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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어떤 작가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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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09-1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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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아주 사소한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따라서 무엇 때문에 그런 사소한 것에 핏대 올리느냐고 핀잔을 들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 사소한 것이 우리 문화의 어떤 특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사흘이 넘게 내리고 있는 소나기에 괜히 심란해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신문 1면 한귀퉁이의 기사

<소나기>의 작가 황순원이 지난 9월14일 타계했다. 문학사에서 그의 위치로 보아 그 소식을 전하지 않은 신문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주요 일간지가 거의 똑같이 신문 1면 하단 또는 한 귀퉁이에 사진과 함께 1단 또는 2단 정도의 짧은 기사로 그 소식을 알렸다. 그리고는 문화면의 일부 또는 한 페이지를 할애했다. 이제까지의 관례로 작가의 사망 소식으로는 그만하면 큰 지면을 할애했다고 할지도 모른다. 그 소식을 1면에 실은 것만으로도 특별하다고 할는지도 모른다.

필자가 로마에 있던 1990년에 이탈리아 소설가 알베르토 모라비아가 황순원과 비슷한 나이인 83살을 일기로 타계했다. 그곳 주요 일간지들은- 당시 매우 급한 정치, 경제 이슈들과 흥미로운 스포츠, 연예 뉴스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소식을 1면 톱뉴스로 실었다. 어떤 신문들은 1면에 5단 이상의 기사로 싣기도 했다. 그리고 이탈리아 최고의 타블로이드판 일간지 <라 레푸블리카>는 1면 4단 기사에(타블로이드판으로서는 거의 1면 전체다) 커다란 삽화와 함께 “모라비아 없는 세상”이란 제목을 달았다. 그 다음주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그 제목을 본떠 “Without Moravia”란 기사로 모라비아의 서거를 세계적으로 알렸다.

저녁 8시 TV 메인 뉴스에서도 모라비아 서거는 톱타이틀이었다. 우리나라에서 황순원 서거 소식은 TV건 라디오건 뉴스 시간의 후반부에 나왔다. 각 신문의 인터넷 홈페이지에도 사이트 화면이 뜨면서 서거 소식은 바로 보이지 않았다. 커서를 당겨 밑으로 내려가야만 볼 수 있었다. 각 사이트 초기 화면의 윗부분만 보고 다른 신문 사이트로 옮겨가 버린다면(인터넷 서핑에서 그런 경향은 점점 증가하고 있다), 그 소식은 모르는 것이다.


나는 황순원의 애독자가 아니다. 그리고 작가로서 그의 업적을 평가할 입장도 못 된다. 하지만 언론에서 전문가들이 그를 평한 말들은 이런 것이다. 당대의 문호, 한국 문학의 거목, 문단의 사표(師表), 소설하면 황순원, 학처럼 살다간 작가…. 그리고 교육자로서도 훌륭했다는 것이 제자들의 말이다. 그 자신의 문학적 업적뿐만 아니라 많은 제자들을 키웠으니, 문학 더 나아가 문화 전반에 남긴 그의 족적이 대단하다는 것은 틀림없다. 황순원이 한국 문화에 남긴 업적은 모라비아가 이탈리아 문화에 남긴 그것을 뛰어넘는 것 같다. 그런데 그의 서거 소식을 다룬 이 나라 언론 매체의 태도는 마치 귀한 손님이라고 하면서 사랑방에 들이지도 않고 마당 한 구석에 멍석 깔아주는 식이다.

혹자는 “듣고보니 뭐 핏대 올릴 일도 아니구만”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문화에 공짜는 없다. 문화를 위한 세심한 배려가 문화를 키운다. 요즈음 올림픽과 유가 파동이 주요 뉴스지만, 오늘이라도 이른바 선진국에서 그 나라 당대의 문호가 서거하면 기사의 비중이 어떻게 다루어질 것이라는 것은 안 봐도 안다. 이탈리아와 모라비아는 한 예로 든 것일 뿐이다. 문화 선진국 사람들은 문화의 중요성을 대중에게 각인할 기회가 있으면 그것을 놓치지 않고 이용한다. 문화의 대중적 침투는 그런 기회에 자연스레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젊은이들은 매체가 다루는 중요성을 내면화하면서 자란다.

그 관습을 깨야 문화발전이 온다

하긴 지난해에 세계적 영화감독 스탠리 큐브릭이 타계했을 때 ‘사회면’ 한 귀퉁이에 그 소식을 전한 한국의 신문들도 있었으니 지금 이 말은 공연한 핏대로 들릴 수도 있다. 당시 한국은 영화산업 발전 등 영화가 온통 문화의 화두였는데도 말이다. 혹자는 각 언론 매체에서 뉴스의 중요도에 따른 배정은 관습과 관례이기 때문에 의식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의식하고 그 관습과 관례를 깨지 않으면 문화 발전은 없다.

문화가 힘이다! 문화의 세기를 선도하자! 구호를 아무리 잘 외쳐도 작지만 본질적인 것에 신경쓰지 않으면 소용없다. 문화예산 몇% 이상으로, 문화적 이슈와 문화적 소통이 전체 생활에서 차지하는 실질적 비율과 비중이 중요한 것이다(유사한 예를 들면 ‘심야토론’이란 것 자체가 이 나라 토론 문화 수준을 반영하는 것이다. 오죽하면 심야에 방송 배정을 받나). 죽은 시인의 사회, 죽은 예술의 사회, 죽은 문화의 사회, 이런 것들은 달리 오는 것이 아니다. 한 시대를 풍미한 ‘문호의 죽음’이 대중적으로 ‘어떤 작가의 죽음’으로 익명 처리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을 때 오는 것이다.

김용석/ 전 로마그레고리안대학 교수·철학

uchronia@netsg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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