와 함께하는 동행)는 “피해자의 경우 은행에 간다 해도 직원의 도움 없이는 업무를 보지 못했고, 200 더하기 300은 50으로 대답하는 등 숫자 계산을 어려워했다. 그러나 검찰은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없다고 단정하고 임금에 대한 이해도가 있다고 판정했다. 말을 막힘없이 한다고 장애 정도를 섣불리 단정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김씨를 대리해 불기소처분을 취소해달라는 헌법소원을 냈다.
2020년 7월15일 서울 영등포구 이룸센터 대회의실에서 울력과 품앗이 프로젝트팀이 미국 전국장애인권리네트워크(NDRN)의 데이비드 헛 부상임이사·선임변호사와 화상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고한솔 기자
② 먹여주고 재워줬는데 뭐가 문제냐는 오만
돌봄을 받지 못하고 딱히 갈 곳도 없는 상황에서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노동을 강제하는 데 명시적인 폭행과 협박을 동원하지 않아도 된다. 김강원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정책국장은 “심리적·신체적으로 장기간 지배-피지배 관계에 놓인 피해자는 무기력감을 학습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피해자가 “다른 곳에 가지 않겠다” “주인이 잘해줬다”고 말하며 구출되기를 거부하는 것도 오랫동안 가해자의 통제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가해자가 쳐놓은 투명 감옥 안에 갇혀 살며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게 장애인 노동 착취 사건의 본질이다. 그러나 오갈 데 없는 피해자를 돌봐줬다는 가해자의 항변을 수사기관은 그대로 받아들인다. 장애인의 환경적·개인적 취약성은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 진술과 가해자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사건은 본질과 전혀 다른 결론에 이르게 된다. 피해자에게 틀니를 해준 정황까지 선처의 근거로 인용된다. ‘잠실야구장 노예 사건’이 대표적이다. 지적장애인 신태원(62·가명)씨는 2018년 서울 잠실야구장 적환장에서 발견될 때까지 10년 넘게 죽어라 일했다. 그럼에도 고용노동부 서울동부고용노동지청은 신씨가 강제로 노동한 건 아니라고 판단했다. 당시 노동청 관계자는 <한겨레21>과 한 통화에서 “신안 염전노예 사건처럼 갇힌 것도 아니고, 언제든지 제 발로 걸어나갈 수 있었다. 신씨도 (야구장에선) 숙식은 해결되니까 자연스레 그곳에서 지내게 된 것이다. 사장과 ‘니즈’가 맞았다”고 말했다. 신씨가 구출 당시 적환장을 떠나지 않겠다고 도움을 거부한 것도 하나의 근거로 들었다. 신씨의 임금 등을 가로챈 친형에 대해서도 검찰은 “처벌이 이뤄지면 유일한 혈연관계가 단절된다” “노후자금을 마련해주기 위함이었다”는 가해자의 항변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③ 단순 임금체불 사건으로 퉁치는 편의주의
보고서는 “장애인에 대한 노동력 착취는 인신매매와 같은 범죄에서 일어나는 착취범죄로, 단순한 근로기준법 위반과 다르다”고 지적한다. 근로기준법·장애인복지법·형법 등 가해자에 적용되는 죄명은 행위에 따라 각기 다르지만, 이 모든 피해는 일련의 연속된 과정으로 일어난다. 그러나 수사 과정에서 연속적인 범죄행위는 분절되고, 근로기준법 위반 사건은 노동청이, 그 밖의 일반 범죄는 일선 경찰서에서 수사하게 된다. ‘통합적 접근’이 불가해지는 것이다. 그 결과 사건은 노동력 착취이자 학대가 아닌, 단순 임금 미지급 사건으로 ‘퉁쳐진다’. 노동청 근로감독관은 피해자가 30년을 일하든 10년을 일하든 상관없이, 임금 소멸시효의 적용을 받지 않는 3년치 임금을 계산하고 가해자에게 이를 지급하도록 독려해 합의로 사건을 마무리하는 게 일반적이다. 범죄행위가 낱개로 찢어지면서 여과된 범죄는 소극적으로 대응하거나, 수사도 진행되지 않는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법 적용은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장애인의 자유의사에 어긋나는 강제노동을 더 엄하게 처벌하는 장애인복지법상 강제근로(제59조의9 제2의2호), 방임(제59조의9 3호), 부당한 영리행위 금지(제8조 2항) 등이 마련돼 있어도 실제 적용되는 사례는 손에 꼽는다. 부산 지역 가해자 부부는 ‘인감증명서 등을 맡기면 월급을 보관해 큰돈으로 만들어주겠다’며 원양어선에서 일하던 지적장애인 이만기(51·가명)씨를 속였다. 그렇게 가로챈 돈이 2005년 10월부터 2018년 9월까지 10억여원에 이르렀다. 간암에 걸린 피해자에게 배를 타라고도 강요했다. 가해자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 등으로 수사받았지만, 부산지검 서부지청은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처분을 내렸다. 노동 강요 행위, 유기·방임, 정서적·경제적 학대 등을 추가 수사해야 한다며 장애인복지법 위반,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 등으로 가해자 부부를 추가 고소했지만 이마저도 불기소처분됐다. 현재 사기죄에 대한 항고가 받아들여져 재수사 중이다. 이씨를 대리하는 염형국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는 “피해자 대부분은 지적장애인이고, 3급의 경계성 장애인이다. 일을 시킬 수 있는 취약한 피해자를 찾다보니 경증 지적장애인에 대한 노동 착취가 주로 이뤄지는데, 수사기관에선 오히려 장애인이라 인정하지 않거나, 자의에 의한 것이라고 단정한다. 피해자가 이중으로 고통받는다”고 지적했다. “장애인 노동력 착취는 현대판 노예제로 봐야 한다.” ‘울력과 품앗이’ 프로젝트가 이 보고서에서 내린 결론이다. 이들은 변화를 위한 발걸음을 내디뎠다. 서울 노원구의 한 사찰이 32년 동안 지적장애인의 노동력을 착취한 이른바 ‘사찰노예’ 사건에 대한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소집 신청서를 서울북부지검 검찰시민위원회에 12월10일 제출했다. 장애인복지법 위반 혐의 불기소처분이 적정했는지 따져봐달라는 취지다. 새해 1월 국회에서는 ‘장애인학대처벌특례법’에 관한 토론회와 공청회 등도 열 예정이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