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인의 가슴에 판소리 장단을…
등록 : 2000-09-20 00:00 수정 :
“판소리의 장단 수는 세계적인 수준입니다. 한 사람이 연기와 노래 실력을 겸비해야 하는 판소리에는 북유럽에서 이미 사라진 이야기꾼의 모습도 남아 있습니다.”
독일인 연출가인 디에트마 렌츠(48)의 전공은 판소리다. 독일에서 ‘살풀이’라는 극단을 운영하며 판소리에 다양한 유럽의 공연예술양식을 연결시켜온 렌츠가 이번에 판소리의 고향에서 판소리의 후손들을 진두지휘한다. 렌츠의 연출로 서울예술단에서 무대에 올리는 <대박>(10월1∼17일, 동숭아트센터, 문의: 02-523-0986)은 <놀부전>에 판소리와 인디언 뮤직, 인도의 민속음악 등을 뒤섞어 새롭게 만들어낸 뮤지컬이다.
“독일 극단에서 연출가와 배우로 만난 한국인 아내(연극배우 강정숙)를 통해 한국의 전통예술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지요. 80년대 행위예술가 무세중씨와 함께 공연왔다가 독일에 정착한 아내는 지금도 뛰어난 배우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렌츠는 92년 부인과 함께 ‘살풀이’를 만들어 <놀부전> <춘향가> 등 한국 판소리 작품을 유럽인들이 즐길 수 있도록 각색해 독일배우들과 함께 공연해왔다. <춘향가>는 판소리 가운데 그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는 지난해 자신의 극단과 함께 과천마당극제에 참가했다가 이번 공연의 제작자인 서울예술단으로부터 연출제의를 받았다.
렌츠는 판소리같은 매력적인 노래극이 외면당하면서 한국의 뮤지컬이 브로드웨이식으로만 발전하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그래서 동양과 서양 각국의 고유한 음악양식이 판소리와 충돌하고 조화하는 <대박>을 통해 새로운 장르가 개척됐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외국인뿐 아니라 많은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판소리가 대중적이지 않은 예술 장르라고 들었습니다. 이번 공연에서는 극적인 요소와 코미디적인 감각을 살렸습니다. 판소리적이되 판소리가 직접 나오지는 않아 10대를 포함한 젊은이들이 즐길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습니다.”
렌츠는 이미 우리 고전 <바리데기>를 독일어로 번역해 놓은 상태로 한국 공연을 마치면 독일에서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 장기적으로는 고대 그리스비극을 판소리에 접목시키는 작업도 해나갈 생각이다.
렌츠는 한국의 고전을 요리하는 서양인에게 지레 보내는 의심의 눈초리에 이렇게 답변한다. “외국인이 어떻게 판소리의 한국적인 해학을 이해하냐고요? 유럽의 해학과 한국의 해학 사이에 차이가 있을까요? 판단은 관객에게 맡기겠습니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