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황순원의 애독자가 아니다. 그리고 작가로서 그의 업적을 평가할 입장도 못 된다. 하지만 언론에서 전문가들이 그를 평한 말들은 이런 것이다. 당대의 문호, 한국 문학의 거목, 문단의 사표(師表), 소설하면 황순원, 학처럼 살다간 작가…. 그리고 교육자로서도 훌륭했다는 것이 제자들의 말이다. 그 자신의 문학적 업적뿐만 아니라 많은 제자들을 키웠으니, 문학 더 나아가 문화 전반에 남긴 그의 족적이 대단하다는 것은 틀림없다. 황순원이 한국 문화에 남긴 업적은 모라비아가 이탈리아 문화에 남긴 그것을 뛰어넘는 것 같다. 그런데 그의 서거 소식을 다룬 이 나라 언론 매체의 태도는 마치 귀한 손님이라고 하면서 사랑방에 들이지도 않고 마당 한 구석에 멍석 깔아주는 식이다. 혹자는 “듣고보니 뭐 핏대 올릴 일도 아니구만”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문화에 공짜는 없다. 문화를 위한 세심한 배려가 문화를 키운다. 요즈음 올림픽과 유가 파동이 주요 뉴스지만, 오늘이라도 이른바 선진국에서 그 나라 당대의 문호가 서거하면 기사의 비중이 어떻게 다루어질 것이라는 것은 안 봐도 안다. 이탈리아와 모라비아는 한 예로 든 것일 뿐이다. 문화 선진국 사람들은 문화의 중요성을 대중에게 각인할 기회가 있으면 그것을 놓치지 않고 이용한다. 문화의 대중적 침투는 그런 기회에 자연스레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젊은이들은 매체가 다루는 중요성을 내면화하면서 자란다. 그 관습을 깨야 문화발전이 온다 하긴 지난해에 세계적 영화감독 스탠리 큐브릭이 타계했을 때 ‘사회면’ 한 귀퉁이에 그 소식을 전한 한국의 신문들도 있었으니 지금 이 말은 공연한 핏대로 들릴 수도 있다. 당시 한국은 영화산업 발전 등 영화가 온통 문화의 화두였는데도 말이다. 혹자는 각 언론 매체에서 뉴스의 중요도에 따른 배정은 관습과 관례이기 때문에 의식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의식하고 그 관습과 관례를 깨지 않으면 문화 발전은 없다. 문화가 힘이다! 문화의 세기를 선도하자! 구호를 아무리 잘 외쳐도 작지만 본질적인 것에 신경쓰지 않으면 소용없다. 문화예산 몇% 이상으로, 문화적 이슈와 문화적 소통이 전체 생활에서 차지하는 실질적 비율과 비중이 중요한 것이다(유사한 예를 들면 ‘심야토론’이란 것 자체가 이 나라 토론 문화 수준을 반영하는 것이다. 오죽하면 심야에 방송 배정을 받나). 죽은 시인의 사회, 죽은 예술의 사회, 죽은 문화의 사회, 이런 것들은 달리 오는 것이 아니다. 한 시대를 풍미한 ‘문호의 죽음’이 대중적으로 ‘어떤 작가의 죽음’으로 익명 처리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을 때 오는 것이다. 김용석/ 전 로마그레고리안대학 교수·철학 uchronia@netsg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